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 뒤편에 도사린 실존적 우울
고통은 없고 쾌락만 존재하는 세상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곳에서 살고 싶으신가요? 대신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본인의 의지대로 살 수 없습니다.
'멋진 신세계'가 그리는 미래에선 모두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삶을 삽니다.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도록 세뇌교육을 받아 아무도 불만을 표하지 않죠.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 모두가 만족하지만, 한 사람만은 불편함을 느낍니다. 바로 '야만인 존'입니다.
1932년도에 쓰여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지금 보아도 파격적인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는 인공 자궁을 통해 태어나며, 사회 전체가 다섯 단계의 계급(caste) 으로 나뉩니다. 각 계급은 태어나기 전부터 지능, 체격, 성격이 설계되기 때문에 다른 계급으로 이동할 수 없습니다. 또한, 조건화 교육으로 각 계급은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도록 학습됩니다. 따라서 모두 본인의 계급이 최고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감정 역시 통제할 수 있습니다. 우울하면 '소마'를 먹으면 됩니다. '소마'는 국가가 무상으로 배급사는 합성 약물로, 불안,슬픔,불만 같은 부정적 감정을 즉각 지워 주는 ‘완벽한 향정신성 휴식제입니다.
완벽해 보이는 이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진짜일까요? 생각할 자유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권리는 깊이 있는 행복을 만들어 내는 토양입니다. 조건화 교육과 소마가 그 토양을 제거하면, 남은 행복은 의미와 주체성이 제거된 얕은 안락일 뿐이죠.
야만인 존 역시 같은 질문을 합니다.
그는 보호구역에서 태어나 자란 인물로, 신세계가 추구하는 인간상과는 정반대입니다. 문명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으며 풍부한 감정을 길러 왔죠.
그는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감정과 인간성을 소중히 여긴 그에게 문명 사회는 비정상적인 곳처럼 보였습니다.
어머니의 죽음마저 웃음거리로 전락하자, 그는 마침내 이성을 잃고 인간성과 자유를 되찾자며 울부짖습니다.
그의 심리 상태는 실존적 우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존적 우울(Existential Depression)’은 이별, 실직과 같이 사건에서 비롯되는 일반적 우울과 달리, “나는 왜 존재하는가”, “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같은 근원적 질문이 답을 찾지 못할 때 찾아오는 깊은 허무감과 고립감입니다.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도 마음속 공백이 메워지지 않고, 기쁨조차 얕아지는 것이 특징이죠.
멋진 신세계에서 존은 실존적 우울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문명 사회의 쾌락와 소비 문화가, 셰익스피어에게서 배운 고통과 보호구역의 자연 순환과 상충하며 그의 신념을 깨뜨렸습니다.
또한, 그는 ‘구경거리’로 전락해 선택권과 주체성을 잃었고, 소마로 감각이 마비된 사람들 사이에서 진짜 감정을 나눌 상대를 찾지 못해 극심한 고립감을 느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죽음까지 쇼로 소비되는 광경을 보며 삶과 죽음 모두 의미를 잃었다고 절망했죠.
이 네 겹의 충격이 겹쳐지자 그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답이 없는 질문으로 추락했습니다. 바로 의미 상실에서 비롯된 실존적 우울이죠.
통제관은 존에게 “신세계는 안정적이며 모두가 만족하는 완벽한 사회”라고 단언합니다. 그러나 존은 단호했습니다.
나는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선을 원합니다.그리고 죄악도 원합니다.
결국 그는 문명 사회를 떠나 낡은 등대로 몸을 숨기고 스스로를 고립시킵니다. 그곳에서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 했지만, 장소만 바뀌었을 뿐 내면의 혼란은 여전했습니다.
그를 구경하려는 문명인들이 등대까지 몰려오자, 존은 그들의 광기에 휩쓸려 일시적 쾌락을 경험합니다. 이후 극심한 수치심과 절망에 빠진 그는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맙니다. 통제 불가능한 세계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이 죽음뿐이라고 여겼을 테니까요.
존의 자살은 실존적 우울이 빚어낸 필연적 결말이면서, 허무 속에서 그가 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주체적 행위였던거죠.
고통도 슬픔도 없는 세계, 모두가 쾌락만을 누리며 사는 세상.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생각과 감정은 제거당합니다.
안락함을 원하지 않는다는 존에게 통제관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관리를 요구하는 셈이군요...늙고 추악해지고 성 불능이 되는 권리와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와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고생하는 권리와 이투성이가 되는 권리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아갈 권리와 장티푸스를 앓을 권리와 온갓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는 물론이겠고요"
이에 존은 한참동안 침묵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유할 자유와 존재 이유를 묻는 권리를 빼앗긴 대신, 육체적 고통에서 해방된 세계를 과연 유토피아라 부를 수 있을까요?
통제관의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으신가요?
매주 목요일 고전 속 심리에 대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다음엔 어떤 인물의 마음을 들여다 볼까요? 여러분에게 작은 위로와 통찰을 주는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