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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의 영국 Sep 02. 2022

 파워 내향형 엄마의 영국 육아

내향형 엄마는 나쁜 엄마일까?

나는 말 그대로 파워 내향형이다.


MBTI 이런 거 좋아하거나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 난 뼛속까지 I 인 엄마 사람이다.


아이를 키우니 나의 내향적인 성향이 어쩔 땐 마이너스로 돌아온다는 걸 판데믹을 겪으며 -그것도 연고도 없는 영국에서-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남편이 외향적인 사람이었다면 우리의 판데믹이 이토록 고립되어 있진 않았겠지 싶지만 그건 뭐 상상일 뿐, 남편 또한 심각한 내향적 인간이라 우린 정말 '우리끼리' 만든 테두리 안에서 2년 가까이를 보냈다.


그렇다고 사람을 만나 대화하기를 싫어하거나 못하냐고 묻는다면 어이없지만 전혀 아니다. 사람들은 내가 외향적인 성향에, 그냥 항상 올웨이즈 밝은 사람임이 분명하다고들 한다. 그만큼 사람을 만나면 노력을 해왔던 건데...


사람을 만나면 내 모든 에너지를 끌어다 당겨 쓰기에 그 어떤 액티비티보다 피곤하고 웬만하면 하고 싶지가 않다고 할까? 물론 마음이 잘 맞는 오래된 친구나 지인과의 만남은 좋다. 되도록이면 1대 1 만남을 추구한다.





너무 내 모습이라 소름 돋았다. 약속에 나갈때마다 거의 우는 나 ㅋ   Copyright by Google



이런 파워 내향형, 집순이 집돌이인 우리 부부에게는 우리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파워 외향형인 딸이 있다. 그녀는 동네 이웃들이 다들 알 만큼 항상 밝고, 웃음이 많고, 당당하고 목소리가 엄청 크고 수다쟁이다. 그래서 나와 단둘이 외출을 하는 날은 나도 모르게 딸아이에게 알게 모르게 눈치를 주기도 한다. 난 사람들의 주목이 싫으니까 ㅠㅡㅠ


문제는 우리 때문에 파워 E 인 딸아이가 만 3세, 즉 올해 1월까지 판데믹을 이유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 사회생활을 할 경험이 없었다는 거다. 사람을 너무 안 만나니 아이는 사람을 너무 과하게 좋아하고 또래든 어른이든 신생아 안 가리고 정신을 못 차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만 만나면 아이가 다른 사람이 되는 느낌이랄까? 통제도 안되고 그런 아이가 어색하고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도저히 이러다간 어린이집에 가는 9월까지 기본적인 에티켓, 가령 친구들과의 관계, 양보, 소통, 선생님과의 관계 등을 하나도 모르고 갈 것만 같아 무작정 아이를 데리고 사람들 무리로 들어가는 연습을 시작 했다.

아이의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우리는 동네마다 있는 다양한 플레이 그룹 시도는 물론,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다 찾아다녔다.






그렇다면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내향적이었나?


영국에서 육아를 하며 내가 왜 이렇게 이곳 엄마들의 육아 문화를 불편해할까 생각해보니, 미국에서 보낸 20대 시절이 떠올랐다. 내 전공상 (미술사, 아트 비즈니스) 학교 안과 밖에서 수도 없이 해왔던 새로운 사람들과의 격식 차린 만남(주로 오프닝 리셉션과 사내 파티)과 딱딱한 대화, 갖춰 입은 옷에 마시지도 않는 샴페인을 들고 얼굴은 웃지만 정신은 이미 유체이탈을 한 듯 내가 아닌 모습으로 일 얘기를 하고 전화번호를 주고받던 그때가 떠올랐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은 인맥을 쌓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인 이런 모임을 손꼽아 기다리는 반면, 내겐 어떤 일보다 고되었다. '문화 차이가 이런 건가'를 그때 가장 많이 느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게 미국의 (서양의) social gathering이 진짜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거다. 다들 얼굴에 가면을 쓴 거 같고, 다들 잘난 척만 하는 거 같은 그런 생각이 지배할 때 즈음 난 미국을 떠났다.


그렇게 서른이 넘으며 난 진짜 다른 사람이 되었다. 가족들과 친한 친구들이 다 놀랄 정도로 난 파워 내향형 인간이 되었다. 물론, 어쩌면 난 원래가 내향형 인간인데 모르고 살아온 거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엔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내 아이를 위해 나도 한 발 내딛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말도 하고 섞이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아이는 나를 보고 배우니까.


이제는 손에 어색한 샴페인도, 샤도네이도 없이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내가 좋아하는 편한 옷을 입고 아이의 짐이 가득 든 백팩을 메고 진정한 내가 되었으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웠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다가가 내 소개를 하고 실없는 농담을 하는 것도 그리 힘들진 않겠다 느꼈다.


놀이터에서, 플레이 그룹에서 처음 만나는 영국 엄마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아이에 대한 질문도 던지고 묻는 질문에 더 길게 답하고... 이러다 보니 대화에 패턴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 한 달이 지나니 만나던 사람을 여기저기 다른 프로그램에서 만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낯선 사람들이 조금 친숙해지고 편해지기도 하더라.


전화번호를 교환하면 혹시나 연락이 올까 걱정되고, 연락이 오면 어색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애쓰며 혹여 연락이 안 오면 그 사람을 다시 마주쳤을 때 어색하진 않을까 걱정하던 이전의 나를 조금 내려놓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나를 둘러싸고 있던 틀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엄마는 나쁜 엄마일까?


나와 남편은 우리의 내향적인 성향을 자책도 많이 했다. 괜히 우리 때문에 딸아이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매일 엄마, 아빠랑만 다니고 우리끼리만 지낸다고


그런데 구글링을 해보니 나처럼 생각하는 방구석 내향형 엄마들이 많은 거 같아 괜스레 반가웠고 기운이 났다.


Copyright by Google

Q) 내향성향의 엄마는 좋은 엄마인가요?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남겼다. 사실 피식 웃음이 났지만 질문을 남긴 사람은 혼자서 고민 수백 번 하고 결국은 답이 안 나와 지식인에 질문을 남긴 것일 테다.


그 대답의 첫머리가 참 마음에 든다.

"내향(성)적인 엄마는 자녀의 감정을 외형보다 중요시한다"

아무래도 세심하고 감성적이다 보니 아이의 감정을 조금 더 예민하게 캐치할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xjHAMRtGI4


알고 보니 유명한 비디오로 <내향(성)적인 엄마가 식료품 마트에서 우연히 외향(성)적인 엄마를 만났을 때>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ㅋㅋ

앗, 너무 어색해!!!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https://www.anxioustoddlers.com/introverted-mom-2/#.Ywp5G-zMKrM


외향적인 세계에서 내향적인 엄마가 살아남기 위한 15가지 요령 ㅋㅋ


# Love that you are introverted! Some of the most thoughtful, compassionate and considerate people are introverted. Celebrate the fact that you are an introverted mom!


# Don’t let other people or other moms try to take you out of your comfort zone. Some people just don’t get introverts!

다른 사람들 또는 엄마들이 당신을 불편하게 휘두르지 못하게 하라. 어떤 사람들은 내향형인 사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 You are not responsible for your child’s social life, they are. Don’t beat yourself up.

아이의 사회생활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니 자책 말라.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다. 내 성향으로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은 있어도 나 때문에 아이의 사회성이나 사회생활이 결정되는 건 아니다.





난 혼자 있길 즐기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지만 꼭 나만의 시간과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 내향형 인간이다. 스스로 돌보는 시간이 없으면 되려 힘들어지는, 이런 내가 좋고 이런 내 성향에 충분히 만족한다.

혼자 있어도 외로움보다 설렘과 편안함이 더 큰 내가 너무 다행이라 여긴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플레이 그룹 엄마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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