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방이 더운 것 같아 얇은 이불을 끌어 안고 약간 냉한 기운이 올라오는 바닥에서 잠을 잤다. 바깥은 비가 한창 쏟아지고 있었고, 먼 발치에서 들리는 텔레비전 소음은 연신 'ㅇㅇ에 집중호우' 'ㅇㅇ도시에 물폭탄, 이재민 발생' '호우로 사망' 등의 소식을 보도하고 있었다. 우리 집은 비교적 고지대기도 하거니와 바깥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니 비가 그리 많이 내리지는 않는 것 같아 이내 안심하고 잠이 들었다.
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엥?"하는 혼잣말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입 속으로 물이 들어왔다. 화들짝 놀래서 일어나니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잠옷이 흐르는 물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몸과 얼굴과 머리의 반은 젖어 있고 반은 말라있다. 그제서야 코 안쪽으로 들어온 물의 기운이 느껴져 쿨럭쿨럭 소리를 내며 기침을 했다. 천장에서 물이 흐르고 있었고 벽도 바닥도 물바다였다. 바로 옆에 놓여있는 자전거에도 슬슬 물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 밑에 거치된 트레이너는 이제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나 말고 다른 가족들은 안전한가? 왜 비가 이렇게 넘쳤지 우리 집에? 세상에 물에 잠긴건가, 홍수가 여기까지 온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물에 흠뻑 젖은 옷은 사방에 추를 단듯 무겁게 느껴졌다. 내 방문은 열려있었고 사방은 고요했다. 강아지도 엄마도 온데간데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시간이 필요해서 일단 눈에 보이는 침대 위에 걸터 앉아 벽에서 졸졸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그걸 보며 멍하게 앉아 있다가 돌연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쳤다.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고지대의 터널을 지나거나 급하게 잠영을 했을 때처럼 오른쪽 귀가 멍한 느낌이 들어 그 자리에서 일어나 찰박찰박 소리를 내며 오른쪽 귀의 물을 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 오른쪽 귀는 물이 들어가서 일시적으로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닌, 좀 더 원초적인 무언가에 의해 막혀있는 것 같았다. 내가 잠을 왼쪽으로 잤던가, 오른쪽으로 잤던가. 잠을 자다가 물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이렇게 된 건가. 온갖 생각이 머리를 파고 들었는데, 아무리 발버둥을 쳐보고 무슨 짓을 해도 오른쪽 귀의 청력은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갑자기 정신이 그대로 아득해졌고 귀를 제대로 돌려놓고 싶어하는 나의 안간힘이 모두 영영 소용이 없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지금 집 사방이 물 천지인데, 귀는 언젠가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발버둥치는 일을 멈추었다.
잠깐 앉아 숨을 고르며, '그래, 오른쪽 귀 하나여서 다행이지. 눈이 아니어서 다행이야'라는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그 상태로 '진짜' 잠에서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