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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자 Apr 06. 2023

경험을 소비한다는 것

부제; 최근 나의 모습


나는 주제 넘다 싶을 정도로 이 세상 만물에 궁금한 것이 많다. 


호기심을 가지고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하며 나만의 경험을 산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돈 낭비의 합리화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겠다.


서울에서 혼자 살아온지 벌써 7년째, 서울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어디서 모이는지, 어떤 포인트에서 지갑을 여는지 그 포인트를 구경하기를 즐긴다. 그리고 그 내용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간간히 공유했다.


잠시 쉬어갔을 때 나는 더더욱 매번 다른 카페를 가보고 맛집을 찾아가고, 전시회를 즐긴다. 


백수 시절 일터와 단골 술집


국현미 가는 길에 발견한 꽃밭. 언제 생긴거지, 그리고 작은 방주



 #백수_근황


8월, 퇴사를 하고선 아르바이트를 했다. 브런치 바에서 서빙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음료 제조도 하는데 이게 왜 이렇게 재밌는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유쾌하고 밝았다. 하루를 밝게 시작하니 내 얼굴에도 웃음이 늘어났다.


 출근 길 버스 안은 사람들 표정이 다들 굳어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한 번에 타야하고 앉지도  못한채 서서 그 먼 길을 가려니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그 사람들 잘못은 아닌데, 그  속에 있으면 괜히 나까지 인생이 텁텁해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즐겁게 일하는 그 하루하루가 너무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는 마케팅이 하고 싶은 사람이다. 무언가를 사람에게 알리고 결과적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지갑을 열리게 하고 싶다.


마케터는 경험을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것을 경험하며 다양한 사람을 봐야 수많은 다른 고객에게 좋은 것을 경험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배달의 민족의 이승희 마케터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길래 놀랐고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마케터가 있다는 생각에 좋았다.


경험은 자산이다. 내가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게 있다면 여기 저기 많은 곳을 여행해보고 직접 발로 밟아본 것, 그리고 그 곳에서 돈을 써본 것이다. 서울 곳곳의 핫플이란 핫플, 그리고 뜨기 전의 익선동까지 가보며 정말 많은 곳들에서 맛집과 카페를 다녔다. 다니며 느낀 것을 글로 적을 수 있을까. 그냥 나중에 무언가가 필요할 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방촌에서 만나 마포에서 바를 오픈한 분들 가게에 놀러간 날

그래서 다양한 곳을 다니다보니 혼술이라는 취미도 가지게 되었는데, 내 취미의 매력은 처음 보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열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타리스트, 바텐더, 작가, 에디터, 나이가 많으신 호텔 사장님, 인테리어 디자이너, 작곡가 등등 정말 다양하다. 그들이 살아온 삶은 나와 다르다. 그래서 나와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온 그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는 영감도 받고 교훈도 얻는다. 그리고 많은 토론을 한다. 


나는 낯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진다. 만약 누군가가 내 장점을 묻는다면 자신있게 처음 보는 사람도 편안하게 해주는 저만의 무언가가 있어요 라고 대답할 수 있다. 


나의 장점이 마케팅에 어떻게 쓰일지 한참 의구심을 품고 있었는데, 책에서 몇개의 문장들을 읽었다. 

쉽게 친해진다는 것은 공감능력이 좋다는 것.

공감능력이 좋다는 것은 상상력이 좋다는 것. 

공감능력이 좋으면 소비자에게 공감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며, 풍부한 상상력으로 남들과는 다른 마케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케팅을 잘하고 못하고에 대한 기준을 모르겠어서 한참 혼란스러웠는데 위안이 되었던 문장들이다.


책을 많이 읽고 운동도 많이 하며 내 스스로를 가꾸고 챙기는 3개월 반간의 백수 생활을 즐기다보니 이제는 조금 정착하고 싶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작년 12월에는 입사를 했다. 

디지털 마케팅 대행사에 입사를 했고 PM으로서 IMC 마케팅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맡아서 하고 있다.


내 주 고객사는 유한킴벌리 안의 브랜드인 하기스라서 요즘 부쩍 영유아들이랑 기저귀를 많이 보는데,

사실 평소에 관심이 정말 없었던 분야였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밖에 나가면 어찌 그렇게 아기들이 눈에 띄고 쟤네는 무슨 기저귀를 찼을까 상상하게 되는지.


요즘 대행사에서 사람들이 일하기 꺼려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입사하고 나서 생각해보는 아주 순서가 바뀐 사고를 하고 있는데, 어째나 저째나 우리가 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모든 일을 클라이언트 즉 갑에게 컨펌받아야 한다는 것.

그들이 컨펌을 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일. 그러니까 야근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젠장 뭐 그리 다들 급한지



각설하고,

이젠 4월, 어느덧 회사 분위기도 적응되고 일도 손에 익어간다.


회사를 다녀도 내 돈낭비의 합리화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먼저, 긴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전시를 즐기러 가는 편이다. 회사가 서울역이다 보니 자전거나 경보로 덕수궁이나 국현미, 서울시립 미술관 이외에 내가 흥미롭다고 느껴지는 전시회에 간다. 


고 정주영 회장님의 전시


그림의 기후, 색깔로 기후를 표현한 전시였다.

전시를 보며, 이 그림이 기후만 표현한게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때로는 파랗고, 노랗고, 빨갛다. 

연애할 때는 연분홍색 같다가도 이별을 하면 짙은 남색이 된다. 


요즘 나는 어떤 색일까를 고민해보았는데 나는 아무래도 요즘 연두색이 아닌가 싶다. 

바쁘게 일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삶이 단단해져가는 기분이다. 

그 어느 때보다 소소하고 행복하고 안온하다. 


어느 날은 책 한권을 들고 점심에 노들섬에 다녀왔다. 


평일 낮의 노들섬

책도 읽고 윤슬도 보고  다리 위로 바쁘게 열심히 달려가는 1호선 기차도 보고

그 순간 순간의 바람의 냄새를 기억하려고 잠시 눈도 감고 크게 숨을 내쉬어도 보았다. 



혼술도 멈추지 않았다. 고된 날이면 혼술도 하고 혼자 고기도 먹으러 간다. 

어떻게 그렇게 혼자 술을 마시냐고 하지만 이게 맛들이면 발 빼기 쉽지 않은 습관이라며.

칵테일도 좋지만 가끔 소주도 마시는 혼술을 즐겨한다. 클래식하게 우동에 소주다.

알딸딸 해질 때 쯤 집에 터벅 터벅 걸어가며 가끔은 울고 자주 웃는다.



알차게 술을 마신만큼 알차게 몸도 움직여줘야한다는 주의이기 때문에, 

요즘엔 헬스장에 가는 것 말고도 새로운 취미를 들이기 시작했다. 


친한 언니 오빠들과 등산을 다니려고 노력 중이다. 

3월엔 북한산을 다녀왔는데 생각보다 할만하다고 했지만 다음날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북한산 백운대 정상

등산은 생각보다 많은 성취감을 준다. 

밑에서부터 올라가서 정상을 찍을 때까지 참고 견뎌준 나 자신에 대한 대견함과 앞으로 다른 것도 할 수 있을것만 같은 믿음 그런거.



4월엔 벚꽃을 보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남산에 자주 갔다. 

올해가 역사상 두번째로 벚꽃이 빨리 핀 해라고 하던데 7일만에 만개한 남산을 보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내려와 자전거를 타고 남대문 시장에 갔다. 그동안 궁금했던 꽃 도매시장을 가서 꽃을 사왔다. 화병을 사서 집에 꽃을 꽂아두었다. 이 작은 꽃이 뭐라고 사람 기분을 그렇게 좋게 만드는지 묘하고 소중하다.


도소매 시장 꽃 만원어치


다들 나를 보면서 어떻게 그렇게 바쁘고 알차게 사냐고 하지만, 나는 이게 복잡한 내 삶 속에서 여유를 찾는 방법이다. 


평일 낮에 다른 직장인들이 같이 밥을 먹고 수다를 떠는 모습들

주말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들

나같이 혼자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들

이 모든 당연한 모습들이 나의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해준다.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경험을 소비하며 살려고 한다, 온전히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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