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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디짱 Sep 24. 2024

관광지는 못 가지만, 오히려 좋아!

세 돌 아이와 함께하는 제주도여행 2

'아이와 제주도 여행'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정말 많은 관광지가 나온다. 한 번 들어가면 애를 질질 끌고 나와야한다는 뽀로로파크가 있고, 휘황찬란 미디어아트로 꾸민 키즈카페가 있고, 뛰어다니는게 망아지인지 아니면 아이인지 모를만큼 신나한다는 목장들이 있다. 인생샷을 찍으려면 오설록과 까멜리아힐과 스누피가든과 아쿠아플래닛이 있고 체험을 하려면 말타기 체험 atv 체험 감귤따기 체험 카약 체험 각종 체험이 즐비하다. 물론, 우리는 하나도 안 갔다. (ㅋㅋㅋ)


라디오 경품타기에 혈안이 된 엄마가 건네준 봉투에는 미디어아트 관람권, 피아노자동차박물관 입장권, 일출랜드 체험권 등이 있었으나 제주시와 애월 언저리에서 잠시 보내는 우리의 일정에 맞지 않았다. 그나마 엄마의 정성을 외면할 수 없어 찾았던 미디어아트 체험관 <아이바가든>에선 오열이 잇따랐다. 총 7관으로 눈돌아가는 미디어아트가 펼쳐졌는데 두 번째 관으로 옮기자마자 아기는 나가자고 울고불고 떼를 썼다. 오히려 시간을 보낸 것은 옆 세덱 건물 앞에 펼쳐진 말 카페였다. 하필 까페가 문을 닫아 담 너머로 볼 수 밖에 없던 말 네 마리에 아기는 흥분했다. 그럼 근처 농장체험이라도 가볼래? 얼만데? 일인당 만오처넌. 먹이 음료 별도. 미안. 못 가겠다. ㅋㅋㅋㅋㅋ 제안한건 나였지만 남편이 제안했어도 남편과 똑같은 답을 했을것이다. 그냥 여기 말 보고 말자.


아이바가든에서 오열해 사준 인생 첫 춥파춥스 들고 말구경 ㅋㅋ 


그래도 해수욕장은 가보고 싶었다. 나혼자 함덕 델문도에서 멍때리며 바라봤던 해안가의 아이들이 생각나서였다. 부산의 잿빛 바다만 보다가 제주의 옥빛 바다를 보면 어찌나 맘이 일렁이는지. 멀리 들어가도 아이들 허리춤에도 안오는 수심이 맘에 든다. 함덕은 멀어 <곽지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생각보다 거센 파도에 잠시 당황. 공식 해수욕장이 거둬져 2차 당황. 옥빛 아닌 시커머죽죽한 바다색에 3차 당황. 이 풍경은 입수 금지된 광안리와 진배없는데. 어쩌지. 아기는 이번 여름 매주 광안리에 갔다. 이걸 보여주려고 온 게 아닌데. 모래는 뜨겁고 햇살은 더 뜨거워 모래놀이도 할 수 없다. 물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는 아기다.


그렇게 목적없이 해안가를 걷다 만난 <곽지 과물노천탕>. 물이 차가울텐데. 한번 가볼래? 아직 만 세살이 되지 않았으니 여탕에 들어가도 되겠지. 여탕이라고는 해도 알몸인 사람은 없으니 괜찮겠지. 이 한여름에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닷가 옆 민물 수영장에 아기는 또 흥분한다. 엄마 들어가봐. 꺄르르. 엄마 너무 차가워. 꺄르르르. 내가 힘들어 남편과 바톤터치한 남탕에서의 에피소드에 나는 기절초풍했다. 아빠, 쥐돌이가 벌레 먹어. 남편 말로는 팔뚝만한 쥐가 갯강구를 먹고 있었다고. 쥐를 실제로 한 번도 본적없는 아기는 그저 그림책에 나오는 귀여운 쥐돌이로만 느껴졌나봐. 이 쥐돌이보다 귀여운 녀석.


아무도 없어 한 컷 찍어보았다 과물노천탕 진짜 최고!!! 여름 필수 코스에용 


호젓하게 애월카페거리 옆 <애월해안도로>도 걷고싶었다. 효리언니의 발자취를 따라, 애월을 알린 소길리를 알린 그리고 서울로 떠나버린 우리의 효리언니. 노을을 바라보며 걸으면 좋다길래 딱 맞춰 왔는데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 알길이 없었다. 즐비한 카페는 영 내키지 않았고 랜디스 도넛도 광안리에 생겨 가지 않아도 됐다. 걷다가 만난 돌 사이의 게, 과물노천탕 미니버전, 미니 몽돌 해안에서의 시간이 오히려 좋았다. 두번이나 미끄러지면서도 재밌어하던 아이의 웃음으로 노을감상이 대체됐다. 모래에 새긴 진소윤. 우리가족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따 새겨보았다. 남편이 말했다. 둘째 이름으로 딱인데? 그 입 다물라.  


어딜가나 모래놀이는 빠질수 없다긔 ㅋㅋ 
과물노천탕 미니버전에서 진짜진짜 재미나게 놀았음 
이렇게라도 애월산책로 노을을 보는구나 ㅎㅎ 효리언니랑 같은거 봐따!!! 


사실 자유시간도 바랐다. 혼자 걷고싶었다. 내자리 옆 싱글 선배는 철마다 제주도에 걸으러 간다했다. 가다가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라떼 한 잔. 캬. 아침일찍 둘을 두고 나서려다 아기에게 물었다. 엄마 바다 보러 갈껀데 같이 갈래? 응. 진짜 같이 갈래? 응. 마지막으로 물을게, 같이 갈래? 응. 자유시간 바이바이. 남편은 옆에서 굳이 왜? 하지만 오히려 좋아! 이러고 있다.(ㅋㅋㅋ) 제일 가까운 바다인 <알작지해변>으로 렌트카를 몰았다. 파도에 부닥치는 몽돌 소리가 좋다한다. 도착하니 바닷바람이 내 싸다구를 날린다. 리뷰보다 형편없는 바다 모양새에 실망했다. 왜 왔지 내가. 왜 고생을 자처했지.


부산바다랑 다른, 이게 마 제주 아이가!! 
검은모래에 소라껍데기로 모래놀이 ㅋㅋ 자나깨나 모래놀이 
행복 모먼트. 둘이서 여행와도 되겠는데? 아자차! ㅋㅋ 


모래가 검다. 아기야. 광안리 모래는 황토색인데 여기 모래는 검은색이네 신기하지? 자세히 보니 소라 껍데기가 엄청 많다. 조그마한 돌들도 넘 예쁘다. 바다멍이 아니라 아기멍이다. 아기가 노는 모습을 보며 멍때리는데 순간 이게 행복인가. 하고 나에게 물었다. 한 15분이 지났을까. 손에 두개씩 빈 소라껍데기를 쥐고 아기는 말한다. 엄마 똥마려. 16키로 아기를 안고 돌밭을 달린다. 1초만 늦었어도 대참사. 우리 모자를 보듬어준 <제주1호돌짜장 이호테우점> 사장님께 깊은 감사를 올린다. 너무 이른시간이라 영업을 안 하셔서 판매하는 수세미를 사려 했는데 괜찮다고 담에 놀러오라고 하셨다. 누가 나를 쳐다만봐도 맘충이라 말하나 위축되는 세상이다. 정말 감사했다.


우연에 얻어걸린 소소한 행복 모먼트가 가득한 제주였다. 굳이 이럴거면 제주도를 가지 않아도 되는거 아닌가? 싶었지만 아니다. 돌짜장 먹으러 다시 가야한다. 제주, 기다려. 내가 다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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