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

by 강민영

이십대 초반 언저리에는 가끔 기분을 내려고 하이힐을 신곤 했던 때가 있었다.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높은 굽의 힐을 신으면 뭔가 대단히 특별해지는 것도 같고, 당시 학생 신분으로 꿈도 꿀 수 없었던 미국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의 신는 고가의 하이힐들을 검색으로 종종 들여다보며 '나도 언젠가 저런 신발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하이힐을 신은 다음날은 발이 온종일 아파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제일 편한' 운동화 신세를 져야 하는 꼴이 되었고, 그게 반복되다보니 하이힐을 신을 일 자체가 없어졌다. 이십대 대부분을 여행으로 보냈는데 그 여행이란 것이 하이힐이 전혀 필요하지 않는 것이다보니, 더더욱 멀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편하지도 않고 온종일 신경써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얼마 전에 몸의 밸런스를 좀 잡고 싶어 지인에게 소개받은 곳에서 거의 치료 수준의 마사지를 받다가, '이제 하이힐을 신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조언을 듣게 되었다. 하이힐을 언제 신었는지 기억해내기도 어려울 정도였기 때문에, 별로 대수롭지 않고 당연하게 들었고 마침 이사를 준비 중인 터라 그날 집에 와서 신발장에 남아있는 몇 개의 하이힐을 정리했다. 하이힐 뿐만 아니라 굽이 높은 신발들은 대부분 버릴 생각으로 신발을 차곡차곡 정리해봤다. 친구에게 받은 것, 지나가다가 예뻐서 산 것, 인터넷으로 눈독만 들이다가 큰맘먹고 지른 것 등등 그나마 남아있는 신발-하이힐의 수는 네 다섯 개 정도였다. 그 중 한 개는 팔기로 하고 나머지는 재활용 쓰레기로 분리해두었다. 그렇게 버릴 하이힐들을 모아서 바라보고 있으니 기분이 좀 묘했다. 생채기 하나 없는 신발들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을 잘못 만나 몇 번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버림받는다니, 측은하게도 느껴졌다. 뭐, 그것도 그 한 순간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하이힐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아마 다시는 사게 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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