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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오니소스 Mar 21. 2022

'집', 돈벌이 수단인가
안락한 삶의 터전인가

30대 초반 신혼부부의 집에 대한 가치관

요즘 남편과 나는 하루 업무가 끝나면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약속한 듯 소파에 앉아 부동산 유튜브를 켠다.

얼마 전에 본 영상은 아주 인상 깊었는데, 간단히 말하면 경기도의 두 지역에 재개발, 재건축을 진행할 예정이고, 아주 가능성이 높고 비전이 보이니 좋은 투자처가 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지만 매우 신빙성이 높아 보이는 콘텐츠여서, 당연히 아직은 택도 없었지만 영상을 보고 홀린 듯이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그리고 나는 잘만 하면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는 이 재테크에 완전히 빠져서, 곧바로 재개발 재건축 입문서를 구매했다.






어느 정도 자금이 모였을 때, 우리에겐 크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최소 30년 구축에,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고, 노후되어 살기에 매우 불편할뿐더러, 기약 없이 5년 이상, 혹은 10년 이상까지도 몸테크를 해야 하는, 그렇지만 재건축이 완료되면 신축 아파트 분양권과 더불어 최소 5억 이상의 시세 차익을 노려볼 수 있는 아파트와,

2000년대 초반에 지어 비교적 낡았어도 리모델링으로 나름 아늑하게 지낼 수 있고, 주변 인프라가 탄탄하게 갖추어져 교통이 조금 불편해도 동네를 벗어날 필요가 없는, 그치만 재건축 가능성이 거의 없어 집값은 평균 상승률 혹은 그보다 더디게 따라가며, 최소 10년 이상 말하자면 그냥 평생 살 생각으로 매매해야 하는 아파트.


앞서 말한 부동산 영상을 보고, '아, 이제 재건축 공부해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이런 생각에 제동을 거는 남편의 한 마디.


"우리가 그런 구축에 가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






(재개발로 들어간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겠지만) 아파트가 전제 조건으로, 주택, 오피스텔, 빌라는 처음부터 선택지에서 제외하였다.


내 생각은 이랬다.

1. 우리가 지금 월급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부동산 상승률을 따라잡기 힘들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무리 많이 모아도 몇 년 뒤에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별로 없을 것.

2.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중에 더 좋은 집을 사기 위한 재테크인데, 주식도 코인도 좋지만 결국 최대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은 부동산 투자라는 것.
3. 따라서 우리가 지금이라고 하기엔 정작 매매할 시기는 30대 중반이겠지만 일단 지금은 젊으니, 매매할 수 있는 시기가 올 때까지 부동산 열공 빡공을 해서,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아파트를 조금 웃돈에라도 사서 몸테크를 하자.

4. 나는 전문직이 아니기 때문에 이 회사에서 오래 일해봤자 40대 초반에 퇴사한다. 노후 대비를 위해 젊을 때 최대한 많은 자산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그러나 남편의 생각은 이랬다.

1. 오히려 우리가 지금 젊고 커리어적으로 제일 창창한 시기이니, 주거 환경에서 오는 부담과 불안이 없어야 하고, 많은 경험의 기회가 있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2. 더구나 우리는 둘 다 재택근무를 하니, 남들보다 집이 더 중요하다는 것. 집 환경 = 업무 환경이기 때문에 집 환경이 좋아야 업무 퍼포먼스가 올라 장기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3. 재건축 아파트에 몸테크 한다고 해서 당장 현금으로 몇 억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좋은 환경 속에서 여러 기회를 접하며 인생 패스웨이를 잘 설계하면 그것이 그 몇 억의 가치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것.

4. 본인이 전문직이고, 본인이 커리어를 통해 성공할 자신이 있으니, 재건축 도전 안 하고 몇 억 못 번다고 해서 노후 대비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결국에 그와 나의 차이는 돈과 삶이었던 것이다.

좁혀질 수 없는 가치관의 간극에서 우리는 장장 4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고, 결국 돈도 없는 것들이 벌써 김칫국부터 마시냐며, 향후 몇 년 동안은 돈만 X 나게 벌어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 날의 대화는 우리의 금전 계획의 방향성뿐 아니라, 서로가 가지고 있던 삶에 대한 생각을 거의 처음으로 적나라하게 나누었던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나는 기술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사람이라, 노후에 대한 불안이 굉장하고, 당연히 나이가 들어서도 일이야 하겠지만 그래도 벌 수 있을 때 최대한으로 불려두고, 진짜 일을 그만뒀을 때 돈이라도 있어야 마음에 안정감이라도 생길 것 같다는 생각과, 대부분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남편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경험을 했던 것이 본인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쳐 지금의 본인을 만들었으며, 앞으로도 풍부한 환경에서 정말 본인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으면 그것으로 노후에 먹고살면 된다는 생각을 교환했다.


언뜻 듣기에 남편의 말이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그랬음.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을 정말 10년 뒤에 시작한다면 뜬구름일 수 있지만, 지금은 젊으니까, 할 수 있을 때에 최대한 충분한 경험을 하고,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지금부터 시작하면, 10년 뒤에 회사에서는 퇴직할 때가 되어도, 지금 시작한 것이 10년이 쌓여 그때에는 이미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

그게 혹시나 돈을 더 많이 벌지는 못하더라도, 좀 더 행복하고 풍부한 삶이 아닐까, 라는 생각.


거기에 본인은 이미 커리어 패스가 너무나 확실하고, 나이가 들어 회사를 관두더라도 경력을 살리면 노후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고, 서포트해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나 솔직히 이때 쫌 감동 받음.






부동산이 쏘아 올린 작은 공, 결국엔 삶에 대한 태도인 것 같다.

남편과 4시간 동안 얘기를 하면서, 삶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에 대해 재고하게 되었다.

무작정 '돈이 많아야 살기 편하다'는 생각으로 행동하려 하던 나에게 남편이 걸어준 제동은, 뜻하지 않게 '삶은 계란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주었다.


일단은 무작정 돈을 모아야 하는 시기라고 결론을 내렸고, 돈을 모을 동안 재건축, 재개발 등 부동산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고, 내가 조금 더 나이를 먹었을 때 취할 것들에 대해서도 꾸준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모든 경우의 수에 가능성을 열어 두고, 진짜 움직여야 할 시기가 왔을 때 내가,

"아, 무조건 재건축 가야 돼. 우리 돈 벌어야 돼, 나 너무 불안해."

라고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고, 만약

"아, 나 아직 하고 싶은 것을 정하진 못했지만 좀 더 많은 경험을 하면서 찾아볼래. 돈은 니가 많이 벌어."

라고 한다면 또 그렇게 할 것이다.


내가 향후 몇 년 동안은, 각박하게 사느라 우선순위를 미루었던, 그치만 제일 중요한 내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기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에너지를 유지하며 움직일 수 있을까 불안함이 있지만, 한 편으로는 조금 기대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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