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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Dec 31. 2022

발전한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닐지도 몰라

황만복 시집 #133




무엇인가 발전한다는 건

어쩌면 좋은 일이 아닐지도 몰라

공허하던 것을 채워줬던 넉넉함과

초라했던 날이 나눠주던 아름다움을

우리는 금세 잊어버릴 테니


늦은 새벽 쌓여가는 하얀 세상 위로

우리는 처음 발자국을 하나 둘 새겨갔지

발 끝과 머리 위로 전해지는 오케스트라에 

오늘만큼은 저 딱딱한 것 위로 자빠져도 좋았는데

썩지 않는 사진 한 장이 우리의 한해를 지워버렸어


종이 백 장을 어깨 뒤로 던져가며

은근히 전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지

뜨거운 잉크 냄새가 코끝까지 전해지고

이 새벽이 다 가더라도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는데

묵혀가는 메시지들이 우리의 표정을 건조하게 만들었어


무엇인가 진화한다는 건

어쩌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아닐지도 몰라

상처받는 말들도 그저 미련해 보였던

갈라지는 마음에서도 마냥 스며들었던

지난날 너와 나 사이에서는



ⓒ Aeri



황만복

백서른세번째 시

발전한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닐지도 몰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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