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늦게까지 진행된 결혼식의 여파로 조금 피곤했다. 또,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투어 전날 오후 7시에 열리는 로키 마운틴 국립공원의 베어 레이크 오전 입장권을 제때 구매하지 못해서 가장 늦은 오후 4시 입장권만을 겨우 획득했다.
여러모로 기대했던 것보다 변수가 생긴 아침이라 약간의 저기압으로 시작하는 하루였다. 그렇지만 늦어진 대로 느긋하게 하루를 열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피로를 회복하고 기운을 차리기 위해서, 우선 브런치와 커피를 사 먹을 수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시럽 다운타운 Syrup Downtown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미국식 아침식사 전문점에 갔다. 일요일 브런치 시간대라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남편은 채소가 가득 들어간 오믈렛과 감자요리를, 나는 연어와 샐러드 그리고 감자와 퀴노아 콩을 버무린 요리를 주문했다.
개인적으로 이 연어요리를 굉장히 맛있게 먹었다. 구운 연어 아래에 샐러드가 깔려있는데, 참나물 무침과 같은 맛이 나는 채소였다. 생김새도 뾰족뾰족한 게, 영락없는 참나물이었다. 미국에서 참나물 샐러드 맛집을 찾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연어와 조합이 좋아서 정신없이 싹싹 비웠다.
사진에는 없지만 뜨거운 카푸치노를 시켰는데 진하고 풍미가 좋았다. 허름하고 어두컴컴한 아침식사집 같아 보이는데 로컬 사람들이 많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커피와 맛있는 아침 식사로 텐션이 올라왔다. 덴버 다운타운 Avis에서 렌터카를 빌려서 씩씩하게 로키 마운틴 국립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신나게 차를 몰아 로키 마운틴으로 가는 길이다. 멀리서부터 산맥이 펼쳐져 감탄을 자아냈다. 웅장한 자태에 점차 로키산맥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설렜다. 덴버 다운타운에서 숙소가 있는 에스테스 파크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가는 내내 도로의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로키 마운틴 국립공원을 찾는 경우, 공원 내 캠핑 퍼밋을 받고 캠핑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대부분 에스테스 파크라고 하는 곳에서 숙박을 한다. 로키 마운틴 바로 옆에 숙박업소와 레스토랑들이 모여 있는 작은 관광 타운이다. 우선 에스테스 파크에 있는 숙소에 가서 짐을 좀 내려놓고, 로키 마운틴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에스테스 파크 Estes Park
에스테스 파크에 도착해서, 미리 예약해둔 숙소로 향했다. 자그마한 오두막 숙소였다. 원래는 체크인 시간이 4시인데, 2시 30분에 도착했음에도 체크인을 해주었다. 짐들을 숙소에 놓고 한시름 쉬어갈 수 있어 편했다. Bear lake timed entry가 4시로 예약이 되어 있어 잠시 뜨는 시간 동안 선크림도 바르고, 간단히 숙소에서 재정비를 했다.
로키 마운틴 국립공원 베어 레이크 Rocky Mountain National Park Bear Lake
방대하게 넓은 로키 마운틴 국립공원에서 가장 먼저 찾은 트레일 코스는 베어 레이크라는 곳이다. 하이킹하기에 아름다운 경치로 잘 알려져 있는 스팟이다. 때문에 여름 성수기에는 시간대별로 나뉜 입장권을 미리 구매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4시 입장권에 맞추어 베어 레이크로 향했다.
공원 입구부터 베어 레이크 주차장까지 접근하는 동안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하이킹을 하려고 작정하고 왔는데 비가 이렇게 와서 하이킹은커녕 무슨 구경이라도 제대로 하겠나 싶어서 속상했다. 그렇지만 일단 베어 레이크 주차장에 도착을 한 이상 무라도 썰어야겠다는 심정으로, 그냥 돌아갈까 고민하는 남편을 이끌고 씩씩하게 숲으로 들어갔다.
가장 가까운 곳에 베어 레이크가 있고 호수 주변으로 아리따운 트레일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베어레이크 주변을 가볍게 한 바퀴 돌고나니 비가 언제왔냐는 듯 하늘이 맑게 개고, 공기가 깨끗해서 사진도 청량하게 잘 나왔다.
그리하여 베어 레이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등산을 하게 되는데, 길을 따라서 Nymph Lake, Dream Lake, Emerald Lake까지 찍고 오는 것이 가장 인기 있는 트레일 코스라고 했다. 우리도 이 하이킹 코스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이곳은 이 트레일 코스의 시그니처 호수인 베어 레이크다. 트레일 코스의 초입에 있는데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한여름에 찾아서 그런지 더욱 푸르르고 색감이 찬란하다. 베어 레이크에 호수는 있는데 베어도 있어주어야 할 것 같아서, 키 링으로 달고 다니는 곰돌이를 출연시켜보았다.
베어 호수 주변을 천천히 한 바퀴 돌고,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하게 된다. 베어 호수 주변의 평지를 돌 때는 전혀 몰랐는데, 하이킹을 시작하니 고도가 확 느껴졌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확확 차고, 몽롱하고 머리가 띵했다. 초반에 고산에 적응하는 동안은 숨을 잘 쉬면서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도 많이 마시며, 천천히 이동하니 어느 순간 호흡이 터지면서 훨씬 편안해졌다.
고산지대에 적응하며 천천히 오르니 님프 호수(Nymph Lake)가 나타났다. 이 호수는 연잎이 둥둥 떠다니는 게 특징이었다. 베어 호수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나름의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는 호수다. 주변 뾰족뾰족하게 우거진 나무들과 오후의 햇살이 어우러져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님프 호수에서 한숨 돌리고, 다시 또 올라간다.
님프 호수를 지나 드림 호수로 가는 길, 본격적으로 경사가 진 길들이 나타나고 바위 사이사이를 잘 디디면서 올라가야 한다. 길이 험해서 땅만 보고 가던 도중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랐으니 - 엘크(Elk)가 등산로에서 풀을 뜯고 있는 것이다.
야생의 엘크는 생전 처음 보는데 실제로 보면 너-무 크고 뚱뚱해서(특히 하체와 엉덩이), 무서웠다. 사슴과 다르게 성격이 온순하지도 않은 녀석이라고 한다. 미국인들이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남편이 야생동물 마니아여서, 가까이 다가가서 보려고 했다. 나는 오래 살고 싶기 때문에, 멀찍이 떨어져서 관망하였다.
드림 호수에 가는 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꽤나 높은 곳에 위치해서 그런지 아래로 펼쳐진 숲과 나무들이 펼쳐진 것이 장관이었다. 고산병에 헉헉대긴 했지만, 올여름 방학 내내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인지 남편과 둘 다 비교적 쌩쌩하게 높이까지 잘 올라갔다.
드림 호수에 다다르자, 호수를 둘러싼 바위와 호수에 비친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다만, 하이킹을 늦은 시간부터 시작하다 보니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기온이 빨리 떨어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한참 불붙어서 신나게 오르고 있었는데, 안전을 생각해서 이 쯤에서 만족하고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에메랄드 호수와 정상까지 가보지 못해서 조금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날의 하이킹을 기약하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풀 밭에서 단체 저녁 식사 중인 엘크 떼를 조우했다. 길 옆에 엘크 때 거의 열 마리 정도가 흩어져서 풀을 뜯고 있었다. 사진보다 실제로 보면 훨씬 크다. 이토록 크고 통통한 야생의 엘크를 많이 볼 줄이야. 로키 마운틴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산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일몰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초라한 오두막 숙소지만, 주변 풍경과 석양에 절로 예뻐 보이는 버프가 씌웠다. 구름도 양 떼 같은 모양으로 참 아름다웠다. 숙소에 들어오는 길, 타이 레스토랑에 들려 참치롤과 연어롤을 사가지고 들어왔다. 집에서 가져온 비장의 무기 - 육개장 사발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와-. 등산하고 먹는 육개장 사발면은 정말이지 꿀맛이었다. 무슨 선견지명인지 이번에 한국에 다녀올 때 아빠가 여행용 접이식 포트를 사주었는데, 이번에 아주 요긴하게 썼다. 육개장 사발면 국물에 방금 포장해온 연어롤을 푹-찍어 호로록 먹으니 등산의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았다.
컵라면은 뭐니 뭐니 해도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하고 나서 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 등산을 하고 배가 곯을 대로 곯은 저녁, 혀끝에서 MSG가 춤을 추었다. 컵라면에 얼굴을 푹 박고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일정이 생각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으며 시작했던 하루였지만, 로키 마운틴의 대자연을 등반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육개장 사발면에 힐링 받으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다음 날 하이킹 일정은 12시부터 시작하는 입장권을 끊어두었기에,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기를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의 TMI: 미국인 친구 결혼식 포스팅이 다음 모바일앱 메인 '여행맛집' 탭에 소개되었습니다. 글이 잘 팔리는 것은 언제나 기분이 좋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