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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골 박사생들은 가을에 뭐 하고 놀까?

사과 따며 놀지요 인디애나 Anderson Orchard

by 화햇


가을이 완연하다.



야외활동하기에 딱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때, 친구 나리의 제안으로 같이 Anderson Orchard에 사과 따기 체험을 하러 다녀왔다. 심리 상담 센터 스탭 한 분이 (하루뿐인) 가을 방학에 뭐 할 거냐고 물어봐서 사과 따러 간다고 했더니, 펌킨 패칭과 애플 피킹은 중서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을 시즈널 액티비티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인지,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어마어마하게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가족 단위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람이 정말 많이 있었다. 한적한 시골 대학타운에 살면서 이렇게까지 밀집된 광경은 퍽 오랜만에 본 듯했다. 간만에 본 인파(?)에 주차장에서부터 신이 나기 시작했다.


입구에는 가을 볏짚을 쌓아 만든 공간이 있었는데 아기들의 천연 정글짐 같은 느낌이었다. 가을 볏짚은 되게 약하고 퍼석하고 잘 부서질 줄 알았는데 빼곡하게 압축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되게 단단했다. 우리 집 큰 아기도 신이 나서 폴짝 뛰어올라보았다.





볏짚 놀이터를 지나 넓은 광장으로 들어서니 호박밭이었다. 종류도, 크기도 다채로운 여러 호박들이 주인을 기다리며 늘어져 있다. 너무 예쁘게 잘 꾸며두어서 10월에 방문하길 잘했다 싶었다. 특히나 호박의 색감 때문에 더더욱 가을 느낌이 물씬 느꼈다. 덕분에 따뜻하고도 가득 찬 이 가을의 정취를 원 없이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인들은 할로윈에 진심이다. 가족 단위로 총출동하여, 가져온 카트에 아이를 태우고, 남은 자리에 여러 종류의 호박들을 꽉꽉 채워 싣는다. 이렇게 사 간 호박들로 다들 집 안팎을 깜찍하게도 꾸며 두곤 해서, 10월은 집 앞에 데코레이션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더할 나위 없다, 인디애나의 10월!!



호박 밭(?) 지나 조금 더 안으로 들어오면, 헛간 내지 작은 동물원이 자리하고 있다. 미니 돼지, 각종 염소들, 알파카, 양, 타조, 조랑말, 등등 생각보다 더 다양한 동물 친구들이 한 데 모여 있다. 동물들 우유와 사료 주기 체험도 있어서 아이들이 많이 몰려 있다, 덕분에 귀여운 동물과 아이들을 한 큐에 볼 수 있어 귀여움이 배가 되었다. 동물들은 먹이를 얻기 위해 꽤나 저돌적으로 다가와서 스릴이 있다. 다만, 동물 수 대비 면적이 협소한 편이라 그런지 냄새가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휴!











구경을 충분히 한 뒤, 이제 본격 사과 밭으로 들어왔다. 고요하고 전원적인 풍경에 절로 마음이 힐링 되는 느낌이었다. 광활한 사과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꽤 부지가 넓어서 차를 타고 들어와서 이동하면서 따는 것도 가능하나, 이 아름다운 공간을 두 발로 천천히 두비며 눈에, 코에 이 가을을 가득 담고 싶어 걷기를 택했다.


사진처럼 맨 앞에 팻말에 쓰인 사과 종류를 보면서 자유롭게 사과를 골라 따면 된다. 입구에서 나누어주는 사과 봉지에 원하는 만큼 따서 담으면 된다.








온통 사과 천지였다. 바닥에도 어찌나 많이 떨어져 있던지, 발에 채고 밟히고 굴러다니고 난리도 아니다. 바닥에서 와인화(?) 되어가는 사과들이 아깝기도 하다. 밤이 되면 야생동물들의 좋은 야식이 되려나 모르겠다. 통로에서 안쪽으로 걸어들어갈수록 사과가 더 많이 달려있다.


고르고 골라 예쁜 사과를 톡- 따서 담는 재미가 쏠쏠하다. 중간에 정석적으로 둥글고 예쁜 사과도 딸 수 있었다. 마치, 중고교 미술 시간에 가운데 놓고 정물화를 그려도 될 만큼 어여쁜 사과를 따서 짜릿했다. 엄선해서 담은 사과들에 나도 모르게 애착이 생기고 있음을 느꼈다.





농장에서 사과 따러 다니는 게 유흥인 미국 시골 타운의 박사과정생 3인이다. 이토록 무해하고 건전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어필(?) 해 본다. 흙 밟고 사과와 나뭇잎 만지는 걸로 그저 행복한 사람들이다.


정신없이 사과들만 바라보며 다니다가 한 번씩 휙 일행들을 돌아보면, 사과밭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색감이 정말 예뻐서 사진이 잘 나온다. 볕이 천연 조명 역할을 해주고, 초록 초록한 잎들과 빠알간 사과들, 파란 하늘 배경 아래 서 있으니 존재만 해도 화보가 된다. 엄마 같은 마음(?)이 되어 호들갑을 떨면서 거기 한 번 서보라고 하면서 수요 없는 공급을 계속했다는 후문이다.



그렇게 따온 귀여운 나의 사과들이다. 집에 와서 깎아 먹어봤는데, 되게 달고 향도 풍부해서 맛이 있다. 가격이 시판 사과보다 딱히 저렴하지는 않으나, 입장료나 주차비 등 이런 부가비용이 발생하지 않은 채 즐기고 온 시간을 생각하면 나름 합리적인 편이다. 가을에 나들이 가기에 더없이 추천하는 곳이다.


먼저 가자고 제안해 준 나리 덕분에 너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 사실 되게 시골 사람인 척 해보았지만, 사실한 평생 서울에서만 살면서 이런 전원적인 체험을 해 본 일이 없어서 굉장히 색다른 가을의 추억이었다. 왜 이제서야 와봤을까 싶었다. 사과 농장에서 본 고즈넉한 풍경, 사과 내음, 호박의 색깔들을 아름다웠던 인디애나의 가을 심상으로 뇌에 고이 저장해두어야겠다.



내년 가을의 컴백을 다짐하며, 오래간 만에 오피스 일상 밖의 포스팅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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