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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저 Jul 11. 2021

여행의 명분

성실한 자세로 여행의 명분을 미리미리 쌓아야 한다


따스한 봄날 엄마와 여행을 떠났다. 작년 겨울, TV를 보던 엄마는 "와~ 저기 좋다. 지평선 아래 숨겨져서 보이지도 않는 집이네" 라며 툭-한마디 하셨고, 그 '집'에 가는 것이 모녀 여행의 첫 번째 명분이 되었다. 점점 닮아가는 외모뿐 아니라 감성이 풍부한 성격까지 난 엄마를 쏙 빼닮았다.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전화로 한참 동안 수다를 떠는 시간이 즐거웠다. 어렵사리 예약을 하고 세 달을 손꼽아 기다린 날, 여행의 두 번째 명분은 결혼 전 엄마와의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부산에서 두 시간가량 차로 이동을 하면 풀숲과 나무에 가려 바로 코앞까지 가서야 비소로 볼 수 있는 땅속 집이 보인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간결한 마당과 한 평짜리 작은 방에 들어서면 땅속이 가진 포근함이 느껴졌다. 스피커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Queen'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들으며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만끽했다. 예쁜 풍경을 배경 삼아 함께 사진을 찍고 간혹 이상하게 나온 사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삭제 버튼을 누른다. 친구와의 여행과 다르지 않았다. 문득 생각했다. 엄마도 엄마 이기전에 수줍은 소녀였고, 친구와 깔깔거리며 여행을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였음을 말이다, '딸 덕분에 좋은 곳 많이 다닌다~ 고맙다'라고 말하는 엄마를 보며, 언젠가 나도 딸과 함께 여행을 가면 어떤 기분일까 하며, 흘러가는 시간들이 참 소중했다.


​여행 준비 중 매우 중요한 한 가지는 '여행의 명분'을 만드는 일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많지만 여행에는 숱한 제약이 따른다. 너무 열심히 일만 하다가 여행 갈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별생각 없이 여행을 떠났다가 근원을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이 없도록 성실한 자세로 여행의 명분을 미리미리 쌓아야 한다. 그래야 더  자주 떠날 수 있고, 떠났을 때 더 당당하게 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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