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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Jan 08. 2024

늘 그렇듯 삶은 준비 시간을 주지 않고

또 새 학기 개강이 도래하고 말았다.


내일인 월요일부터 새 학기 첫 주가 시작되는데, 지난 금요일부터 동기 단톡방이 떠들썩했다. 월요일에 있을 수업 2개에서 첫 시간부터 퀴즈와 디스커션이 있다는 공지 메일이 왔기 때문이다. 교과서 챕터 1개와 논문 5개가 당장 월요일까지라니. 하다못해 책을 구할 시간도 안 주고 퀴즈를 보다니 말이다.


  다들 서로 교과서를 구하랴, 접근 권한이 없는 논문 파일을 구하랴 카오스가 아닐 수 없었다. 하다못해 개강 첫 주에 교과서 첫 챕터 정도만이라도 인터넷에 올려주시지 정말이지 원망스러운 주말이 아닐 수 없다. 부랴부랴 책이며 논문이며 구해서 주말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삶은 늘 그렇든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옜다, 일단 어떻게든 하고 봐라'하며 고생을 시키는 아주 고약한 녀석이다. 마음은 아직 겨울방학의 템포로 저 따스운 전기난로 속 게으른 채 있는데 말이다. 개강을 받아들이지 못한 마음이 온몸을 배배 꼬며 시위를 한다. 당장 해야 할 것들과 한참 못 따라오는 마음 사이에 오도 가도 못한 채 고통받을 뿐이다.



   겨울은 해도 잘 안 뜨고 우중충한 날이 많다. 센치하다. 공부방에 휘황찬란 전구를 달아보니 기분이 훨씬 났다. 오히려, 어둡고 흐린 날 전구가 더 예뻐서 흐린 날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반짝반짝 전구를 켜고 유튜브에서 공부할 때 듣기 좋은 재즈음악을 튼 채 어떻게든 마음을 달래며 할 일을 시작해 본다.


  공지가 너무 늦게 나와서 다 못 읽어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첫 주부터 과도하게 몰아붙이다가는 일찍 탈이 날 것 같다.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요령껏 하고 못하는 부분은 놓아주자. 주어진 시간 안에 다 하기에는 애초부터 너무 힘든 스케줄이다, 휴-.


   스트레스 받을 때 머리 띵하게 단 게 그렇게 당긴다. 크림 잔뜩 풀어 넣은 커피(2잔 째)와 녹진-한 미쿡 초콜릿 줄줄이 까서 먹으면 기분이 한결 났고 논문도 잘 읽히는 기분이다(?) - 어디까지나 기분이라고 했다-. 어휴, 상황이 이런 걸 어쩌겠나 어떻게든 스스로 어르고 달래고 비위 맞춰가며 하는 데까지 해야지. 들숨에 한숨 날숨에 한숨을 쉬며 꾸역꾸역 머리에 집어넣어 본다.



   또 이번 주에는 대면 티칭 수업으로 대학생 아이들을 만난다. 미국 소규모 학부생 수업에서는 인터랙션이 중요하다고 들었다. 미국 교육 시스템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좋은 선생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보려 한다.


  미국인 친구들에게 어떤 것들을 주로 하는지 물어봤는데 첫 시간에는 서로 알아가는 액티비티를 많이들 한다고 한다. 하여, 열여덟/ 열아홉 살 대학생들의 환심을 살 초콜릿 묶음과 (그렇다, 위에서 혼자 이미 조금 까먹은 그것이다) 인덱스카드를 마트에서 사 왔다. 첫 시간에 할 액티비티와 강의자료도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다. 그래도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사실 겨울방학에 새 학기 바뀐 티칭 과목 공부를 끝내지 못해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방학이 워낙 짧아서 어쩔 수 없었다. 하는 데까지 하는 거다. 어떻게든 한 주 살이의 마음으로 임기 응변해 나아가리라 믿는다.




    돌이켜보면 삶이 충분한 준비 시간을 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저 벼랑 끝에 밀치며 날갯짓을 가르치는 새같다.  어떻게 보면 준비를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저 새로 시작하는 이 학기가 무탈히 흘러가기만을 바라며, 혹독한 삶의 훈련에 다시금 임해본다. 개강하는 미국의 모든 원생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응원을 전하며 글을 마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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