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교수님이 저 멀리 가족여행을 길게 떠나셔서, 본의 아니게 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일은 주고 가셨지만 말이다. 8월이라는 달이 도래함으로써 개강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애써 그 두려움을 외면한 채 마지막 여름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최대한 여유롭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
새 학기에 가르칠 수업 강의계획서와 온라인 수강 플랫폼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작하기는 역시나 어려웠으나, 작년에 가르쳤던 과목이라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어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올해는 두 번째니 작년보다는 훨씬 편안하고 자신 있게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벌써부터 강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참 달갑지는 않다. 강의계획서 수정하고, 플랫폼 셋업 하는데도 한 세월이다.
조만간 오리엔테이션 영상도 찍고, 천천히 셋업을 마쳐나아가야겠다.
큰 연구 프로젝트와 그 안에 작은 갈래로 진행할 2년 차 논문 연구 프로젝트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애정을 가지고 진행 중인 2년 차 연구라, 신경이 많이 쓰인다. 직접 디벨롭해서 그런지 연구 주제에 흥미가 높다. 설레는 마음으로 데이터가 들어오는 족족 경향성을 계속 살피고 있는데, 문제는 생각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60% 밖에 모이지 않았지만 큰 경향이 바뀌진 않을 듯하여 걱정이 많다. 결과가 잘 안 나오는 게 연구하다 보면 흔한 일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속상할 것 같긴 하다.
일단 당분간은 초조한 마음으로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하겠다.
동기 중 핵인싸 친구의 생일파티에 다녀왔다. 원래는 클럽에서 광란의 파티를 주최하였으나, 클럽 안 가는 내가 안 올 것 같아서 클럽 파티 앞에 건전한 저녁 모임을 붙여서 초대했다. 신경 써줘서 기분이 좋았다. 덕분에 가서 꽃과 카드로 생일도 챙겨주고, 오래간만에 맛난 음식도 먹고 올 수 있었다. 나는 저녁을 먹고 돌아오고, 어린 친구들은 클럽에 가서 뜨거운 밤을 보냈다고 한다.
다른 날, 동기 집에 모여서 카드게임의 밤을 주최했다. Dutch Blitz라는 게임인데 되게 재밌었다. 처음 룰을 배우면서 하느라 조금 헤매기도 했지만, 어렵지 않아서 금방 익숙해졌다. 다들 승부욕에 불타서 소리 지르고 땀까지 뻘뻘 흘려서 웃겨 죽는 줄 알았다. 게임하는 동안은 다른 모든 것을 다 잊을 수 있어 좋았다. 이 외에도 다른 카드게임과 보드게임을 동기들이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여, 다음번에 또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여전히 먹는 것은 아주 자알 먹고 있다. 여름 방학이 되니 삼시 세끼 챙겨 먹는 것이 일이고 귀찮긴 하나, 요즘에는 요령이 많이 생겼다. 쉽게 해먹을 수 있는 한 그릇 음식 위주로 휘뚜루마뚜루 해먹고 있다.
요새 남편이랑 아침에 먹는 크루아상에 온전히 매료되었다. 저렴하게 산 드롱기 에어프라이 복합기가 일을 너무 잘한다. 마트에서 산 크루아상을 5분간 토스트 하노라면 온 집 안에 버터 냄새가 퍼진다. 버터 향에 커피 내리는 냄새에 아침이 행복하다. 바삭하게 구워 나온 크루아상을 와삭 베어 물면 입안에 버터 천국, 밀가루 천국이 펼쳐진다. 은은한 플레인 크루아상을 맛보다가 딸기잼까지 얹어 먹으면, 파리가 여기지 뭐 어디야.
미국의 아이싱 가득한 조리빵들이나 설탕에 절인 도넛을 지나치고, 그나마 먹을만한 빵은 크루아상인 것 같다. 남편과 요즘 아침에 크루아상에 커피 먹을 생각에 벌떡 일어난다. 둘 다 아침잠도 많고 잠 깨는 데 오래 걸리나, "크루아상?" 한 마디에 스멀스멀 몸을 일으키는 요즘이다.
행복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 별미, 나의 비장의 무기 메밀 소바다. 소스를 조금 짭조름하게 만들어서 메밀국수를 조금씩 넣어서 먹으면 그만이다. 얼음에 넣어둔 메밀국수에서 물기가 조금씩 딸려와서 일부러 조금 더 짜게 만든다. 기호에 따라 고추냉이도 섞어 먹으면 좋다. 미국에서도 여름에는 냉모밀 생각이 많이 나는데 은근히 잘 안 판다. 그러면 어떡하나, 만들어 먹어야지. 쯔유를 공수해와서 휘뚜루마뚜루 해 먹는 우리 집 여름철 별미다.
남편이 또 어디서 봤는지, 고깃집에서 파는 된장 술밥이 먹고 싶단다. 다행히 유튜브에 레시피가 많이 돌아서, 비슷하게 흉내를 내 보았다. 된장 술밥에 참치 스테이크를 구워내서 같이 먹었다. 기름기 많은 차돌이 있었으면 베스트였을 텐데 차돌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한국처럼 기름 맛있게 붙은 고기가 미국에 잘 없는 것 같다. 블랙 앵거스 다 필요 없고, 결론은 한우가 최고다.
한 번씩 보양식으로 먹어주는 우리 집 시그니처 맑은 돼지국밥이다. 차이브도 사 와서 파와 함께 종종 썰어먹으면 보양식 부스터다. 만들면서 기름을 다 걷어내서 돼지지만 국물에 기름이 없고 깔끔하다. 잘 익은 김치랑 먹기 그만이다. 여름이라 냉모밀이나 냉면 이런 시원한 음식에 손이 많이 가지만 한 번씩 단전까지 뜨뜻하게 채워주는 이열치열 음식도 필수다.
이번에는 온갖 재료들을 다 때려 넣고 끓인 소고기 전골이다. 양파, 양배추, 대파, 버섯, 두부, 고기가 들어가 있다. 보글보글 끓여서 따로 반찬 없이 한 끼 뚝딱이다.
연어 콩 샐러드다. 건강 엄청 챙기는 편이다. 보기보다 재료가 꽤 다양하게 들어간다. 바닥에 깔려 잘 보이진 않지만 녹색 채소 믹스, 삼색 파프리카와 오이가 있다. 그 위에 퀴노아 콩과 병아리콩을 쪄서 양파와 토마토를 다져 넣고 바질 페스토와 아룰로스로 마리 네이트 한 콩 샐러드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구운 연어를 올리면 된다. 몸에도 좋은데 맛도 풍부하고 좋다. 자칭 슈퍼푸드 샐러드다.
간간이 외식도 한다. 서브웨이처럼 원하는 대로 고른 토핑을 화구에 바로 따끈따끈하게 구워주는 즉석 피자집이다. 갓 나온 피자가 제일 맛있다. 그리고 버거는 파이브 가이즈 버거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줄 안 서고 먹을 수 있다는 그 버거집이다. 개인적으로 피자와 버거가 금방 물려서 자주 못 먹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집밥 스킬이 발전하는 것 같다.
밤에 거의 매일 남편과 영화를 보고 있다. 맥주와 하겐다즈는 덤. 개강하면 이 시간을 얼마나 그리워할까...... 행복 별거 없다. 아침에는 크루아상에 커피 먹고, 밤에는 영화에 맥주와 하겐다즈 먹으며 깔깔대는 것 그거면 되는 것이다. 이 행복 조만간 송두리째 학교에 뺏길 예정이라 최대한 더 누리도록 하겠다.
혼자 놀 때는 서진이네 2 보면서 하이볼 홀짝인다. 남편이랑 컨텐츠 선호가 안 맞아서 죽어도 같이 못 보는 것들이 몇 개 있다. 남편은 브이로그스러운 컨텐츠를 보면 죽는 병에 걸려있다. 이해가 안 된다. 세상 힐링 되고 좋기만 한데 말이다. 부끄럽지만 술을 워낙에 못 먹어서 맥주로 하이볼을 만들어 먹는다. 도수는 2에서 3도 정도 되지 않을까 추정되는 음료다. 저 잔이 10이라고 하면 레몬즙 1, 사이다를 3 정도 넣고 나머지 6에 맥주를 넣어 마시는 음료다. 들어는 봤나, 맥주 하이볼?
동기가 예전에 준 꽃잎차를 마시며 포스팅을 쓰고 있다. 이 잔잔한 행복이란......! 건조하고 납작하게 말려있던 꽃잎이 뜨거운 물을 붓자 통통하고 예쁘게 피어난다. 방학을 맞아 피어난 내 감성 같달까? 주접 그만 떨고, 다시금 건조하고 납작한 건조 꽃잎으로 돌아갈 날을 헤아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