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by 강민영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최근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단 한 가지의 이유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얼마 전에 갑자기 추워진 날씨 속에 겉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그날 저녁 거나하게 취해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와서 편하게 자기 위해 옷을 훌훌 던져버리는 순간, 지금 당장 세상이 무너진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를 잠깐 생각해봤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방 안을 둘러보니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자전거였고 당장은 책들이나 방안 여기저기 널려져있는 갖가지 물건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 내 바로 발 밑에 벗어놓은 겉옷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집의 모든 것이 일순 사라져버린다고 가정하면 그나마 주변에서 가까스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저 겉옷들 뿐일텐데, 만일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은 순간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고 할 때 일어날 일들은 매우 흥미로운 동시에 끔찍할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살며 하나씩 차곡차곡 입어온 겉옷의 수많은 파편들이 한순간 모두 사라져버린다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부류일까 혹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사람은 어떤 부류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나를 포함한 주변의 모두를 칸막이로 나누듯 나누어보게 되던 어떤 저녁,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술이 다 깨어버렸지만 결과적으로 얻게 된 것은 있었다. 다시금 '여행의 이유'를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 특정 국가를 늘 삶의 가장 큰 부분에 밀어넣고 지내고 있는 것은, 술기운을 빌리거나 꿈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라도 그곳에선 실제로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했기 때문이다. 내가 누리던 모든 계급, 권위, 재산, 명예 등을 자의든 타의든 박탈시켜버리고 오로지 '나'라는 단어 대 '타인', 같은 조건에 놓인 그 두 단어의 충돌들만이 빈번하게 작용하곤 했던 곳이 바로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 것 또한 부차적인 효과였다.

대기업에 연봉을 몇 천 몇 억을 벌든 저명한 정치계 인사건 혹은 돈이 없어 도피하듯 여행을 온 사람이건 간에 외부의 영향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몇 주 동안 빨지 못한 옷을 닦으며 검게 그을린 얼굴을 훔치는 행동은 똑같은 '사람'의 것이었다. 사막의 한 복판을 걷다가 우연히 오아시스를 발견했을 때, 신고 있던 슬리퍼가 다 날라가도록 한 달음에 달려가는 모습 또한 똑같은 '사람'의 것이었다.

내겐 여행도 그렇다. 모든 겉옷들을 다 벗어 던져버리고 난 후에도 나는 정말 '괜찮은' 인간인가 그렇지 않은가. 그 상황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나의 말투와 나의 눈빛과 표정, 나의 오랜 습관 속에서 발현되는 몇 가지 동작들이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을 가정할 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어울렸던 것인지에 대한 무수한 생각들과 경험의 기억들이 밀물처럼 한꺼번에 밀려들어오곤 하는 것이다.

결국,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기억들을 되짚어보며 내가 온전한 '나'로 존재함을,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방식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하기에 매우 좋은 도구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극한의 상황으로 나를 내몰고 그곳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파헤쳐보게 되는, 물론 그것이 피가학의 묘한 취미까지는 가지는 않더라도 이정도의 긴장과 자기 평가가 기반되지 않고서는 지금의 나도 그리고 지금의 내 자존감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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