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머물 곳이든 오래 머물 곳이든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욕실청소다.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는 도미토리가 아닌 욕실이 딸려있는 싱글룸이나 더블룸에 묵을 때마다 작은 청소도구를 빌려 욕실 구석구석을 청소하곤 한다. 청소를 한껏 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더러운 곳이라든지 청소가 필요없을 정도로 짧게 머무는 숙소에서는 굳이 이런 행동을 할 필요가 없지만, 아무리 침대시트와 기타 등등의 집기가 깨끗하다고 해도 욕실이 제대로 정리되어있지 않다면 온전히 내 공간이라는 마음이 들지 않아서 부득불 이런 수고를 하게 된다. 그렇다고 현지에서 구하기도 힘든 락스나 온갖 세정제들을 손수 늘어놓고 부산을 떨며 청소하는 편은 아니어서, 샤워물 몇 번에 손질 몇 번이면 어느 정도 정리되는 딱 그 정도만큼의 청결도만 감당한다.
세면대나 변기 구석을 요리조리 닦으며 먼저 이 숙소를 쓴 사람의 흔적을 지우고 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세면도구들을 늘어놓은 후 손을 슥 한번 비누칠해 씻으면 청소가 끝이 난다. 반대로 내가 그 공간에서 빠져나와 내 흔적을 없앨 때도 마찬가지다. 남의 집에 놀러가서 그 집의 욕실을 쓸 때도 습관처럼 이런 행동을 하곤 하는데, 문득 어느 날 친구 집에서 샤워를 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앞사람의 흔적을 지우고 내 뒷사람에게 내 흔적을 알리지 않기 위해 청소를 하는 것처럼, 청소가 끝난 후 손을 슥 한번 씻는 것으로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인간관계에도 대입된다면 세상은 좀 편해졌을까, 혹은 아주 불행해졌을까. 손에 비누칠을 하고 물기를 털어내는 것처럼 내가 남긴 손자국들과 남이 나에게 남긴 손자국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버릴 수 있다면 삶은 더 간편해졌을까, 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