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역 바로 앞에서 1번이나 5번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시내처럼 보이는 데가 나올 거예요. 시내 근처에 정거장이 3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에서 내리시면 돼요. 갑자기 번화한 곳이 나오니 딱 보면 아실 거예요.”
영주에서 묵는 게스트하우스의 호스트가 부석사에 가는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부석사에 가기 위해서는 영주역 바로 앞에 있는 버스정거장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탄 후 어딘가 번화한 곳에서 내리고, 시내에서 끼니를 해결한 후 영주여객까지 걸어가서 부석사행 버스를 타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그녀는 내가 내려야 할 시내의 버스정거장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냥 보면 알 거라고만 했다. 그녀에게 다시 정확한 설명을 요구하기에는 그녀의 표정이 확신에 차 있었다. 절대 그 번화한 곳을 지나칠 리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되묻지 못 하고 발걸음을 뗐다. 혹여나 길이 헷갈리면 인터넷에 찾아보면 된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거장 까지 걸어가며 그녀의 설명을 곱씹어보았다. 처음엔 의문이 들었다. 얼마나 번화한 곳이 나오길래 딱 보면 안다는 걸까? 그 후엔 불안이 싹텄다. 딱 보면 알 거라고 했지만 난 모를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녀의 설명방식이 좋았다. 만약 그녀가 정거장 이름을 알려줬다면, 혹은 몇 정거장을 가서 내려야 한다고 정확한 숫자를 말해주었다면 나는 그 이름과 숫자를 잊지 않기 위해 불경을 외듯 오로지 그 단어만 외느라 이 여행을 즐기지 못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엔 다른 생각들과 섞여 전부 잊어버리고는 인터넷 지도를 찾아봤을 것이다.
가다보면 목적지가 나올 것이고 당신을 그곳을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말. 나는 그 말에 들어있는 확신과 믿음을 무너뜨리기 싫어 버스 바깥으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건물들을 유심히 쳐다봤다. ‘여기가 시내인가?’, ‘지금인가? 아직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목적지에 도착하라’는 현실 세계의 퀘스트를 깨기 위해 모험하는 탐험가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딱 봐도 번화한 곳에서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을 따라 내리다 보니 그곳이 시내였다. 영주 시내는 대구 시내와 닮아있다. 낮고 일정한 높이로 줄지어 서있는 건물들과 그 사이에 마련된 분수대와 벤치를 보내 딱 동성로가 떠올랐다.
대구를 생각하며 시내를 둘러보는데 대구에서 시작한 ‘봉대박 파스타’를 만났다. 처음 봉대박 파스타를 먹었던 대학교 새내기 시절을 여기서 떠올리게 될 줄이야. 음식이 나오기 전에 촛불에 구워먹는 마시멜로우, 매콤한 봉골레 파스타, 남은 파스타 소스에 비벼먹는 자그마한 사랑밥 등 모든 게 처음이었던 그 시절 유독 신기하고 맛있었던 봉대박. 어쩌다 한번 특별한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아가면 매번 번호표를 들고 기다려야 했지만 그런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봉대박 옆으로는 올리브영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작은 도시의 작은 시내라고 해서 현지의 토종 가게들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올리브영을 마주칠 때마다 그러듯 뭐 살 건 없나 재빠르게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떠오르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화장솜 살 걸.
어디가 어딘지 몰라 아무 방향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시내가 작아서 끝에서 끝까지 5분이면 걸어갈 거’라는 호스트의 말만 믿고 걷다 보니 갑자기 전통시장이 나왔다?! 바닥에 소쿠리를 늘어놓고 나물을 파는 할머니들과 수레에 옷가지를 늘어놓고 한번 보고 가라며 손짓하는 아주머니들 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헤쳐나왔다. 누가 봐도 당황한 사람처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영락없이 꿰어 들어갈 순진한 사람처럼.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하게 늘어선 장판을 뚫고 나오니 커다란 간판이 보였다. 내가 방금 지나온 소란의 숲이 ‘영주365시장’이었구나 하고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