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운전을 연습한다.
오늘도 핸들을 꽉 잡는다. 핸들을 세게 잡는다고 운전이 잘 될 리 없는데. 뭐라도 움켜쥐어야 살 것 같다. 도무지 손가락이 펴지지를 않는다. 어찌저찌 오운완. 오늘 운전 완료다. 뒤따라오던 오토바이가 추월하며 날 째려보고 갔지만 아무튼 무사고로 주행이 끝났다. 오늘치 운전 후에 남은 건 땀 한 바가지. 늘어난 건 운전실력인가, 손아귀 악력인가. 나는 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시골에서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운전을 한다.
운전은 시골살이의 필수 덕목이라는 말. 풍문으로 들은 이 말이 내 가슴에 와 비수처럼 꽂히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름 뙤약볕 아래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 앉아 초조하게 버스를 기다리다가, 결국 참지 못 하고 택시를 타고 다니며 훅 줄어든 통장 잔고를 마주했을 때. 시골로 이사할 마음을 접고, 당장 서울로 돌아가 운전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대중교통으로 못 갈 곳이 없는 서울의 교통망은 특혜였다는 걸. 삶에서 가장 해방되고 싶었던 출퇴근 만원 버스가 누군가에겐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오는 바로 그 버스였다는 걸.
시골길 운전은 한적하게 논밭뷰나 보면서 하는 건 줄 알았다. 면허도 있고 차도 있으니, 룰루랄라 이제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몰랐다. 시골길에는 덤프트럭도 많고, 중앙선을 종횡무진 누비는 무법차량도 많고, 음주운전자도 많다는 사실을. 인생의 짜릿함이 부족하다면 부디 시골길을 운전해 보길 바란다. 암석을 잔뜩 싣고 기우뚱거리는 덤프트럭을 뒤따라갈 때, 중앙선을 침범하고 정면으로 다가오는 차를 피할 길 없을 때, 한문철 tv에 제보하기 손색없는 음주운전자를 만났을 때. 무병장수의 꿈은 도시에서나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차에 시동을 거는 그 순간까지 나는 운전을 피할만한 오조오억 개의 핑계를 떠올린다.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아서 위험하니까, 어쩐지 하늘이 우중충한 게 위험하니까, 어쩐지 햇빛이 강렬한 게 위험하니까, 주말이라 피서객 차량이 많아서 위험하니까, 평일이라 출퇴근 차량이 많아서 위험하니까, 간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위험하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서 급발진하면 너무 위험하니까. 초보운전자를 위한 운전의 길일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그럼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운전대를 잡는 이유는 딱 하나. 마침내 얻게 될 이동의 자유를 위해서다.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면, 오늘 치 주행을 완주하지 못하면, 영영 누군가의 보조석에 실려다녀야 한다.
서울을 떠나 시골에 정착하는 일은 마치 멈출 수 없는 도로를 운전하는 것 같다. 느리게 간다고 욕을 먹어도, 몰상식한 운전자를 마주쳐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추월하는 차를 만나도 어떻게든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 중간에 내릴 수도 핸들을 놓을 수도 없다. 누가 운전해 주던 차에 앉아서 음악이나 듣고 풍경이나 즐기던 좋은 시절은 끝났지만, 후진할 자신도 없다. 삶의 운전대를 드디어 움켜 쥔, 그 느낌을 잊지 못하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핸들을 꽉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