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보바리와 상상 속 자아를 좇는 심리 '보바리즘'
1857년, 프랑스 문학계를 뒤흔든 한 소설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마담 보바리'는 발표와 동시 외설죄로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평범한 불륜 소설 같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인 묘사로 큰 논란을 일으켰죠.
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한 불륜 소설로만 치부하기엔 마담 보바리가 시사하는 점은 세월을 뛰어넘어 현대에도 적용됩니다.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해 파멸에 이르는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으니까요.
심지어 ‘보바리즘(Bovarysme)’이라는 심리학 용어까지 탄생시킨 주인공, 엠마 보바리.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볼까요?
엠마는 평범한 농가 출신으로, 마찬가지로 평범한 시골 의사와 결혼했습니다.
겉으론 평온한 부인 같아 보였던 그녀지만, 그 속에는 숨 막힐 듯한 열망이 타오르고 있었죠.
어린 시절 탐닉했던 로맨스 소설의 여주인공처럼, 화려한 사교계에서 낭만적인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고 싶었던 그녀.
그러나 남편 샤를르는 야망과는 거리가 먼, 단조로운 시골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교계의 댄스파티에 다녀온 후 엠마의 시선은 가정이 아닌 외부로 향했습니다. 귀부인의 호화로운 생활을 간접체험한 그녀는 더 이상 일상에 만족할 수 없었죠.
엠마는 기다렸습니다. 밋밋한 일상에서 그녀를 구원해 줄 무언가를요. 소설의 여주인공에게 찾아오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사건말에요.
그런 그녀 앞에 마치 운명이 준비한 듯 새로운 남자들이 연달아 나타납니다.
젊고 수줍은 서기생 레옹, 그리고 노련하고 대담한 지주 로돌프였습니다.
엠마는 이들과 차례로 불륜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로 그들을 사랑했던 걸까요?
레옹과의 초반, 엠마는 정숙한 부인인 척 그의 마음을 밀어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젊은 남자가 자신을 은밀히 동경하는 상황에 은근한 흥분을 느끼고 있었죠.
로돌프와의 첫 데이트에서는 두 사람은 말을 타고 숲 속을 거닐었습니다.
햇빛이 비치는 나뭇잎 사이로 스치는 바람 속에서, 엠마는 마치 연애소설의 여주인공이 된 듯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녀는 옛날에 읽었던 책 속의 여주인공들을 상기했다... 그녀 자신이 이런 상상 세계의 진정한 일부로 변하면서 그녀는 예전에 자신이 그토록 선망했던 사랑에 빠진 여자의 전형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 감정의 본질은 레옹과 로돌프라는 상대방이 아니라, 그가 만들어 주는 ‘무대’와 그 위에서 빛나는 ‘나’였습니다.
결국 엠마가 사랑한 건 그들이 아니라, 그 관계 속에서 탄생하는 환상 속의 자기 이미지였던거죠.
엠마의 열정은 언제나 대상 그 자체보다, 그 관계가 비춰주는 자기 이미지에 있었습니다.
로돌프에게 버림받고 고통에 신에 의지할 때도, 그녀는 신앙심보다 경건한 여성이라는 모습의 ‘나’를 사랑했고,
그리고 자신의 신앙심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그녀는 예전에 라 발리에르 공작 부인의 초상화를 보고 자신도 그 영화를 꿈꾸었던 지난날의 귀부인들과 스스로를 비교해 보았다.
노래를 좋아할 때도, 멜로디보다 감정을 폭발시키는 가사 속 ‘나’에 취했죠.
이처럼 현실보다 환상 속의 자아를 좇는 마음을 ‘보바리즘(Bovarysme)’이라고 부릅니다.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쥘 드 고티에가 『마담 보바리』를 읽고 만든 개념으로, 현실의 자신보다 상상 속의 자신을 더 생생하게 느끼고 그 이미지를 좇는 심리를 뜻하죠.
이 상태에서는 대상이 바뀌어도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사랑한 건 사람이나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주는 ‘이야기 속 나’이기 때문이죠.
엠마의 보바리즘은 19세기 소설 속에서만 머물지 않습니다. 지금 현실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죠.
여행지에서 풍경보다 ‘내가 찍히는 장면’이 더 중요하기도 하고,
커피 맛보다 카페 사진이 더 기억에 남고,
연애에서 상대보다 ‘연애하는 내 모습’을 더 사랑하기도 하죠.
우리 역시 대상을 경험하는 게 아니라, 그 대상을 배경 삼아 자기 이미지를 연출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엠마는 끝내 현실을 사랑하지 못하고, 환상 속의 자신을 붙잡은 채 파국을 맞았습니다.
애인들에게마저 버림받고, 끝내 사치로 인한 빚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내가 사랑하는 것은 정말 ‘그 사람’일까요, 아니면 그 사람 곁에 있을 때의 ‘나’일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정말 ‘그 취미’일까요, 아니면 그걸 하는 ‘나의 모습’일까요?
매주 목요일 고전 속 심리에 대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다음엔 어떤 인물의 마음을 들여다 볼까요? 여러분에게 작은 위로와 통찰을 주는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