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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영 Mar 11. 2024

이번 주 웨이브 추천작 - <사상검증구역:더 커뮤니티>

*회차가 거듭될수록 벌어지는 사건과 결과에 대한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다만 사건의 진행 방식, 그리고 내부 구성원에 대한 내용을 적어두었으므로 가능하면 해당 프로그램을 적어도 초중반부까지는 관람한 후에 아래 리뷰를 읽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번 주 추천작은 서바이벌 게임이자, 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로는 처음 추천하는 작품이기도 한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웨이브에서 제작되어 스트리밍 중인 리얼리티 쇼로, 지난 1월부터 11부작으로 구성되어 순차 공개를 진행했고 3월 1일에 최종적으로 종영되었다. 하지만 종영 후에도 그 여파는 여전히 남아있고, 또한 계속해서 역주행 신드롬을 낳고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며, 다각도 다방면에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굉장히 독특한 서바이벌 게임이다. 권성민 피디를 필두로 다양한 연출진과 작가진이 배치되어 제작에 참여했다. 육탄전이나 로맨스 같은 자극적인 요소 혹은 짝짓기식의 상황이 아예 배제된 일종의 사회 실험이자, '사상 검증'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타이틀과 주제를 전면전에 배치해 런칭 초기 단계부터 꽤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지금까지 그 주목도는 유효하다.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의 룰은 일반적인 서바이벌 게임의 그것을 따라간다. 최종적으로 남는 사람이 상금을 가져가게 되고, 공동체 내에 특별한 미션을 부여받은 불순분자가 존재하며, 최종 상금이나 상금의 분배 과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서로를 견제한다. 아주 독단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고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해 다 같이 윈윈할 수도 있지만, 물론 당연히도 모든 상황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를 방해하는 여러 가지 방해요소들이 주기적으로 생성되며, 곳곳에 포진해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토크 프로그램이나 아주 플랫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같지만,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의 특이점은 제목에서 보여주듯 이 참여자들 각자가 가진 '사상'과 '가치관'이 주가 되기 때문에 이를 바라보는 재미는 배가 된다. 서바이벌 참여자들은 진보이기도 하고 보수이기도 하며, 페미니스트이기도 하고 차별주의자이기도 하다. 태어날 때부터 부유한 사람, 자수성가한 사람 등이 섞여있으며 전통적이기도 하고 완전히 개방적이기도 하다. 커뮤니티에 입소 전 출연자들은 '사상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지표를 확인받았으나 서로 이에 대해 알지 못하며, 오직 관람자들만 완전히 공개된 사상 테스트의 지표를 알고 있는 상태로 이들을 바라보게 된다. 어떻게 생각하면 어항 안의 물고기를 바라보는 느낌일 수 있으나, 폭넓게는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발화하고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에 대한 척도를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을 통해 초반의 재미를 확 끌어올렸다.


앞서 '초반'이라는 말을 한 이유는 이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변화하는 출연자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변화하는 관람자들, 즉 '우리'의 변화 때문이다.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이고, 절대 섞일 수 없는 말하자면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는 상황을 바라보며 우리는 초반에 일종의 선택과 호불호를 판단한다. 이를테면 나 같은 경우 길거리에서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을 어떤 유형을 가진, 절대 친구 또는 지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이 특정 상황을 주도하는 것을 보며 나름의 잣대로 그를 판단한다.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저렇게 편협하지' '저 사람 첫인상부터 완전 별로네' '저쪽 성향은 대부분 다 저렇지' 등등. 개중에는 극호를 가진 호감자들도 있고 그리 호감형은 아니지만 능수능란한 언변과 전략으로 인해 그 사람의 행보 자체를 바라보는 것이 즐거운 출연자도 있다. 모두의 사상과 성향을 알고 시작되는 토론 속에서, 관람자들은 개인의 성향에 기대 이들을 우선적으로 판단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지점들을 걷는다.

정말로 재밌는 상황은 바로 이 이후부터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누가 봐도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이 똑똑한 발언을 이어가는 진보 성향의 누군가를 비판하긴 하지만, 그를 공동체의 리더로 뽑는가 혹은 중요한 직책을 부과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나의 생존을 위해, 혹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해야만 하는 선택의 의외성이 매번 등장한다. 보수는 보수 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섞일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머릿속이 흐트러지게 되는 부분, 그러니까 보수와 진보, 부유와 서민의 가치로 인해 완벽하게 파가 나뉠 거라고 생각했던 어떤 성향에 대한 의외성이다. 이 기이하고도 즐거운 과정은 결국 이 흐름을 지켜보는 관람자들의 머릿속에도 일어난다. 극보수와 극진보가 서로 합심하며 어떤 상황을 만들고, 토론을 통해 한 쪽의 논리가 빈약하다고 생각되면 금세 그와 상관없이 돌아서며, 철벽의 감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흐트러지고, 당연히 이렇게 행동하리라 생각했던 사람이 토론을 통해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평생 만날 일 없다 단언한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생각 없이 말한다 생각했던 사람의 말에 여러 번 귀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의 진정한 즐거움은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특정 가치를 중시하고 특정 사상을 옹호한다고 표현되고 기준되었으나, 어떤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혹은 그것을 두루 포괄할 수 있는 열려있는 사람인가 아닌가에 대한 실험. 이 실험은 결국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아닌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은 11화의  결코 하나의 잣대로 범주화할 수 없으며, 다양하고 다층적인 지점을 공유하는 인간들인 동시에, 복잡한 세계를 영위해가는 사회적인 인간이라는 울림을 준다. 11화의 끄트머리에 다시 1화로 돌아가 내가 가졌던 첫인상과, 프로그램이 마감되고 다시 돌아본 끝인상을 비교해보면 상당히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인간이며 호불호가 있는 성격인지라, 마지막 회차가 끝날 때까지 결코 동의할 수 없던 어떤 기류와 어떤 인간의 군상이 있긴 하다. 출연자 모두를 깔보는 듯한 태도의 인간, 과도한 스킨십과 특별한 호칭으로 간극을 줄이려는 어떤 시도, 급박한 상황에서 필터 없이 튀어나오는 천박한 단어들, 마치 한국의 이분화된 거대 두 정당을 바라보게 만드는 듯한 극진보와 극보수가 융합 과정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 모두를 아우르고, 돌진하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항상 열려있는 자세를 취하던, '돈'이라는 물질 앞에 모두의 반응 외의 다른 반응을 보였던 한 인물 덕분에 진심으로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가 유의미한 실험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바이벌 예능, 리얼리티 예능치고 꽤 깊은 울림을 주었던 이 프로그램이 앞으로도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말이 길어졌는데, 나는 정말로 이 프로그램을 '밤새워가며' 빠져서 몇 날 며칠을 정주행했다.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긴 했고 또 그런 지점들이 진심으로 많긴 했지만,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는 과정, 특히 '슈퍼맨'과 '백곰'이 반대 의견을 개진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며 협업하던 과정 같은 것들이 진심으로 고자극 도파민 뿜뿜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으므로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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