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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히 Jan 12. 2021

서른 살 감성의 눈사람

서울에 눈이 온다는 친구의 말에 창밖을 봤다. 1시간 떨어진 이곳은 잠잠했다. 눈이 오지 않는다고 입을 삐죽 내밀 나이는 지났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노트북을 하다 고개를 돌렸다. 창밖엔 눈이 아주 조금씩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슬로모션이라도 걸린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었다. 홀린 듯 패딩을 입고 밖을 나섰다. 녹지 않은 눈 위로 새로 내린 눈이 백설기 가루처럼 쌓이고 있었다. 동영상과 사진을 찍다 말고 다시 집에 들어와 장갑을 챙겨 나갔다. 


눈사람, 웃상으로 만들었다. 나무 그네도 태워줬다


마지막으로 눈사람을 만든 게 언제였더라. 스무 살 이후로는 딱 한번, 눈이 펑펑 오는 날 온 가족이 뛰쳐나가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서른 살이 되고는 처음이다. 혼자서 눈사람을 만든 건 인생 통틀어 처음이고. 10일 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은 게 화근이었나. 그간 축적된 에너지가 나를 눈사람 만들게 했다.


어렸을 땐 장갑을 끼고도 손이 빨갛게 틀 정도로 해가 질 때까지 눈사람을 만들었다. 얼마나 재밌었으면 지금도 그때의 모습이 생생할까. 언니랑 동생이랑 잘 뭉쳐지는 눈을 고르고 골라 주먹만 한 눈덩이를 만들어 굴리고 또 굴렸다. 굴리고 굴리고 계속 굴려 우리 키만큼 큰 눈사람을 만들었다. 마지막엔 꼭 엄마, 아빠를 불러다가 작년과 비교해 눈사람이 더 커졌는지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1년 사이 우리가 이만큼 컸다는 걸 눈사람을 통해 평가받고 싶었던 것 같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오늘은 손이 시리기 직전까지만 만들었다. 아주 작게 내가 만족할 정도로만.


눈발이 거세졌다. 폭설에 피해 입는 사람들이 또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실실 쪼개며 눈사람을 만들던 나는 어디 가고 다시 걱정이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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