baseri, nepal, 2006년 1월
그곳은 바쁜 일상 중에도 문득 생각난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면 이내 가슴 한 켠이 따스해진다.
언제쯤 다시 그곳에 가 볼 수 있을까.
요원하게만 느껴지는 재회 때문에 더 애틋한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속의 그곳.
바세리(Baseri)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곳으로의 여행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요즘은 쉬는 날 일하는 날 할 것 없이 허망하리만큼 하루가 빠르게 흘러가는데
그즈음에 나는 종일을 멍하게 앉아있어도 아직 그만큼의 시간이 남아있는 것처럼 느꼈다.
시간은 온전히 내 소유였다.
달리 말하면 그 시기에 나에게 유일하게 여유로운 것은 시간뿐이었고,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들이었다.
2005년 12월 30일.
캘커타에서 함께 봉사활동을 하던 몇 명의 친구들과 나는 카트만두행 비행기를 탔다.
다음 달이면 만기가 되는 비자도 연장할 겸 새로운 곳에서 연말과 새해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집을 떠나온 지 벌써 9개월이 넘어가는 시기였고 나름대로 캘커타의 삶에도 적응해 가고 있었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륙 후 한두 시간쯤 지나자 시리게 푸른 하늘 위까지 높이 솟아오른 하얀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내 방송은 창밖으로 보이는 히말라야의 산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세 번째 방문이었지만 하늘에서 먼저 만나게 되는 네팔의 모습은 처음과 같이 여전히 장엄했다.
여행자 거리인 타멜(thamel) 지구는 어수선함과 복잡함 속에서 묘한 질서가 느껴지는 곳이다.
여러 나라의 말로 쓰인 이정표들과 토속적인 장신구들을 파는 기념품 가게,
어설프고 조악한 음식들을 파는 레스토랑들도 여전했고
누군가가 어눌한 발음으로 열창하는 밥 말리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밤의 분위기도 변함없이 정겨웠다.
두 끼니 식사 준비에 대한 걱정도, 혼을 쏙 빼놓는 출퇴근길의 번잡스러움도, 환자들 똥기저귀 빨래도 없는
오랜만에 갖는 자유시간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으로 드루바가 찾아왔다.
그는 샛노란 금잔화를 엮어 만든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네팔식 환영인사를 건넸다.
2년 만의 재회였다.
4년 전 티벳을 거쳐 처음 네팔에 왔을 때 투어를 알아보기 위해 방문한 여행사에서 만난 인연으로
두 번째 방문 때는 그의 가족들과도 만났고 함께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며 우정을 쌓았다.
내가 인도에 거주하는 동안에도 그는 여러 번 이메일로 안부를 물으며 언제건 꼭 네팔에 찾아오라고 했다.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 하던 그 친구는 폴란드 여자와 결혼해서 얼마 전 예쁜 딸까지 생겼다고 했다.
우리는 사흘 동안 매일 저녁 만나 그간의 회포를 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외국인과 친한 친구 사이가 되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는 이따금씩 그와는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을까 상상해본다. 아주 먼 곳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을 이 자리에 엮어 놓은 그 신비한 힘에 대해서도.
원래는 사나흘 정도 카트만두에서 쉬다가 포카라로 이동해서 어느 산에서건 트레킹을 할 계획이었다.
에베레스트나 마차푸차레 같은 명산의 둘레길을 걷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처음 듣는 새소리에 잠을 깬 어느 아침에 드루바가 호텔을 찾아왔다.
그는 함께 자기 고향에 가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들어보지도 못한 지명이었다.
네팔에서 외국인이 단독으로 관광지가 아닌 시골을 방문할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에 난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의 주저 없는 승낙에 오히려 그가 더 신이 나 보였다.
출발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터미널도 아닌 혼잡한 사거리 도로 한편에 줄지어 세워진 버스 중 하나에 올라탔다.
새벽 5시인데도 버스마다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버스 위에 한가득 짐을 싣고서도 버스 안은 사람과 짐이 뒤엉켜 있었고 외국인은 우리들 뿐이었다.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들은 빠짐없이 한 번 씩 우리 일행을 쳐다봤다.
처음 4시간은 포장도로를 달리다가 그다음 4시간은 비포장 산길을 꼬불꼬불 힘겹게 올라갔다.
요란한 기어 변속 소리와 함께 엔진은 터질 듯한 굉음을 뿜어댔고
그런 심란한 기계음에 질세라 줄곧 경쾌한 인도 음악이 실내에 울려 퍼졌다.
그 와중에 잠깐씩 졸다가 잠에서 깨면 창밖으로는 천 길 낭떠러지가 보였다.
오랜만에 땅을 밟으니 지면이 울렁이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으면서 드루바는 이제부터는 산을 올라야 하니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손으로 가리킨 산은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높이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드루바의 고향은 산골 중의 산골이었다.
난 아직도 그곳의 정확한 지명을 알지 못한다. 버스가 다니는 가장 가까운 마을이 바세리(Baseri)라는 것도 한참이 지나 구글맵을 통해 알아냈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터질 듯한 숨을 가다듬으며 뒤돌아보면 저 아래 우리가 걸어온 길이 메모지 위의 낙서처럼 아득하게 보였다.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드루바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들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평화롭고 온화한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마을에서 벗어나 산길을 오를수록 우리는 점점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풍경들과 마주쳤다.
강을 건너 정글을 지나 더욱더 큰 자연고 마주할수록 나는 상대적으로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4시간을 올라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곳곳에 집들이 보였지만 불 켜진 집이 없었다.
드루바의 본가에 다다르자 어머님께서 손전등을 들고 나와 우리 일행을 맞아주셨다.
우리는 집안으로 들어가 호롱불 안에서 다른 가족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바닥에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했다.
흔들리는 호롱불 아래에서 내용물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단출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이었다.
한참 먹다 보니 나만 포크를 사용하고 있었다.
역시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집에는 포크가 딱 하나 있었는데 아마도 식사용으로 사용하는 건 아닌 듯했다. 작지만 세심한 배려에 감사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호롱불 빛이 없어진 방 안은 금세 부엉이인지 뭔지 모를 새 울음소리와 풀벌레 소리로 채워졌다.
어쩌면 이곳은 내 인생에서 평생 기억하게 될 장소가 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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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