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 벼랑 끝의 소녀를 어찌할꼬!
4년 전,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 소녀가 끔찍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입니다.
목사이자 신학대 교수였던 아빠의 폭행에 의해
사망한 여중생이 백골 상태로 발견됐던 것입니다.
경찰에 의해 발견된 소녀의 주검은
사망한 지 11개월이 지난 상태였습니다.
소녀는 죽어도 너무 오랫동안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저 좀 도와주세요.
소녀가 살 기회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아빠의 잦은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한 소녀는
초등학교 때 담임이었던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제자를 달래서 돌려보냈습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제자를 도와줄 상황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도움받지 못한 소녀는 오갈 데 없어 귀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빠는 딸이 가출했다는 이유로 5시간에 걸쳐
폭행했고 소녀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소녀의 도움 요청을 외면한, 외면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은
이 죽음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소녀가 살던 곳이 부천이었고
소녀가 죽은 곳이 부천이었기에
부천에 소년희망공장과 소년희망센터를 만든
나와 아내는 무척 괴로워 가슴을 치며 자책했습니다.
소녀여, 도와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소녀는 하얀 꽃이 됐을까?
아니면 푸른 별이 됐을까?
소녀가 꽃이 됐든 별이 됐든
그 나라에서 엄마를 만났을 겁니다.
아니 꼭 만났어야 합니다. 만나야만 합니다.
암 투병을 하다 어린 딸을 두고 떠나야만 했던 엄마는
천국에 너무 일찍 온 딸을 품에 꼭 안아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고통은 끝났습니다.
소녀가 사는 영원한 나라는 애통도 없고,
이별도 없고, 가정폭력도 없고, 죽음도 없고,
도움의 손길을 청해도 외면하는 무정함도 없는 나라이니까요.
소녀여, 가정폭력도 고통도 없는
그 나라에서 못다 핀 꽃을 피우길 빕니다.
부천에서
그 여중생 또래의
한 소녀를 만났는데
그 소녀 또한 여중생처럼
막다른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위기에 처한 소녀를 보고서
못 본 척 외면할 수가 없어서
우리가 돕겠다고 선뜻 나섰는데
그로 인해 한 달째 고민 중입니다.
소녀의 상황을 파악했더니 한두 문제가 아닙니다. 적당히 한두 번만 돕고 말 수 있다면, 한두 가지만 도와주어도 된다면 기념촬영을 하며 생색낼 수 있겠는데 그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괜히 돕겠다고 했나? 남들처럼 나도 외면하고 말까? 제 능력으론 소녀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가 없어서 한 달째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하도 무겁고 힘들다 보니 남들처럼 외면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섬찟했습니다. 성경 말씀이 가슴을 찔렀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내가 배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어 있을 때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지 않았다. “
그때에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
그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들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 하고 말할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42절~45절)
※부천 소녀에 대한 자세한 사연은 11월 18일(수) 발행 예정인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 두 번째 편지에서 전하겠습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소녀를 위해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