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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현 Aug 13. 2023

나의 이주에 이름을 붙인다면

낭만주의자와 도시의 실패자, 아니면 지원금 사냥꾼

서울에서 영월로 이동한 작업실 테이블에 앉아 종종 생각한다. 나의 시골이주 스토리를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작품에 가까울까? 낯선 미국으로 떠나 잡초처럼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나리> 가족? 아니면 연애·취업·결혼 뭐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상을 멈추고 자연 속에서 삼시 세 끼를 자급자족하는 <리틀포레스트> 혜원이? 100만 엔이 모일 때마다 농장이든 바닷가마을이든 자신을 모르는 먼 곳으로 이동하는 <백만엔걸 스즈코>의 스즈코상? 글쎄. ‘바로 이거야!’ 말하기엔 어쩐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낯선 환경으로 이동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이곳에 뿌리를 내릴 생각은 없다. 도시의 삶이 마음처럼 되지 않은 적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시골의 삶이 내 맘 같던가? 전혀. 더군다나 100만 엔이 모일 때마다 새로운 곳으로 이동할 젊음의 에너지가 나에겐 없다. 나는 그저 밀려나지 않아도 되는 어딘가에 깃발을 꽂고 내 할 일에 몰입하고 싶을 뿐이다.


100만 엔이 모일 때마다 낯선 곳으로 이동하는 주인공, 스즈코


그런 의미에서 나의 이주에 이름을 붙인다면 이런 수식어가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코로나 감염 사태를 계기로 매일 출퇴근하지 않아도 괜찮은 근무환경, 한 뼘 더 자연스러워진 비대면소통이 지역 이주의 가능성을 열어주었으니 ‘코로나 이주’라고 할 수 있겠다. 지도를 펼쳐 서울에서부터 2시간 안팎의 반경을 콤파스로 빙 그리듯 동서남북을 훑으며 적당한 지역을 골랐으니 ‘가성비 이주’이기도 하다. 도시가 싫어서 탈출한 것도 아니고, 꼭 영월이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세상이 이렇게 달라진 틈을 타 보폭을 크게 디뎌보자고. ‘시골살이’라는 난이도 높은 도전을 미루지 말자고. 서울로 돌아가는 일은 그보다 훨씬 쉬울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말도 안 되게 발을 쭉 뻗은 지금은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지만, 이 길 끝에서는 어떤 환경이 되었든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는 내가 만들어 질 것이다. 길어진 보폭만큼의 선택지를 삶의 반경으로 품을 수 있을 거라는 모험심, 혹은 반항심. 말하자면 그게 내 이주의 배경이다. 


서울이라는 프리즘으로 비춰본 나는,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의 여유를 찾아 떠난 낭만주의자이다. 시골이라는 프리즘으로 비춰본 나는, 도시에서 온 실패자이자 지원금 사냥꾼이다. 아무렇게나 덧씌워지는 말과 짜깁기된 맥락, 그게 금세 기정사실이 되어버리는 시골의 분위기. 이런 것들에 휘둘리다 보면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나는 누구인지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이주를 설명하는, 꼭 알맞은 이름을 찾아야 한다.  어쩌면 이것은 전입신고보다 더 중요하고 더 필요한 작업이 아닐까? 


코로나 이주와 가성비 이주. 낭만기를 쏙 뺀 담백한 두 단어를 시작점 삼아 당분간은 작업실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름을 찾아볼 작정이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스스로 삶의 맥락을 붙잡아 건져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의 잣대로 삶을 재단당하기 십상이다.


작업실 짐을 싣고 가는 용달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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