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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호진 Nov 18. 2020

이 소녀를 어찌할꼬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 둘, 벼랑 끝에 선 연변 소녀


월 25만 원짜리 
고시원에 사는 연변 소녀

▲연변 소녀가 살고 있는 고시원.


봄날처럼 따사롭던 지난 16일,

연변에서 온 소녀 영혜(가명·17세)와
뚝배기 삼계탕으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월 25만 원짜리 고시원에 사는
소녀는 먹고 돌아서면 허기진 고시원 밥으로
끼니를 때워서인지 삼계탕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알뜰살뜰 잘 먹었습니다.

저 또한 18만 원짜리 고시원에 살면서
기름기 없는 밥으로 허기를 때운 적이 있습니다.
먹고 돌아서면 금방 허기가 찾아오는 고시원 밥,
그 밥에 배 곪아봤기에 소녀에게 기름진 밥을 먹이고 싶었습니다.

한평 남짓 고시원을 탈출했지만
저의 삶은 가난함 그대로입니다.
가난한 아이들 곁에서 살면서 기름진 밥을 먹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형편이기에
직접 지은 밥을 냉동실에 쟁여 놓았다가 전자레인지에 해동해
국과 김치 두 가지로 혼밥을 하며 점심을 때우면서 살고 있기에
모처럼 먹는 보양식에 호사를 누렸습니다. 연변 소녀 덕분입니다.


연변 소녀가
소년희망공장에서 일하게 된 까닭

▲소년희망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연변 소녀.


연변 소녀 영혜가 소년희망공장 1호점(카페)에서 일하게 된 것은 여성가족부의 지원으로 6개월간 한시적으로 진행하는 학교 밖 청소년 취업프로그램 '드림잡' 때문입니다. '드림잡'에 참여한 영혜는 소년희망공장에서 매월 50시간 정도 일하고 50만 원 정도를 받으면서 6개월간 일했습니다. 영혜는 한국에 오기 전에 연변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드림잡에 참여한 다른 학교 밖 청소년보다 일솜씨도 뛰어났고 일도 성실했습니다.     


영혜의 '드림잡' 종료 일은 삼계탕을 함께 먹은 11월 16일이었습니다. 영혜와 함께 소년희망공장에서 '드림잡'을 시작했던 은수(가명·19세)는 프로젝트가 종료되면서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영혜는 이날도 소년희망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영혜를 계속 일하게 한 것은 필요한 일손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소년희망공장 또한 코로나로 인해 운영이 어렵기에 영혜를 계속 고용할 여유가 없습니다.  매출이 줄면 일꾼 또한 줄여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영혜에게 그만두라고 차마 말하지 못한 것은 영혜의 막막한 처지 때문입니다. 영혜가 소년희망공장을 그만두면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의 알바를 구하려는 청년과 청소년들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연변에서 온 소녀를 누가 선뜻 일자리를 줄까요. 영혜는 당장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고시원 비용을 내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고시원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막막한 상황입니다. 드림잡 종료를 앞둔 영혜의 눈에 두려움과 슬픔이 가득 고였던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영혜는 가엾은 소녀입니다. 어릴 적에 엄마가 깊은 병을 앓으면서 엄마로부터 양육과 돌봄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데다 아빠마저 영혜가 네 살 되던 2007년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나면서 가엾은 아이는 조선족인 할머니 품에서 자랐습니다.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에 온 아빠가 성공했다면 영혜의 고통은 그나마 줄었을 텐데 돈을 벌기는커녕 몹쓸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꿈과 희망이 가득 차야 할 열일곱 소녀의 눈에 슬픔과 절망이 가득 찬 것은 이 때문입니다.     


영혜의 고향은 연변, 윤동주 시인과 독립운동가들이 살던 용정과 해란강이 흐르는 북간도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부르고 또 불러도 또 부르고 싶은 이름 어머니를 부르면서 나라 뺏긴 설움을 달랬습니다. 그리고는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친구들의 이름을 불렀지만 영혜는 불러도 대답 없는 엄마와 아빠 때문에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고 친구들의 놀림과 왕따에 시달리다 중학교를 그만두고 아빠가 있는 한국으로 공부하러 왔습니다. 하지만 몹쓸 병에 걸린 아빠는 삶을 비관하면서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타국이나 다름없는 낯선 땅에

오직 아빠 한 사람을 믿고 찾아왔는데

삶을 비관하며 자살을 시도했으니 어린 소녀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듭니다.


연변 소녀의 
꿈을 돕고 싶습니다!   

▲일송정에서 바라본 해란강과 용정 시내.


연변 소녀의 영혜의 꿈은

심리상담사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처럼 외롭고 힘든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어 지난 8월 중졸 검정고시를 봤는데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 지금은 대입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러움과 외로움 속에 살아온 영혜는

고통스러운 운명에서 벗어나는 한 길은

열심히 공부해서 꿈을 이루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소년희망공장에서 주경야독하고 싶어 합니다.

소년희망공장은 당연히 짠한 영혜의 꿈을 돕고 싶습니다.


하지만 영혜 앞에 놓인 난관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피부도 같고 언어도 같은 한민족이지만 영혜에 대한민국은

엄명한 타국입니다. 영혜가 아무리 힘들어도 대한민국은 소녀를

도와줄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아빠를 비롯한 늙은 할머니가 영혜를

책임지는 게 상식인데 현재 상황은 오히려 영혜가 가족을 도와야 합니다.

이렇게 벼랑 끝으로 내몰린 연변 소녀를 어찌하여 외면해야 한단 말입니까.


연변 소녀 영혜의 비자는 내년 1월에 만료되고

몹쓸 병에 걸린 아빠는 내년 3월에 만료됩니다.

그때가 되면 연변 소녀와 아빠는 연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연변에는 이들 부녀지간이 살 수 있는 집이 없습니다. 

아빠의 빚 때문에 연변 집은 사라졌고 엄마의 병은 더 깊어졌습니다.


연변 소녀를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해서라도 도와야겠는데,
이 난관을 어떻게 할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죽어가던 소녀의 손을 잡은 예수가

‘달리다굼’이라고 속삭였는데 이 말은 "소녀야, 일어나라"는 말.

예수의 그 말에 죽어가던 소녀가 잠자다 일어난 것처럼 살아났듯이

연변 소녀에게 ‘달리다굼’, 소녀야 힘내라! 하늘이 도와줄 것이라고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과연 그런 기적이 일어날까요.


바람이 차갑게 부는

연변 소녀의 텅 빈 가슴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 차 있습니다.


※연변 소녀 이야기는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를 통해 계속 이어집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연변 소녀를 위해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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