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사다리를 오른 뒤루아와 도구적 관계관
마주치는 여자마다 반하게 하려면, 얼마나 잘생겨야 할까요?
조르주 뒤루아는 그 정도로 잘생긴 남자입니다. 얼마나 외모가 뛰어난지 여자들 사이에서 Bel-Ami 벨아미, '잘생긴 친구'라 불리죠.
무일푼의 가난한 전역 군인에서 파리 상류사회의 빛나는 스타로, 그는 아름다운 얼굴을 무기로 사교계 부인들을 한 명 한 명 공략해 위로 올라갑니다.
기 드 모파상의 대표작 '벨 아미 Bel-Ami', 주인공 뒤루아의 도구적 관계관(instrumental relationship)은 그의 성공에 어떤 역할을 했을지 같이 보실까요?
19세기 후반, 제3공화국 시대의 프랑스는 정치·경제·언론이 얽히며 여론 조작과 부패가 만연했어요. 특히 신문의 영향력이 급격히 커지면서 언론은 권력과 손잡고 세상을 입맛대로 움직이고 있었죠.
기 드 모파상은 신문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뒤루아가 기자로 시작해 소위 신분 상승을 이루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냈습니다.
기자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뒤루아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던 건 아니었어요. 그는 글을 제대로 써본 적조차 없었는걸요.
하지만 그의 주변엔 그가 활용할 수 있는 상류층 부인들이 있었죠.
이처럼 뒤루아의 성공 뒤에는 관계를 계산적으로 이용하는 심리가 있었어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도구적 관계관(instrumental relationship)이라고 불려요. 상대를 정서적 교류의 대상이 아닌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보는 태도를 말하죠.
여기서 ‘목적’은 사랑, 우정, 정서적 교류 같은 관계 자체가 아니라 외부의 이익이에요. 예를 들어 권력, 돈, 사회적 지위, 명성, 혹은 실질적인 자원(정보, 기회) 등등 입니다.
도구적 관계관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거래성(Transactional) - “이 관계로 내가 얻는 건 뭘까?”라는 계산이 우선.
조건부 애정(Conditional Affection) - 도움이 되면 애정 표현, 도움이 안 되면 거리 두기.
관계 교체 용이성 - 더 나은 자원이 나타나면 기존 관계를 쉽게 대체.
감정 절제 - 감정을 깊게 투자하지 않아 손실을 최소화.
목표 중심성 - 관계 자체보다 결과에 초점.
조르주 뒤루아는 이 특징 그대로 사랑과 결혼을 사회적 사다리로 삼았어요. 그는 파리 사교계 여성들을 유혹하고, 그들의 사회적 자원(남편의 권력, 신문사 인맥, 재산)을 흡수했습니다.
그는 첫 기사를 친구 포레스티에의 부인, 마들렌의 도움을 받아 (실은 불러주는 대로 받아적어) 완성합니다. 포레스티에가 지병으로 사망하자 뒤루아는 마들렌의 유용함을 알아보고 그녀와 결혼까지 해요. 글쓰기 재능과 넓은 사교계 인맥을 지닌 마들렌은 그가 언론사에서 빠르게 성공하는 데 결정적인 발판이 되죠. 이는 도구적 관계관의 특징 중 하나인 상대방의 능력과 자원을 이용해 목표를 이루려는 태도를 잘 보여줘요.
동시에 뒤루아는 드 마렐 부인과 연애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와 결이 잘맞아 만남이 즐거웠어요. 도구적 관계관의 또 다른 특징은 감정 소모를 최소화하면서 안정감을 확보하려는 태도인데, 드 마렐 부인은 바로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뒤루아에게 그녀는 늘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였고, 덕분에 그는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면서도 정서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야망은 거기서 멈추지 않죠. 그는 신문사 사장의 아내, 왈테르 부인에게도 손길을 뻗칩니다. 그녀는 정치와 경제의 핵심과 연결된 인물이었죠. 뒤루아는 그녀와의 관계를 통해 상류층 내부로 들어갈 기회를 얻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그녀에게서 주식 투기 정보를 얻습니다. 하지만 정보만 챙기고 곧 그녀를 버리죠. 왈테르 부인은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 뒤루아에게 집착했지만, 그는 그녀의 감정적 요구가 귀찮았어요. 뒤루아에게 사랑은 거래였지, 헌신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불행히도 왈테르 부부만 주식 투기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두고 , 뒤루아는 한 푼도 벌지 못했습니다. 그는 분노하죠. 한순간에 '벼락거지'가 되었다 느껴요.
그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깁니다 - 나도 왈테르 부부만큼 부자가 되어야겠다.
이번에 그가 선택한 도구는 왈테르 부인의 어린 딸 쉬잔이었습니다. 이제 필요가 없어진 마들렌과 이혼하고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왈테르 부인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은체 그는 쉬잔을 유혹해 결혼에 성공합니다. 마침내 막대한 부와 사회적 지위를 모두 갖게되고, 완벽한 신분 상승을 하게 되죠.
그녀와 함께하는 한 결코 출세하지 못할 것이다...지금 그녀는 그의 발에 채워진 족쇄나 매한가지였다. 아!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다면 그는 좀 더 폭넓고 힘 있게 활동할 수 있었을 텐데! 이 귀여운 쉬잔에게 손을 썼더라면 엄청난 도박에 이겼을 것을!
(뒤루아는 마들렌에게 받은 걸 그새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이제 그녀를 눈엣가시로만 여기죠.)
뒤루아는 정말이지 너무 완벽한 도구적 관계관의 예시입니다. 도구적 관계관의 끝은 조건이 가장 좋은 상대를 통해 목표를 완성하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뒤루아만 그들을 이용한건 아니에요.
마들렌은 글재주가 뛰어났지만, 당시 여성은 신문에 자기 이름으로 기사를 실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뒤루아는 그녀의 재능을 세상에 드러내는 훌륭한 대필 도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뒤루아와 이혼한 뒤에도 마들렌은 또 다른 젊은 남자에게 같은 방식으로 글을 불러 주는 모습으로 그려져요.
드 마렐 부인 역시 사랑 없는 결혼 생활 속에서 뒤루아와의 만남을 통해 잊고 있던 연애 감정을 되찾아요. 그녀에게 뒤루아는 남편이 채워 주지 못한 마음의 공백을 대신 메워 주는 존재였어요. 그래서 뒤루아가 두 번째 결혼을 한 이후에도 관계를 이어 가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죠.
왈테르 부인은 부와 안정을 누리고 있지만, 젊은 시절 격정적인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죠. 뒤루아와의 관계는 그녀에게 늦게나마 열정과 욕망의 불꽃을 선사했어요.
이처럼 도구적 관계관은 일방적인 착취만이 아니라,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맺는 거래적 관계이기도 해요. 뒤루아는 권력과 지위를 손에 넣었고, 여성들은 각자 결핍된 감정과 기회를 채웠습니다. 서로의 욕망이 맞물렸기에 그들의 관계는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죠.
놀랍게도 1880년대 프랑스 파리는 현재 대한민국과도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언론과 권력의 밀접한 관계는 2015년에 개봉한 영화 '내부자들'을 떠올리게 하죠.
주식 투기는 어떨까요? 내부 정보를 가진 자들이 수익을 보는 일은 지금도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동산이나 코인 투자로 한순간에 부자가 된 사람들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감정은 우리에게 ‘벼락거지’라는 단어로 익숙하죠.
또한 소설에는 무명 작가의 그림을 사 두었다가, 작가가 유명해지기를 기다리는 왈테르 사장이 등장합니다. 그래야 높은 가격으로 되팔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그림을 투자 상품으로 보는 태도 역시 오늘날과 다르지 않습니다.
약 140년 전 파리 사람들과 2025년 현재의 우리, 모두가 욕망에 불타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더 가지고 싶고, 더 위로 올라가고 싶은, 출세하고 싶다는 욕망 말이죠.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그런 마음은 상대를 수단으로만 바라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도구적 관계관은 빠른 성공을 가능하게 하지만(뒤루아는 이 모든 것을 3년 만에 이루었죠), 진실된 관계를 어렵게 만듭니다. 신뢰와 지속성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는 정서적 고립과 공허감을 낳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상호 이용’이라는 인식이 퍼질 경우 사회적 평판의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요. 하지만 출세를 위해선 아무렴 어때 - 라는 마인드의 사람은 분명 지금도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사장 딸과의 결혼으로 부와 사회적 위치를 손에 넣은 뒤루아의 다음 목표는 정치인 같습니다.
그가 눈을 들자 아득히 멀리, 콩코르드 광장 저편에 국회의사당 건물이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마들렌 성당 현관에서 부르봉 궁 현관까지 한달음에 뛰어갈 것 같았다.
그는 구경꾼들이 양쪽으로 울타리를 이룬 높은 돌계단을 유유히 내려갔다.
그러나 그는 그들은 보지 않았다. 그의 생각은 뒤로 돌아가 있었다.
강렬한 햇빛 때문에 가늘게 뜬 그의 눈앞에는, 드 마렐 부인이 침대에서 나올 때면 언제나 마구 흐트러지는 귀여운 곱슬머리를 거울 앞에서 매만지던 영상이 아른거렸다.
(목표 달성을 이루자 다시 그의 정부를 생각하는게 뒤루아 답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 국회의사당이 언급된 것이 의미심장한데요. 이 전부터 뒤루아는 내가 정치인이 되면 더 잘할 수 있다 생각하곤 했었죠.
부를 얻으면 권력을 원하는게 그때나 지금이나 자연스러운 수순일까요?
이번엔 과연 그가 누구를 이용하여 국회의원에 당선이 될지 궁금해지는데요, 아쉽게도 소설은 여기에서 마무리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혹시 주변에서 뒤루아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성공을 위해 관계를 계산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잘못일까요, 아니면 시대가 요구하는 생존 방식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