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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쓴자 Jul 14. 2022

비 오는 날 크록스를 신는 마음으로

담담히 젖음을 준비한다면




요 며칠 계속 비가 왔다.

비가 오나보다-가 아니라 정말 쉼 없이 비가 와서 다시 해가 날 수는 있는 걸까 싶게 축축함이 지속되던 날들을 지나왔다.





그러다 날이 개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맑은 날이 반가울 새도 없이 다시 비가 내리면 날씨에 대한 기대감 없이 우산과 신발에 신경 쓰느라 여념이 없다.

비가 많이 내린다는 예보를 보면, 어떻게 발이 젖지 않도록 할까를 생각하기보다는 젖어도 문제없을 신발을 찾게 된다. 집 앞이라면 어떤 복장과 신발이라도 문제가 없겠지만 그게 출퇴근 길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퇴근 시간에 비가 꽤 많이 오던 어느 날, 이미 늦어진 퇴근에 적극적 귀소본능보다는 문득 비 오는 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신발을 신는지 눈여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느릿해지는 오르막길을 더더욱 느긋하게 걸으며 사람들의 발을 살펴봤다.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한 차림새에 매치한 각양각색의 신발들. 발만 빼고는 그래도 무난한 옷차림이 많았지만 신발만큼은 여름의 특성까지 더해져서인지 크록스와 플리플랍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추억 속의 아이템에서 당당히 돌아온 아이템이  스포츠 샌들류의 신발들도 종종 보였고.



아-

이러면 되는 거였네.



많은 비가 내릴지 잠깐 오다 그칠지는 몰라도, 비 오는 날이면 우선 젖어도 문제가 없는 신발을 신는다.  방울도 맞지 않으려는 장화보다는 그게  마음 편한 길이다. 도로가 잠길 만큼의 폭우가 아니라면 장화보다는 크록스가 낫다.  방울도  젖는  아닐 바에야 젖어버리면 장화는 이루 말할  없는 불쾌함을 유발하니까.


그냥 비 오는 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신발을 신나 궁금해서 시작한 관찰 중에 갑자기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이 들었다.






인생도 그러면 되겠구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들은 일어나고, 내 능력 범위 밖의 일들 또한 나를 덮쳐와서 속수무책일 때가 있는데. 사실 많은데.

그때마다 자책하고 나의 부족함을 탓하며 자신을 미워하지 말고, 내리는 비를 내가 어찌할 수 없듯 그저 담담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복장을 갖추듯, 당연히 젖을 수밖에 없는 것임을 받아들이고 젖어도 괜찮을 신발을 신듯, 오늘은 이렇구나, 요즘은 좀 힘들구나- 할 수 있게 되길.


내 탓이 아님을.

그 누구도 원망의 대상이 아님을.


조금 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언덕을 오르는 발걸음에 조금은 힘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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