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호진 Nov 26. 2020

겨울, 떠돌이 소년에게

[바닥_시편 3] 

                 

엄마에게

버림받은 너는

오갈 곳이 없는 너는     


잘 곳이 없고

먹을 곳이 없어

밤거리를 헤맨 너는     


옷 좀 없냐고

언 몸을 감싸줄

두툼한 옷 좀 없냐고

지나는 말로 부탁했다     


얻지도 못하면서 외면당할까 봐

주지도 않으면서 망신을 줄까 봐

쪽팔릴까 봐 슬그머니 너는 말했다   

  

따뜻한 집에서 사는 나는

밥걱정 없이 살게 된 나는

패딩과 외투가 몇 벌인 나는     


추위와 배고픔을 잊어버린 것처럼

너의 배고픔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서러운 시절을 까마득히 떠난 보낸 내가

너의 추위와 배고픔을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     


그런 내가 적선처럼 한 말이

겨울을 잘 견디면 봄이 온다고

꽃 피고 새가 우짖는 봄이 온다고

봄이 오면 사랑도 올 거라고 떠들었다     


너는 몸 누일 곳조차 없는데

한 끼니 밥이 서러워 우는데

봄을 기다릴 옷이 없어 덜덜 떠는데

나는 모포 한 장도 덮어주지 못하는

그놈의 얼어 죽을 사랑 타령을 했구나     


소년아, 미안하다!     


[바닥_시편 3] 성호(가명)의 엄마는 어릴 적에 떠났습니다. 엄마가 떠난 뒤로 춥고 어두운 집에서 자란 성호는 밥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게 떠돌이 생활하는 성호를 4년 전에 부천역에서 만났는데 어느덧 스무 살 청년이 됐습니다. 성호는 가끔 일을 합니다. 하지만 일솜씨가 서툰 탓에 금방 잘리기 일쑤입니다. 경계성 지능 장애아인 성호는 여전히 굶으며 떠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호는 늘 웃습니다. 바보처럼... 바보처럼...


성호가 밤새 추위에 떨었다고 하네요.
당신 옷 중에 두툼한 겨울옷 좀 주세요.


아내가 떠돌이 성호 사정을 전하면서 저의 겨울옷을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겨울옷 중에서 두툼한 패딩을 챙겼습니다. 따뜻하긴 하지만 값비싼 옷은 아닙니다. 마치, 먹다 남은 음식을 나눠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말과 글로 나눔과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 겨울에 가장 필요한 것은 껍데기만 화사한 사랑이 아니라 배고픔과 추위를 달래주는 것이란 것을 까먹었습니다. 처음엔 거리의 아이들을 챙기는 일에 앞장섰는데 요즘은 그러지 않습니다. 


저의 사랑과 나눔은 어느 정도 가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에겐 사랑보다 따뜻한 옷과 밥이 필요한데 이 바닥에서 오래 머물면서 아이들의 아픔에 둔감해졌습니다. 아이들에게 많이 당해서 그런 것일까요? 아이들의 아픔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제가 미워졌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쳤습니다. 이 바닥을 떠날 때가 됐나?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기 전에 성호를 비롯한 거리의 아이들에게 사과부터 하는 게 순서란 생각이 듭니다.    

  

성호야, 미안하다!
아이들아, 잘못했다!
작가의 이전글 이 소녀를 어찌할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