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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Jan 12. 2019

평가는 '빨리빨리'가 아니다

과정 중심 평가를 준비하는 교사의 필요충분조건②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속도가 아니라 측정하고 싶은 구체적인 능력에 대한 평가를 하라는 것이다.


초등은 일제식 평가를 폐지하고 교사별 과정 중심 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몇 해 전, 일제식 지필평가가 치러지던 당시 2학기 기말평가 시기였을 것이다.

옆반 선생님에게 주의를 들었다. 우리 반 시험이 다른 반 시험보다 늦게 끝난다는 불만이었다.

내가 학생들에게 시험을 풀 수 있는 시간을 더 주는 행위는 잘못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정시에 시험을 마치도록 하였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시험 시간을 더 주는 것이 왜 잘못일까?"
"주어진 문제에 대한 답을 빠르게 고르는 것이 중요한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형평성이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나라 시험제도가 그러니 애들도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천천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3*9=?이라는 문제는 빨리 해결하는 게 좋다.

그런데 3*9의 답을 구하는 과정을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하여 서술하라?라는 문제에서 빨리 푸는 것이 좋을까?


빠르고 정확한 답을 고르는 게 학생들의 실력일까?

공무원 시험이든 수학능력시험이든 1분에 1문제는 풀어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도 한다.

미래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깊은 사고 없이 1분 만에 풀 수 있는 문제로 역량을 측정하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정말 그럴까?


다시 위의 이야기로 좀 더 들어가 보자.


2015년, 우리 반에는 '아라'라는 학생이 있었다. 말을 할 때도 글을 쓸 때도 매우 조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내가 보았을 때에 다른 친구랑 다툰 적이 거의 없었고 다른 친구들에게 미움받을 행동도 거의 하지 않았다.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을 친구들을 위해 여분의 준비물을 더 챙겨 올 정도로 배려심도 많은 학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문제를 푸는 속도가 늦었다. 특히 수학 문제를 푸는 속도가 늦었다. 아마도 수학 문제가 가지는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오래 걸렸을 것 같다.


수학 시험지를 국어 시험지 보듯이 보았다. 혹 국어시험과 사회시험 등에 지문이 길어지면 천천히 그 지문을 다 읽느라 정시에 시험을 끝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왜냐하면 시험은 지문의 내용을 "자세히"가 아닌 "대강"이해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글의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어하는 아라는 학교뿐만 아니라 지역, 그리고 전국 규모의 글쓰기 대회에서 지속적으로 입상을 했다. 중학생이 된 지금도 꾸준히 학교 글쓰기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깊게 생각하고 천천히 해결하는


만약 미래에 어떤 사람을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속도의 개념으로만 물어본다면, 깊게 생각하고 천천히 문제를 해결하는 학생을 길러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문제를 빨리 푸는 것이 잘못되었고 무조건 천천히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학습의 속도 개념에 대해 평균의 종말을 쓴 토드 로즈는 [평균의 종말]에서 


모든 학생을 고정된 속도에 따라 학습시켜야 한다는 개념은 구제 불능의 오류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위의 말에 대한 사례로 벤저민 블룸은 한 실험을 제시하였다. 

토드가 예로 든 블룸의 실험은 고정된 속도로 학습하는 그룹과 학생 자율적으로 학습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그룹의 성취를 비교한 실험이었다.


전통적 교실에서 수업을 받은 학생들의 성취도는 빠를수록 똑똑하다는 신념 기준으로 예상될 법한 딱 그 수준이었다.
지도과정이 끝나갈 무렵에 이 그룹은 약 20퍼센트가 수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수준이고 그와 비슷한 비율아 아주 형편없는 수준이었으며 그 나머지인 대다수 학생은 중간쯤의 수준이었다.
반면에 자율 속도형 학생들은 90퍼센트 이상이 수업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수준이었다. 학습 속도에 약간의 유연성을 허용한 결과 대다수 학생들이 아주 뛰어난 성취도를 나타냈다.


빨리 푸는 게 대세였다. 이제는? 

우리 주변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빠르게 학습하거나 문제를 푸는 것을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 학생들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면 나머지는 조바심을 가지며 그 학생을 쫓아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쫓아가지 못하면 포기를 해버린다. 문제는 학생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도 포기하기도 한다. 

그렇게 학습 속도에만 치우친 채 우리는 진짜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측정해야 할 것들을 측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3*9=?" 문제(Quiz)와 "3*9의 답을 구하는 방법을 그림으로 그려보세요."

어떤 문제가 학생들의 곱하기에 대한 이해도를 평가하는 데 더 좋은 문제일까?
그리고 그 문제를 통해 측정하고자 하는 능력이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 이야기의 결론은 평가 시간을 학생마다 다르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속도를 알아보는 평가가 아닌 측정하고 싶은 구체적인 능력에 대한 평가를 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단순한 과학 교과서의 내용을 얼마나 암기했는지, 실험의 과정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얼마나 Output을 빨리 추출하는 지를 측정하는 것이 아닌 실험 설계 능력, 자료 분석 능력 등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EBS 교육대기획 [시험]에는 인간의 유전자(전사형, 걱정 쟁이형, 중간형) 중 시험을 잘 보는 유전자(전사형)가 있다는 연구를 한 창 춘옌 교수(대만대학교)가 등장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해 창 교수는


"제 연구가 시사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시험 하나만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학생들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라고 말한다.


창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두에 동일한 시험시간을 주는 행위도 결국 어떤 특정한 유전자를 가진 학생들에게 유리한 행위였는지 모르겠다.



좀 더 천천히,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하면 더 좋지 않을까?

문제를 해결하는 속도에 집중하느라 고르지 말아야 할 것을 고르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고 마는 실수를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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