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 연변 소녀 , 세 번째 이야기
겨울 삼계탕
여름에 먹는 삼계탕과
겨울에 먹는 삼계탕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름에 삼계탕을 먹는 것은
땀으로 소모된 양기를 보충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반면에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뜨끈뜨끈한 겨울 삼계탕은 잃어버린 정과
사랑을 되찾기에 아주 좋은 음식이라는 것을
올겨울에 알았습니다. 한 끼니 밥에 서러운 사람,
벼랑 끝에 내몰린 나그네를 대접하면서 깨닫습니다.
공짜도 없고
선의도 없는 세상에서
처음엔 초밥 등의 음식을
마음껏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병든 엄마를 대신해서
소녀를 키운 친할머니와 소녀를
뷔페식당으로 모시고 갔었습니다.
타국인 조국 땅을 떠도는
나그네 신세가 서러운 데다
어려운 처지에서 얻어먹는 밥이
심간(心肝) 편할 리가 있겠습니까.
열일곱 살 연변 소녀는
고개 숙인 채 밥을 먹었고
여든을 앞둔 소녀의 할머니는
- 이 사람이 왜 선의를 베푸는 거지?
손녀에게 일자리를 준 것도 모자라
식사까지 대접하니 호의인가? 꿍꿍이인가?
고마움 반 의심 반으로 눈칫밥을 드렸습니다.
이 풍진 세상을 살아온 할머니 모습을 보면서
박노해 시인의 ‘통박’이란 시가 생각났습니다.
”어느 놈이 커피 한잔 산다 할 때는
뭔가 바라는 게 있다는 걸 안다.
고상하신 양반이
부드러운 미소로 내 등을 두드릴 땐
내게 무얼 원하는지 안다. “
라는 시처럼 이 세상에는 공짜도 없고
선의도 없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을 할머니는
손녀를 돕는 손길이 고마우면서 불안했던 것입니다.
한 끼니 밥에
서러워 본 적 있습니까?
두 번째는 연변 소녀와
삼계탕으로 식사했습니다.
고시원이 무료로 제공하는
찰기 없는 밥으로 끼니를 달래는
소녀의 허기는 물론이고 냉동 밥으로
점심 끼니를 달래는 저의 허기 또한 달래려고
삼계탕을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세 번째는 연변 소녀와
소녀의 아빠에게 삼계탕을 대접했습니다.
소녀와 할머니와 아빠에게
식사를 대접했던 것은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알고 싶어서였습니다.
가난했던 세상이 차고 넘치도록 풍요로워지고
쌓아둘지언정 나누기를 꺼리는 세상이 되면서
한 끼니 밥의 서러움을 까마득히 잊어버렸지만
저는 눈물 밥의 뜨거움을 믿기에 밥을 나누었습니다.
네 번째 식사 또한 삼계탕으로 대접했습니다.
이 추운 겨울, 막막한 몸을 피할 길이 없는 세상
타국 땅 벼랑 끝 삶이 얼마나 춥고 두렵겠습니까.
세 번째 대접하는 삼계탕인데도
부녀는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후루룩 후루룩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뜨거운 국물 덕분에 의심도 경계도 사라졌습니다.
마음 깊은 곳 슬픔과 아픔을 꺼내어 나누었습니다.
한 끼니 밥에
서러워 본 적 있는 사람은
한 끼니 밥의 뜨거움을 압니다.
아빠가 죽으면
나도 죽으려고 했어요!
한국에 가면
떼돈 번다더라!
코리안 드림을 품에 안고
2007년 한국에 온 소녀의 아빠는
암에 걸린 노모를 한국으로 모시고 와서
보험이 적용 안 되는 수술을 하는 바람에
한국에서 번 돈을 병원비와 약값으로 날렸다고,
연변에 있는 집까지 팔아서 어머니를 살렸지만
그로 인해 연변으로 돌아가도 머물 곳이 없답니다.
코리안드림에 실패한 쉰 살의 아빠는
인생이 막막해 두 번이나 죽으려고 했답니다.
아빠는 딸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죽으려 했고
아빠 하나 믿고 타국 땅에 온 열일곱 연변 소녀는
아빠가 죽으면 따라서 죽으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소녀의 눈에서 흐르는
이슬방울 같은 눈물을
어떻게 닦아주어야 할까요?
벼랑 끝으로 내몰린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희망으로 키울 수 있을까?
코로나 팬데믹의 공포가 무섭습니다.
삭막한 세상은 더욱더 삭막해졌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저 또한 두렵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엄습하면서
후원금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변 소녀를 도울
후원자를 기다렸는데 소식이 없었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저도 위축됐습니다.
소녀의 손을 놓을지도 몰라서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백신만큼 반가운 사람들이
연변 소녀를 돕겠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높고 힘세고 부유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위축된 마음에 용기를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