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실존적 수용
'삐삐-' 알람이 울립니다. 이 지긋지긋한 월요병은 언제 치유될까 생각하면서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납니다. 출근 준비를 해야 해요. 일주일, 아니 어쩌면 평생 해야 할 수도 있는 챗바퀴를 다시 돌릴 시간이죠.
세상이 말하는 대로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입사했는데 막상 나에게 돌아온 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보다 공부 못한 대학 동기는 억대연봉이고, 백수였던 사촌동생은 코인 투자가 대박이 났습니다.
내가 더 성실하게 산 것 같은데, 이건 부조리해-라는 생각이 들죠. 이렇게 불공평한데 출근하는 게 의미가 있나 투덜대며 집을 나섭니다.
소설 '이방인'은 바로 이런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잠깐만요, 태양이 뜨거워서 총을 쐈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 맞아요. 주인공인 뫼르소는 보통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죠. 하지만 그의 이런 '이방인'같은 행동이 바로 부조리를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오늘은 '실존적 수용(Existential Acceptance)'을 통해 부조리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어느 날, 뫼르소의 어머니가 돌아가십니다. 그는 장례식에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 마시고, 멍하니 있죠. 눈물은 흘리지 않아요. 되려 피곤하다 느낍니다.
다음 날, 그는 여자친구랑 데이트합니다. 바다에서 수영하고 코미디 영화도 봐요. 그러다 우연히 싸움에 휘말려 총을 쏴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재판에서 그는 태양이 뜨거워서 그랬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보다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모습에 더 분노합니다. 그는 결국 사형 선고를 받게 되죠.
뫼르소는 “슬프면 울어야 한다”는 사회에서 정한 공식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왜냐면 감정을 그냥 느끼면 되지 꼭 표현을 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애도하는 방식이 눈물만 있는 것도 아닌 걸요. 나라마다 다른 방식으로 애도하기도 하고요. 이건 사람 마다도 다르죠. 어떤 사람은 장례식 땐 멍하니 있다가, 며칠 뒤에야 통곡하기도 해요.
그래서 “어머니를 사랑했다면 왜 울지 않았나?”라는 법정의 질문이 뫼르소에게는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물음이에요.
재판정 사람들은 "당신의 행동엔 이유가 있어야 해"라고 외치고, 뫼르소는 “난 이유 같은 거 몰라” 하고 침묵하죠. 이때 생기는 ‘우리가 원하는 답’과 ‘세상이 주는 침묵’의 차이가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너무 귀여운 고양이가 있어요. 같이 놀고 싶은데 나한테 안 오네요. “왜 나랑 안 놀아?” 하고 물었더니 고양이가 대답 안 하고 멀뚱멀뚱 쳐다만 봐요. 나는 이유를 듣고 싶은데, 고양이는 애초에 대답해 줄 언어가 없어요.
마찬가지로 뫼르소는 법정의 논리를 인정하지 않으니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죠. 이 소통 실패가 카뮈가 말한 ‘부조리’ 예요. 우주는 우리의 왜? 에 답을 주지 않아요. 밤새 공부했는데 시험에 떨어지고, 열심히 준비한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건강하게 먹고 운동했는데 병에 걸려도 우주는 묵묵부답이죠. 그 답 없는 공백이 바로 부조리입니다.
이에 대해 뫼르소는 계속 생각합니다. 감옥에서 혼자 누워 하늘을 바라보죠. 그러다 깨닫습니다. ‘세상은 내 질문에 답을 주지 않는구나.’
그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러고 나서 지금 자신이 느낄 수 있는 것 - 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 차가운 공기, 귓가를 스치는 바람, 그리고 스스로의 숨소리에 집중합니다.
“내 몸은 갇혀 있어도,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생각할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바로 이 태도를 실존심리학에서는 ‘실존적 수용(Existential Acceptance)’이라 해요. 쉽게 말해,
- 삶에는 정해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 고통과 죽음은 피할 수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여기 있다
- 그렇다면 지금 이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아가야 한다
즉, 괴로움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괴로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거예요.
뫼르소가 사형을 앞두고도 “나는 행복했다”라고 말한 이유는 특별한 일이 생겨서가 아니라, 답이 없는 세상 속에서도 이미 존재하는 나를 인정하고 내 방식으로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우리 모두 부조리를 수용해야 할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카뮈는 부조리에 대응하는 방법 중 하나를 제시했을 뿐이에요.
뫼르소처럼 인정해도 되고, 맞서 싸워도 되고, 외면해도 됩니다. 하지만 먼저 부조리함을 인정해야 이를 대하는 태도를 결정할 수 있죠.
반드시 노력만큼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세상에서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고 싶으신가요?
매주 목요일 고전 속 심리에 대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다음엔 어떤 인물의 마음을 들여다 볼까요? 여러분에게 작은 위로와 통찰을 주는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