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인이 언니의 신랑이라니? –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티타의 불꽃을 피운 자기 결정 이론

by Vee

막장 같지만, 전 세계를 사로잡은 이야기

사랑하는 남자가 나의 언니와 결혼한다면, 어떤 기분일 것 같으세요?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절망감 속에서도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티타는 오히려 자주적인 여성으로 거듭납니다.

언뜻 보면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인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1989년 출간 이후 전 세계를 휩쓴 베스트셀러였으며,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당시 남편이었던 알폰소 아라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아마 예전에 영화를 통해 접하신 분들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영화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고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을 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 작품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은 이유는 바로 '요리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기 때문인데요. 소설의 각 장은 티타가 만드는 요리 레시피로 시작하며, 요리는 단순히 먹는 음식을 넘어 등장인물의 감정을 담아내는 매개체로 기능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티타의 눈물 젖은 케이크와 페드로의 사랑으로 만든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 레시피. 매 챕터마다 어떤 요리일지 상상하는 재미가 있어요.


주방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신선한 페미니즘 문학으로 주목받았는데요, 기존에는 단순히 여성의 가사 노동 공간으로 여겨졌던 주방을 티타는 요리를 통해 자유를 찾아가는 공간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에요.


맛있는 요리처럼 술술 읽히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오늘은 티타의 성장 서사를 따라가며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992년 개봉한 영화도 있고, 2024년 HBO에서 제작한 시리즈도 있습니다. (HBO 시리즈는 국내에서 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눈물의 케이크와 불꽃의 은유

티타는 억압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집안 전통에 따라 막내딸은 결혼하지 않고 평생 어머니를 돌봐야 했기 때문이죠. 이를 알게 된 연인 페드로는 티타 곁에 남기 위해 결국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을 선택합니다.

마마 엘레나의 명령에 따라 언니와 페드로의 결혼식을 위해 웨딩케이크를 만들던 티타는 하염없이 흘러내린 눈물을 반죽에 섞었고, 그 감정은 그대로 전해져 웨딩케이크를 먹은 하객들마저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런 티타를 지켜보며 사랑에 빠진 의사 존은 그녀에게 누구나 성냥갑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불꽃을 일으켜 줄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죠.


이 대사는 티타의 삶을 꿰뚫는 은유에요. 아무리 마마 엘레나와 언니 로사우라가 그녀의 욕망을 억눌러도, 티타는 끝내 굴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불꽃을 일으켜 줄 요리와 사랑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죠.


심리학적으로 티타의 성장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입니다.


자율성(Autonomy) – 내 선택대로 살고 싶다는 욕구

유능성(Competence) – 무언가를 잘 해내고 싶다는 욕구

관계성(Relatedness) – 누군가와 진정으로 연결되고 싶다는 욕구


이 세 가지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며, 충족될 때 우리는 불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자기결정이론으로 본 티타의 성장

티타의 서사는 완벽한 불꽃으로 귀결됩니다.

1. 자율성 – 억압에서 선택으로

티타는 마마 엘레나의 권위와 전통에 묶여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집을 떠나 존과의 결혼을 고민하면서, 처음으로 어머니의 뜻이 아닌 자신의 의지를 기준으로 삶을 결정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페드로임을 받아들이며, 억눌려 있던 마음을 해방시키고 자율성을 되찾게 되죠. 더 이상 마마 엘레나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고 깨달은 순간, 그녀 안의 불꽃이 비로소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 유능성 – 요리를 통한 자기표현

티타는 자신의 감정을 요리로 표현합니다.

티타의 음식을 맛본 사람들은 그녀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음식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 그것이 곧 그녀의 유능성이었죠. 억압 속에서도 티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3. 관계성 – 사랑이 불을 붙이다

티타의 불꽃은 결국 페드로와의 사랑, 그리고 존의 따뜻한 이해 속에서 타올랐습니다.

사랑과 연결은 그녀의 내면 성냥에 불을 붙여 준 ‘점화제’였던 셈입니다.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은 단순한 사랑이야기를 넘어 자기결정이론이 말하는 세 가지 욕구를 충족하며 자기 자신으로 살아낸 여성의 성장 서사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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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o agua para chocolate

소설의 원제 'Como agua para chocolate'는 직역하면 초콜릿을 위한 물처럼이란 뜻인데, 멕시코에서는 전통적으로 초콜릿을 만들 때 아주 뜨거운 물에 초콜릿을 녹여요.

그래서 “Como agua para chocolate”라는 표현은 “막 끓어오르는 물처럼”, 즉 강렬한 감정 상태를 말합니다. 특히 욕망, 열정이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를 뜻하죠.

티타가 억눌린 욕망을 안고 살다가, 결국은 불꽃처럼 폭팔하는 이야기와 정확히 겹쳐지죠. (소설의 마지막에는 정말로 모든 것이 불에 탑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태이신가요? 불꽃을 피울 무언가를 찾고 있는 여정에 있으신가요?




이 글의 마지막은 존의 대사로 마무리하고 합니다. 문장 하나하나 가슴에 와닿아서 전체 대사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여러분에게도 소설의 메세지가 전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을 다 읽으시는 것도 추천드려요. 멕시코 요리에 푹 빠지시게 될거에요.)


우리 할머니는 아주 재미있는 이론을 가지고 계셨어요.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 하고 성냥불을 일으켜 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잠시 동안 우리는 그 강렬한 느낌에 현혹됩니다.
우리 몸 안에는 따듯한 열기가 피어오르지요.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씨 사라지지만 나중에 다시 그 불길을 되살릴 수 있는 또 다른 폭팔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매주 목요일 고전 속 심리에 대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다음엔 어떤 인물의 마음을 들여다 볼까요? 여러분에게 작은 위로와 통찰을 주는 글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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