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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Oct 28. 2024

불쾌한 감정이 200% 상대의 탓으로만 느껴진다면,

그건 자기의 마음을 모르는 것일 지도

   누구나 자기 마음을 모를 때가 많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자기 마음을 알 필요가 있다. 자기 마음에 무슨 일이 생기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에서 용암이 펄펄 끓을 때면, 이게 시작되기 전에는 어떤 기본 상태였는지, 누가 혹은 무엇이 돌을 던져 촉발했는지, 그 촉발제에 대한 나의 반사적인 반응은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촉발제의 몫이고, 얼마큼이 나의 해묵은 습관적인 반응인지 분리해낼 수 있는지, 딱 촉발제의 몫만큼 촉발제에게 표현할 수 있는지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음을 만나는 일은 대체로 누구도 익숙하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감정을 들여다보고, 알아차리고, 조절하는 방법을 사회화하는 가정은 극히 드물다. 그렇지만 드물게 운이 좋다면 이런 소통을 배워나가는 유니콘 같은 집도 있다. 그런 경우는 삶이 한결 편해진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났다면 이런 과정이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에서 용암이 펄펄 끓어올라 계속해서 속이 터진다면, 잠깐 앉아서 생각을 해보자. 누군가 혹은 관계에서 오는 분노라면, 당연히 그 누군가를 향한 비난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비난하는 마음도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그것 역시 괜찮다. 다만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이 분노가 100% 누군가의 잘못에서 비롯된다고 믿어버리고 비난에만 함몰되는 일이다. 길을 가다가 밑도 끝도 없이 강력 범죄를 당한 경우가 아니라, 이 분노가 누군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이라면 특히나 비난 어린 생각을 재고해 보자. 관계에서 100% 타인만의 잘못은 없다. 나의 깊은 무언가와 촉발제가 안 좋게 만나 일으키는 부정적인 시너지 반응인 것이다.


     그렇지만 100% 타인의 탓으로 하고 싶을 것이다. 그 마음도 십분 이해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그렇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 있는 심연의 어둠을 굳이 알고 싶지도, 알아차리고 싶지도 않다. 가끔 어둠이 고개를 내밀지라도 구겨 넣기 급급하다. 사람이 본디 불편한 감정은 눌러버리거나 치워버리고 싶어 하는 생물이라 그렇다. 누구나 그렇다. 그렇지만 상대에 대한 비난은 언제든 꺼내기 가장 쉬운 마음이니, 언제든 다시 꺼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잠시 서랍에 넣어보자.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하거나 종이에 천천히 써보자. 내 자동적인, 반사적인 반응이나 습관은 무엇인지.


    세상에 우리를 열받게 하는 촉발제는 너무나 많다. 그것들은 어찌할 수 없다. 우리는 직장도 가야 하고, 가족도 계속 봐야 하고, 친구들도 봐야 하고, 모임도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촉발제에 따라붙어 용암을 몇 배로 끓어오르게 하는 우리의 반사적인 반응이나 습관만큼은 어떻게 할 수 있다. 반사적인 반응이나 습관이라 함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누군가의 A라는 말이나 행동에서 상처받거나 서운한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려도 꾹꾹 눌러 담고 말 않다가 그 사람이 B라는 다른 부분에서 사소한 잘못을 했을 때, 그것이 촉발제가 되어 A에서 생긴 감정을 B에서 죄다 터뜨려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사자의 마음에서는 이 분노는 100% 상대방의 B라는 잘못에서 기인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애초에 서운했던 A라는 부분은 해결되지 않고 엉뚱한 B라는 잘못만 가지고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은 일단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기분이 상하고 방어적인 상태일 것이고, 무엇보다 애초에 이 모든 감정이 A에서 왔음을 알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예시에서는 당사자가 A라는 포인트에서 마음이 서운했다는 것을 스스로가 일차로 알아차리고, B에서 터뜨리고 싶은 자동적인 반응이나 습관을 경계한 채 상대방과 A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이 쉬울 리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A라는 사건에서 상처받거나 서운한 스스로의 마음을 알고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그 상처받은 마음이 B라는 다른 사건과 연합되어 상대방에게 감정이 향하고 있음을 알고 분리해야 한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일은 B겠지만, A에 관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해묵은 자기의 반응이나 습관을 알아차리고 그것들과 천천히 화해해나가는 과정은 아주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도 여러 차례 의식적으로 연습하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상처받은 자기 마음을 조금만 더 잘 알 수 있게 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한결 덜 괴롭고, 더 수월하게 흘러갈 수 있다.


   여태껏 몰라왔다면 그것은 당신만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어렵고 겪는 일이다. 그러니 같이 연습해 보자, 소중한 관계를 망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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