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호진 Jul 03. 2020

청송감호소 출신 노인의 눈물 밥

#이야기 하나, 파킨슨병 앓는 최 노인의 인생 이야기

 ▲최 노인이 사는 고시원.     


"수박 먹고 싶습니다!"    


최 노인(76세)이 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수박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파킨슨 병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최 노인은 수박을 먹기 좋게 썰어다 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습니다. 공익활동가인 아내는 위기청소년과 미혼모 돕는 일로 바쁩니다. 아내가 저에게 부탁했고 아내의 충실한 심부름꾼인 저는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마침 재난지원금 카드가 있어서 함양 수박 두 통을 샀습니다. 수박 크기는 작은데 아주 달았습니다.      


아내는 20년 넘게
최 노인을 돕고 있습니다. 


최 노인은 1.5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삽니다. 그동안은 무엇을 사들고 찾아뵈려고 해도 거처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자존심 강한 최 노인은 자신의 남루한 거처를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파킨슨 병에 걸리면서 어쩔 수 없이 거처를 알려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자존심을 중요시 여깁니다. 자존심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을 도울 때는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합니다. 


최 노인이 수박을 편히 드시도록 깍두기 모양으로 썰고 배와 사과와 토마토는 잘게 썰어 용기에 담았습니다. 마침, 한약사인 지인이 쌍화탕 두 상자를 보내준 것이 있어서 한 상자를 최 노인 몫으로 챙겼습니다. (최근에 아내에게 전화를 한 최 노인이 "난생처음으로 한약을 먹었다!"면서 "고마워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런데 최 노인이 부탁을 추가했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생일 케이크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면서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생일 케이크도 부탁드려요!"
  

▲최 노인에게 드린 수박과 쌍화탕. 수박을 먹고 싶어 하던 작은아들은 스물아홉 청년이 됐습니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수박 꼭 사 먹을 거야!  


최 노인에게 드릴 과일을 준비하면서 아픈 옛일이 떠올랐습니다. 이혼과 파산의 그해 여름은 '집도 절도 없이' 떠안은 빚에 쫓겨 떠돌던 시절이었습니다. 일곱 살이던 작은아들이 동네 아이들이 수박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수박 꼭 사 먹을 거야!"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수박이 너무 먹고 싶은데 벼랑에 내몰린 아빠에게 사달라고 조를 순 없고, 그렇다고 동네 애들에게 구걸할 수도 없으니 먹고 싶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혼잣말을 한 것입니다. 


아빠, 이 돈!
빚 갚는 데 쓰세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작은아들은 지인이 준 용돈 5천 원을 가지고 한참이나 고민했습니다. 치킨을 사 먹을까? 아니면 떡볶이를 사 먹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작은아들은 꼬깃꼬깃해진 5천 원을 저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이 돈! 빚 갚는데 쓰세요!", 저는 어린 아들이 준 돈을 쥐고 한참 울었습니다. 작은아이들이 준 것은 돈이 아니라 절망의 터널을 벗어나게 하는 용기와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습관적으로 TV를 켠다.

적막을 깨워주는 유일한 친구다.

그런데 옆방에서 똑똑 두들긴다.

'너 혼자 사냐!'며 소리 줄이라는 신호다.

1.5평, 많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

다리를 쭉 뻗고 잠들 수가 없다.

이렇게 오그라드는 게 인생인가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만 같다.     


(조호진 시인의 '고시원' )     


두 아들을 섬진강변 마을에 두고 상경한 저는 월 18만 원짜리 고시원 생활을 했습니다. 1.5평 남짓한 방에서 불 끄고 누우면 무덤 속 같았습니다. 이대로 잠에서 깨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쓴 시가 아래의 시 '고시원'입니다. 삶의 나락으로 떨어져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저의 노력으로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온 것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동지 같은 두 아들이 삶의 용기를 북돋워 주었기 때문에 살았습니다. 살자, 살자, 꼭 살아서 좋은 날을 보자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최 노인이 사는 1.5평 남짓한 방. 도대체 몇 평에 살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을까.     


최 노인은
전쟁고아였습니다.


6.25 전쟁이 끝났지만 전쟁고아들의 생존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그는 너무 배가 고파서 물건을 훔치고 잠잘 곳과 옷이 없어 죄를 지었다가 소년원에 들어갔습니다. 소년원에서 나왔지만 여전히 배가 고팠고 잠잘 곳과 입을 옷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훔쳤다가 붙잡혔고 어른이 되어서는 소년원이 아닌 교도소를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11범에 이르는 전과자가 됐고 징역을 다 산 뒤에도 이중처벌을 받아야 하는 보호처분 대상자가 되면서 청송 보호감호소에서 곱징역을 살았습니다.     

 

최 노인에겐
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 


하지만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됐습니다. 최 노인은 원래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특히 가족에 대해선 좀처럼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심한 목소리로 "아들이 있긴 있는데 서로 연락 안 해!"라고 말했습니다. 남 이야기하듯이 말했지만 목소리엔 물기가 묻어 있었습니다. 인생의 많은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면서 아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죄책감 때문에 유일한 혈육인 아들이 보고 싶어도 참고 사는 최 노인, 외롭게 늙은 것도 서러운데 파킨슨 병까지 찾아왔으니 인생 참 서글픕니다.


이렇게
서러운 인생이 있을까요.


전과 11 범인 최 노인에게 그 누가 생일상을 차려주겠습니까. 그 누가 생일 축하의 노래를 불러주겠습니까. 그 누가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아 주겠습니까. 설사 생일상을 차려서 생일 케이크에다 축하의 노래를 불러준다고 해도 최 노인은 극구 거부할 것입니다. 낯설고 어색한 것은 질색합니다. 아내가 최 노인 눈높이에 맞춰 도와드리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아무리 선한 뜻이라고 해도 도움받는 이의 뜻을 넘어서지 말아야 합니다. 


눈물 밥을 아십니까?

 

눈물 밥을 먹어본 사람은 눈물 밥의 서러움을 압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먹는 국밥과 깍두기…. 국밥을 허기지게 먹다가 울컥거리는 것은 눈물이 목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국밥 국물에다 눈물을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눈물 밥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최 노인의 눈물 밥을 생각하다가 내 눈물 밥이 떠올라 목메었습니다. 그래서 재난지원금 카드로 3만 원짜리 케이크를 샀습니다.     

 

지난 6월 6일(토) 아내와 함께 최 노인을 찾아갔습니다. 낡은 건물 2층에 있는 최 노인의 방은 1.5평 남짓, 겨우 몸 하나 누일 정도의 좁은 공간입니다. 제가 살았던 고시원 방 크기와 같았습니다. 수박 등의 과일과 쌍화탕 그리고, 케이크를 드린 뒤에 최 노인이 겨우내 덮었던 이불과 겨울 패딩을 챙겼습니다. 최 노인은 고시원이 비좁기 때문에 여름이 되면 겨울 이불과 패딩을 저희에게 맡깁니다. 그러면 잘 빨아서 보관하다가 겨울이 되면 갖다 드립니다. 최 노인이 부탁을 또다시 추가했습니다.     


"여름 이불과
반바지도 부탁합니다!"


이렇게 부탁하고 또 부탁한다고 해서 최 노인을 염치없는 늙은이로 취급하면 곤란합니다. 최 노인은 아무에게나 손 벌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최 노인은 감옥 생활을 마치고 나온 그해 봄,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아내가 사무국장으로 일했던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생면부지의 청년에게 신장을 기증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나눈 이후로 최 노인은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인이 아니라 생명을 살린 의인입니다. 자존심이 강한 최 노인은 아내에게 말고는 도움을 청하지 않습니다.  

 

▲눈물 밥을 먹지 않고서 어떻게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고마워!


어떤 사람들은 민폐 끼치지 말고 양로원이나 노인요양원에 가라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최 노인은 비록 병든 몸이지만 자신의 몸을 누구에게 의탁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좁고 불편한 공간이지만 자신만의 공간에서 스스로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누구든 존중받으며 살고 싶은 것처럼 최 노인의 자기 결정권 또한 존중받아야 합니다. 최 노인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어떤 도움에도 투박한 말로  “고마워!”하고 말았는데 파킨슨 병을 앓은 뒤로는 마음이 약해져서인지 눈물 흘리면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는데, 이렇게 잘해주니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이 신세를 어찌 갚을지….”     


가난한 사람은
죄인이 아닙니다. 


거지든 노숙자든 누구든 거저 도움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줄게 없기 때문에 거저 도움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들은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줍니다. 가진 것이 부족해서 불만입니까. 그대보다 더 가난한 이웃을 만나십시오. 그러면 가진 게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인생이 너무 불행해서 죽고 싶습니까. 그대보다 더 불행한 이웃을 만나십시오. 그러면 내 인생이 죽을 만큼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삶이 외롭고 슬프십니까. 낮고 누추한 이들의 손을 잡으십시오. 그래서 외롭고 슬픈 이웃의 손을 맞잡는다면 겨울처럼 외로웠던 그대는 봄처럼 따뜻해질 것입니다. 


최 노인이 우리 부부에게 
나눠준 것은 구원(救援)입니다. 


죽음과 죄악에서 건져 내는 거창한 구원 말고, 절망에 빠졌던 나의 손을 누군가 잡아준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손을 잡아 주는 나눔의 구원, 눈물 밥으로 허기를 달랬던 내가 가난한 아이들에게 눈물 밥을 나누는 구원,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내가 안식처를 얻었으므로 따뜻한 옷과 이불로 추운 이웃들을 감싸주는 구원, 목마른 인생으로 정처 없이 떠돌던 내가 영혼의 구원을 얻었으므로 목마른 이웃의 목을 적셔주는 삶의 구원을 행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최 노인이 깨우쳐 주었습니다. 어쩌면 최 노인은 저희 부부에게


인생 스승
인지도 모릅니다!



작가의 이전글 합쳐서 신장 두 개인 60대 노부부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