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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Dec 09. 2023

격려와 지지로 마무리하는 한 학기

감격의 16주차 일상

박사과정 첫 학기의 마지막 주간이 끝이 났다. 감격스럽다. 학기 시작할 때만 해도 강의계획서들을 보며 어떻게 다 하나 싶었다. 발표와 개인상담, 집단상담, 토론 수업, 티칭 등 온통 다 "새로운" 경험들 앞에 두려움과 불안으로 잠 못 이루는 밤도 많았다. 5-6주 차 무렵에는 로딩에 무리가 와서 무너질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것을 다 지나고 왔다는 사실에 가슴 뻐근한 감동이 밀려온다.



스스로 매번 '새로운' 도전이나 과제를 앞두고 상당히 압도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다 지나고 보면 어떻게든 잘 끝낸다는 사실을 기억해 보려고 한다. 그러면 다음 학기에 또 다른 '새로움'들이 조금은 덜 두렵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서다. 아무튼 전혀 새로운 나라에서 낯선 언어로 교육 시스템에 적응했다는 것은 충분히 칭찬해 봄직하다.



Thanksgiving 주간 이후로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가 조금은 어려웠다. 마음도 들떴었고, 한 번 놀고 오니 계속 놀고 싶었다. 하지만 이놈의 학교 프로그램은 일상으로 빠르게 복귀할 수 있도록 많은 일들을 주며, 아주 고맙게도(?) 적응을 돕고 있다. 학기말 과제들이 아직 남아있어서 부지런히 쳐내고 있다.


그런 와중에 마지막 주간에 감사하게도 많은 격려와 지지를 받았다. 쉽지 않았던 첫 학기 마지막 주간의 격려와 따뜻함이 넘쳐나는 일상을 들여다보자.


과제로 에세이나 페이퍼를 제출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을 마치면 교수님들이 채점을 꽤 빠르게 해서 피드백을 보내준다. 일단 피드백은 무조건 칭찬으로 시작하는데, 리치함 그 자체다. 미국 학생들은 칭찬을 이렇게 많이 받으면서 공부를 하는구나 싶었다.


한국 대학원에서는 학기 말 성적 열람 때 한 번에 점수만 확인하는 식이거나, 피드백을 받을 때는 주로 부족한 점 위주로 혼나듯이 받았기에 평가나 피드백이 두렵고 무서웠다. 모쪼록 열심히 해서 낸 결과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다. 티칭하는 수업에서도 학생들의 과제를 채점해서 줄 때, 이 부분을 유념해서 받은 만큼 충분한 격려와 구체적인 피드백을 보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과 집행부(?)에서 마지막 주간에 샌드위치와 베지 스틱, 과일, 커피와 핫 초콜릿을 제공하면서 프로그램에 있는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손 편지로 격려 메시지를 적어주었다. 각자 이름이 적혀있는 편지봉투 안에 손 편지로 격려 문구가 적혀있었다. 아마도 학생 수가 적은 프로그램이라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무엇이 되었든 따뜻하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마지막 주간이자 시험 주간. 단과대 도서관에 자리마다 아주 조그마한 인형과 함께 격려의 문구가 적혀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스스로를 돌아보고 격려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하루에 감동을 몇 번을 받으라는 건지. 사소함이지만 긍정적인 말과 격려는 하루 전반의 정서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해 본다.



  학과에서 제공한 다과들과 상담 센터에서 친구가 준 Candy Cane 등등 온정과 먹거리가 넘치는 마지막 주였다. 심리 상담을 연달아 하노라면 머리를 많이 써서 배가 자주 고파오는데, 간식이 있으니 행복했다. 사진을 보아하니 이쯤 되면 랜치소스를 먹으려고 채소를 먹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 본다. 모쪼록 간식으로 배도 채우고 마음도 채우고 훈훈한 16주 차의 마무리였다.







 빼놓을 수 없는 페이퍼, 페이퍼, 그리도 또 페이퍼. 딱 3개만 더 쳐내면 완전히 끝이다. 겨울 간식 잔뜩 사다 놓고 연달아 까먹으며 열심히 써 내려간다. 귤과 라떼의 조합이 좋다. 출출해지만 고구마도 쪄서 겨울 간식 조합으로 위로 삼는다. 학기 초에는 페이퍼 하나 쓰는데도 엄청 오래 걸렸는데 이제는 적당히 갈겨쓸 부분은 날려 쓰고 성심껏 쓸 부분은 성심껏 쓰며 완급조절을 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시험을 잘 치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은 편이었다. 대학도 논술전형으로 갔고, 긴장이나 불안 수준이 높아서 시험에는 영 젬병인데, 미국에 오니 발표랑 페이퍼로만 성적을 받을 수 있어서 좋다. 물론 시간은 훨씬 더 걸리지만 말이다. 특히 상담 심리 전공의 경우 시험이 거의 없다시피해서 중간고사 기말고사의 개념이 없고 그냥 학기 내내 페이퍼를 쓰고 있거나 매주 발표 준비를 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모든 전공이 그런 것은 아니었으니. 시험이 지뢰밭처럼 깔려있는 남편 네 전공의 깜지다. 똑같은 Ph.D. 과정일지라도 전공에 따라 이토록 공부 내용이 천차만별 이이다. 저 기호들은 대체 뭘까? 외계인과 소통할 때 쓰는 것일까? 숫자도, 레터도 아닌 외계어의 향연을 어떻게 사람의 뇌로 이해하는 것인지, 시험은 어떻게 치르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해는커녕 말로 어떻게 읽는지도 모르겠다. 두통이 올 것 같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대학원생 둘이 사는 집의 평일 밤 전경이다. 밤 부엉이 체질의 남편과, 아침형인 아내는 공부하는 시간대가 잘 안 맞아서 의외로 같이 앉아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하여 드물게 같이 앉아있는 날의 풍경을 한 컷 남겨보았다. 페이퍼 공장을 가동 중인 아내와 코딩 공장에서 분투 중인 남편의 모습이다. 짠 내 나는 두 만학도들의 나날들이 훗날에는 어떻게 기억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생존을 축하합니다-! 세상 아늑한 동기의 집에서 코호트 다 같이 운동복 입고 먹고 마시며 놀았다. 겨울 방학 동안 고향으로 떠나는 친구들이 있어서 미리 다 같이 모였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우는소리도 하며 스트레스를 풀다 왔다. 전공에서 오는 힘듦에 있어서 만큼은 척하면 착, 말 안 해도 공유가 되는 점이 가장 편하다.


사람 운이야말로 삶에서 어쩌지 못하는 가장 큰 변수인데, 다행히 동기 여섯 명 다 순하고 사려 깊은 친구들을 만나서 감사한 부분이다. 한 명의 낙오자나 소외되는 사람 없이 여섯 명이 따로 또 같이 순항 중이라 마음이 좋다. 같은 세부 전공 프로그램이지만 연구 영역이 서로 완연히 다른 까닭에 각자의 영역을 배우고 또 응원해 줄 수 있는 점이 좋다.



  동기네 집이 놀기 너무 좋아서 겨우내 타운에 남아있는 사람들끼리 아지트처럼(?) 활용하기로 했다. 겨우내 춥고 날씨도 흐리멍덩한 블루밍턴인지라, 겨울에 친구 집이 놀기 가장 좋은 옵션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힘들다'라는 것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다가오지만, '힘들어도 값진' 것들이 있음을 새삼 깨달아가는 요즘이다. 고군분투했던 한 학기였지만 그 과정이 값어치가 있었다고 느껴진다. 다음 학기는 또 얼마나 힘들지 생각하면 두렵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값지게 힘들다면 감내해 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또, 많은 격려와 지지 속에 마지막 주를 마무리하고 있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받은 만큼 주변에도 나눌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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