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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Mar 08. 2024

꽃이 피자 봄방학이 불어온다


  9주 차 생존 완료다. 어느 학기 하나 쉬운 학기 없구나. 그래도 16주 대장정의 반환점을 돌고도 한 주를 더  살아보냈다. 웬만하면 글쓰기는 포기하지 않으려 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근 몇 주 간 혼돈 그 자체였으나, 감사하게도 봄방학 앞두고 할 일들을 다 털어냈다. 지난 땡스기빙 주간은 여행 가기 전까지 페이퍼 3개를 털어야 해서 직전까지 말라죽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덕분에 죄책감이나 조여옴 없이 편안하게 봄방학 주간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졸업하는 그날까지 할 일이 없을 때가 있을까 싶었는데 생겨버렸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격렬하게 쉬어보려고 한다.


 한동안 정신없었던 일상들을 두서 없이 담아보았다.

   연구 방법론 수업에서 소논문 데드라인이 있던 주간, 동기들과 도서관에서 라이팅 그룹을 했던 날이다. 시간이 생겨서 동기들 오기 전에 조금 일찍 가서 먼저 시작했다. 창가 뷰도 어여쁘고, 공짜 피자도 받아먹으며 (N 번) 진척을 많이 시켰다.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고, 교수님께 신나게 초안을 보내자마자 피드백을 한다발 받고 좌절했던 날이다.  속상한 마음 추르고 다시 싸매고 앉아 머리를 쥐어뜯은 결과, 나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왜 배움은 눈물 없이 이루어지지 않나 모르겠다. 그래도 잠시만 우울하고 금방 또 대폭 뜯어고친 점은 칭찬해 본다. 원래 다 속상해하면서 배우는 거다. 안 나아진 것보다는 났지 않겠냐며 말이다.  




   외부 심리 상담 실습 장소가 정해졌다! 운 좋게 1지망이었던 센터에 합격을 하게 되어 기쁘다. 규모도 크고, 내담자가 꽤 많은 곳이다. 면접 때 엄청 떨렸지만, 대화 자체가 유악했고 배우는 점도 있어서 나름 즐거웠다. 다행히 일찌감치 합격을 받게 되었다. 랩 선배도 이곳을 거쳐갔는데, 슈퍼바이저 선생님들도 좋고 체계도 잘 잡혀있어서 수련하기 괜찮은 포지션이라고 한다. 다만, 로딩이 꽤나 빡센 것이 단점이라고 한다. 일복을 타고난 걸까. 다음 해도 편하긴 글렀다. 그래도 합격한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도 유난히 예쁘거나 새로워 보일 때가 있어 종종 사진을 남긴다. 퇴근길에 부쩍 길어진 해와 불긋불긋 한 석양에 감탄하며 한 컷 남겨보았다. 저녁까지 먹고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니 하늘에 별들이 꽤 많이 박혀있었다. 새삼 시골은 시골이구나 생각해 보며 하늘의 별들도 남겨보았다. 갤럭시 S23 최고다. 별을 꽤나 잘 담는다.



    새로 시작한 집단상담을 마치고, 바로 슈퍼비전도 받고 점심 먹을 겸 한숨 돌리러 나왔다. 단과대 내 볕이 제일 잘 드는 테라스 자리에서 광합성하며 점심 먹었다. 오후에 바로 개인상담 들어가기 때문에 점심은 최대한 가볍게 먹는다. 상담 센터가 볕이 안 드는 북향인데다, 무드등을 켜고 어두운 데서 차분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점심을 조금만 많이 먹어도 잠과의 사투가 된다. 이날은 집에서 싸온 그리스 샐러드를 먹고 커피도 잔뜩 수혈해서 맑은 정신으로 상담에 들어갈 수 있었다.




   랩에 새로 들어온 석사생 RA와 공강시간에 커피를 마셨다. 티베트인 친구인데, 링크드인 통해서 컨택을 해왔다. 어찌어찌 지도 교수님에게 말해서 우리 랩에 조인하게 되었는데, 열심히 하고 고마운 친구다. 지금은 랩에서 RA로 연구 일을 도와주는데, 작년에 입학 전 1년 정도 동안 랩에서 내가 했던 RA 일을 물려받아 하고 있어 괜스레 더 마음이 가고 잘해주게 된다. 작년 생각이 나서 그렇다.


   랩 일이 적지 않은 편이라 힘들까 봐 커피 사주려고 본 건데 되려 선물만 잔뜩 받아왔다. 티베트 엽서에 손 편지를 빼곡히 적어서 여러 간식과 플래너를 함께 주었다. 귀여운 감성이 있는 친구다. 티베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는데 이 친구를 통해 많이 듣고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번 학기 제일 어려운 소논문 과제를 제출하고 바로 다음날 동기와 회포를 풀러 먹부림을 한 번 하고 왔다. 한국식 핫도그와 버블티를 파는 곳이 있어서 진리의 감자 핫도그를 한바탕 때리고 왔다. 동기랑 소논문, 티칭, 업무 로딩 등등 오만 것들을 다 저주하며(?) 열띤 성토의 장을 펼치다 왔다. 역시, 맛있는 것 먹으면서 직장 욕하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는 그만이다.



    주말에 볕도 너무 좋고 날도 포근해서 혼공을 하러 야외 좌석이 있는 카페에 갔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쨍한 햇살, 볕을 적당히 막아주는 파라솔까지. 공부하러 갔다가 놀기만 하고 온 나들이였다. 두어 시간 머무는 동안 풍경도 즐기고, 사람과 강아지들도 구경하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이 감성을 알았으면 좋겠건만, 집돌이인데다가 감성은 엿 바꿔 먹은 탓에 같이 왔어도 핸드폰만 보고 있었을 듯싶다. 그래도 상관없다. 혼자서도 잘 놀뿐더러, 좋은 건 혼자 봐도 여전히 좋다! 언제 어디 있어도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것. 그게 내가 추구하는 길이다.


  며칠 감기 기운이 있어 조금 아팠다. 수업을 온라인 줌 수업으로 돌리고 집에서 티칭을 했다. 한국은 감기 증상 조금 있는 걸로 재택을 하거나 일을 쉬는 것을 상상하기가 힘든데, 미국은 아픈 채로 학교에 가면 사람들이 되려 싫어한다. 교직원들이나 대학원생들도 근무하다가 아프면 바로바로 조퇴를 한다. 여전히 적응이 잘 안된다.


   감기 기운이 심한 것도 아니고 몇 가지 증상이 일부 있었는데, 학교를 가야 되는 건지 안가야 되는 건지 헷갈렸다. 주변에 물어보니 하나같이 오지 말래서 수업도 온라인으로 돌리고 심리 상담도 취소하고 집에서 푹 쉬었다. 마음 한편에서 '이렇게 경미한 감긴데 쉬어도 되나?'라는 마음의 소리가 반복해서 울려 퍼졌다. 대신 감기 초기에 푹 쉰 덕에 이틀 만에 회복이 되고 증상이 다 잡혀서 금방 복귀할 수 있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네? 싶은 경험이었다.


   가르치는 수업에서 중간고사를 쳤는데 아이들이 시험을 다 잘 봐서 기분이 좋았다. 문제도 꽤 어렵고 많아서 혹여나 평균이 너무 낮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성적이 좋았다. 이 학교는 학부생 성적을 자동으로 전산에서 산출하기 때문에, 시험 성적이 너무 낮으면 자칫 클래스 전체 성적이 B가 되는 경우가 있어서, 강사가 성적 부스터를 올려서 어느 정도 A도 있게끔 해야 한다. 다행히 아이들이 이 시험을 잘 봐서 별다른 조치는 안 해도 될 것 같다.


  아침으로 먹는 요거트가 주중에 동이 나서 먹을 것이 없었다. 박사생 둘이 사는 집의 현실이랄까. 피크로 바빴던 주라 주말에 장을 못 봤더니 평일 먹고 갈 게 없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지는 대목이다. 하여 맥모닝 세트로 본의 아니게 플렉스를 했다. 어차피 아침 겸 점심으로 먹는 거라 두 끼라고 생각하면 큰 지출은 아닌 걸로. 일정이 애매하게 11시부터 3시까지라 그냥 시작 전에 배를 채웠다. 언제 먹어도 맛있다 맥모닝. 비스킷에 버터 향이 그득그득했다.



  학교 앞에 벌써 꽃이 피기 시작했다. 3월은 3월인가 보다. 진한 분홍색 꽃이 예쁘게 펴서 구경을 나갔다. 주변은 아직 황량하지만 그래서인지 더 돋보였다. 잠시나마 꽃구경을 하니 봄도 실감이 나고, 마음도 설레는 기분이었다. 우리네 어머니들처럼 꽃 사진을 몇 장 더 공유해 본다.






개화와 함께 캠퍼스에 봄방학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다시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의 본분을 다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설레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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