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히 May 07. 2021

브런치 눈치 보여 쓰는 글

어쩜. 이제야 정신이 드는 걸 어떻게 알고 이런 알림이 오는지. (사실 글을 발행하지 않은 지 오늘로 세 달째다.)


덴마크로 돌아왔다. 완전히 돌아왔다고는 할 수 없고 지금은 무비자 여행자 신분으로 체류 중이다. 비자가 나와야 완전히 돌아왔다고 할 수 있는데 그때까지 애타는 두 달을 보내야 한다.


5월 1일 한국을 떠났다. 덴마크 연휴 기간에 맞춰 4월 말일자에 출국하려 했는데 가고 싶을 때 가라던 엄마가 내 옆에 슬쩍 와 말을 걸었다. 가능하면 4월이 지나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점쟁이한테 들은 말이 분명했고 평소처럼 싫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참고 그러겠다고 했다. 먼길 떠나는 딸이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였다.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산 넘어 산이었던 여정에서 작은 돌부리 하나 만나지 않고 무탈히 덴마크에 입국했다.


문제는 덴마크에 도착해서였다. 도착한 날인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 3일 내내 울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그리워서도 아니었다. (그러기엔 아직 시기가 너무 이르다.) 최악의 컨디션으로 맞이하는 모든 게 버거웠다. 같이 살던 집에, 드디어 같이 살던 사람이 왔다는 사실에 기쁨과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비글로 변해버린 남자 친구가 버거웠고,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 오니 모든 상황과 말들이 날카롭게 느껴졌다. 컨디션을 회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앞으로 해야 할 것들에 대한 얘기를 듣는 건 생각보다 끔찍했다. (역시 난 예민 보스 오브 보스였다.)


5일 차가 되니 오후 세네시(한국 시간으로는 밤 11시)만 되면 찾아오던 졸음도 어느 정도 달아났다. 컨디션을 회복하자마자 비자 신청을 했다. 이제 스스로 넘어야 할 산은 다 넘었다. 최선을 다했으니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비자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여행자처럼 지내려 한다. 걱정 한아름 껴안고 지내는 거 말고, 가장 흥분되는 마음으로 탐색하고 탐험하면서, 재미있게.

작가의 이전글 서른 살 감성의 눈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