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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쓴자 Feb 28. 2022

초당옥수수 커피를 위한 변명

(그냥 먹고 싶다는 이야기)



언제부턴가 뜨거운 한여름이 시작되기 전, 초당옥수수 수확과 판매소식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듯하다. 아무런 가림막 없이 그대로 피부에 닿는 한여름의 햇빛은 살이 타들어가는 듯해 무서울 정도이지만, 그 빛을 담뿍 머금은 달콤한 과실들로 인해 행복해지는 계절, 여름.





하지만 지금은 2월의 끝자락.


이 겨울에 웬 옥수수 타령?

잠깐 짧게 떠나는 여행을 생각했다. 실제로 옮기기에는 챙길 것도, 알아봐야 할 것도 많지만 생각 속에서는 간단하다. 당장 내가 관심 있는 것만 검색해보면 바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까. 서울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누구 맘대로?) 여행지, 크게 맘먹지 않아도 훌쩍 떠나기 좋은 강원도.

부담 없이 몇 시간만 달리면 서울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 펼쳐지면서 지도에 점을 찍으며 준비해 간 들러야 할 맛집은 하루에 세 끼 밖에 먹지 못하는 걸 원통하게 만들 만큼 수두룩 빽빽하다.


요 며칠 이상하리만치 아메리카노만 마셨다.

라떼파인 내가   번의 망설임도 없이 아메리카노만 내리 마신  주였다.(디저트 때문이었나ㅎ) 그런 와중에 강원도 여행을 검색하며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보다가 마주하게  메뉴  하나인 '초당옥수수 커피' 꽂혀버렸다.

집 앞 편의점에 네 개에 만원 하는 캔 맥주를 고르러 가는 만큼의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훌쩍 떠나고 싶을 만큼 강렬하게.

성격이 마이너라 그런지(요즘 표현으로는 I형 인간) 너무 유명한 맛집이나 다들 찬양하는 곳에는 괜히 가고 싶지가 않다.(삐뚤어졌네) 그냥, 나 없이도 구름 같은 인파가 몰리는데 굳이 나까지 보탤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비슷한 장소를 다시 오기 위해 미지의 영역을 남겨두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진득하고 깊게 사귀는 타입인데, 의외로 한 일을 또 하거나 먹었던 메뉴를 단기간에 다시 반복하는 것에는 거리낌이 든다. 그리고 세상에 내가 모르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 신비하고 궁금함으로 남아 좋다.(신비의 세계에 사는 중..)


주체적으로 여행코스를 짜거나 일단 무계획으로 가기보다는 다른 이들의 코스를 참고해서 비교적 안전하게 그 지역의 명소나 맛집을 몇 개 넣어두는 걸 보험처럼 여기고 그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스타일의 여행을 하는 나는 의도적으로 몇 군데 장소와 몇 가지 메뉴는 제외해둔다. 이 지역에 다시 오고 싶을 때 이것 때문에 또 오고 싶도록.


초당옥수수 커피도 나에게 그런 것 중 하나였다. 커피는 사랑하는 수준, 초당옥수수도 그 아삭한 식감에 호의적인 편이라 둘의 조합은 그 존재를 알게 된 때부터 매우 궁금했다.

하지만 나는 굳이 필요 이상의 인내심을 발휘해서 그 메뉴는 아직까지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었다. 나의 매우 미약한 인내심이 발휘될 수 있었던 것은 강원도 지역에 유명한 카페가 매우 매우 많기 때문임을 밝혀둔다.


눈앞에 두고도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린 인내심은 어디 가고, 고작 며칠 전 볼을 에일 듯 불던 찬바람이 가시고 바람의 세기는 여전하지만 그 안에서 이미 꺾인 겨울의 기세를 느끼고는 이 초당옥수수 커피 하나 때문에 강원도로 달려가고 싶어졌다.


마침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게 된 지인분께 내가 가고 싶어 저장해둔 맛집들을 공유했는데 초당옥수수 커피를 드셨다고 한다. 궁금한 마음에 대리만족이라도 하려고 맛이 어떠했냐 물으니 커피에서 정말 초당옥수수 맛이 나고 크림도 부드럽고 달달하다는 평이 돌아온다. 너무나 예측 가능한 맛이지만 그렇기에 꼭 내 입으로 확인하고 싶은 맛!

내 상상 속의 맛과 혀 끝으로 직접 확인한 맛의 간극이 얼만큼인지.




찬기가 사그라든 바람을 핑계로 또 이렇게 먹부림에 불을 댕기고 있다. 겨울이 끝나고 바로 여름도 아닌데 마음은 벌써 한여름 과일의 달달함을 그리워한다. 제철 음식이 제일이지만, 언제든 맛볼 수 있는 잘 만들어진 메뉴를 핑계 삼아 이른 봄나들이를 떠나야겠다.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어마 무시한 컵 사이즈도 있던데, 맛집 커피들은 콤팩트한 사이즈가 많아 매우 아쉽다. 맛집들의 진하고 꽉 찬 맛의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그런 커피도 많이 마실  있는데-

사이즈업이 안된다면 자체 사이즈업으로 두 잔을 마셔야겠지. 그것 때문에 떠난다면 이 정도는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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