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집은 노량진과 가까웠다. 남편이 노량진 새벽시장에 가면 킹크랩을 싸게 구할 수 있다 했다. 그런데 다리가 하나 떨어진, 그런데 손질이 전혀 되지 않은. ㅋㅋㅋ 모양이 중요하냐, 맛이 중요하지. 얼만데? 키로당 4만원. 식당에서 키로당 13만원에 먹었는데? 그러니까 가야지. 새벽 3시반에 일어나 경매장으로 향한다. 노란 상자 가득 펼쳐진 킹크랩의 향연. 그 때깔이 영롱하다. 정신을 차리고 구석탱이로 간다. 우리같이 소문듣고 알음알음 온 사람이 많다. 잽싸게 2키로 겟. 아침부터 손가락에 비린내 철철 묻혀가며 쪽쪽 빨아먹는데 문득 내뱉는다. 자기야, 부산 어시장에도 이런거 있겠네. 몰라. 근데 경매 물건들은 진짜 좋더라 때깔이 다르드라. 부산은 더 좋겠다 그쟈. 아니. 부산엔 있어도 못먹는다. 좋은 물건은 다 서울로 간다. 남김없이.
실제로 어느 한 셰프도 말했다. 제주도든 부산이든 일단 잡아서 좋은거는 다 서울서 싹쓸이라고. 호텔이고 업장이고 귀신같이 들고간다고. 지방에서는 그런 좋은 물건은 볼 수가 없다고. 그래서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바다를 접한 부산의 오마카세가 훨씬 흥해야하는거 아닌가. 셰프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원물의 퀄리티는 산지직송이 최고 아닌가. 하지만 오마카세가 생소했던 10년 전에도, 대중화된 지금도 부산은 서울을 따라잡을수가 없다.
이미 서울은 오마카세 풀방이다. 원래 업장도 망하는 판국에 새 업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한 번 먹어볼까? 플렉스로 10만 원, 20만 원 턱턱 내놓는 입문자들이 이제 많이 줄었다. 예약 안되던 인기 업장들도 이제는 예약이 수월한 편이다. 차라리 충성고객에 집중한다. 서울에서 유행하면 부산에도 내려온다. 신생 업장이 정말 많이 생겼다. 그 업장의 셰프들은 대개 서울의 미들급 업장에서 수련을 하고 부산에 가게를 낸다. 충성고객이 생길수가 없다. 스시야를 주기적으로 찾는 사람이라면 서울의 미들급 업장에 만족을 못하고, 그 업장의 스킬을 '배워서' 부산에 자리잡은 셰프에게는 더 만족을 못한다. 한두군데를 제외하면 '이돈씨'가 절로 나온다.
파인다이닝은 더 처참하다. 내가 많이 접하지 않아 말을 할 수 없지만 부산은 거의 전멸이다. 호기롭게 달맞이에서, 마린시티에서, 기장에서 도전장을 내민 셰프들은 사라졌다. 전통있는 파인다이닝이라고 하면 수영강 엘올리브 정도이니 말 다한 셈이다. 이번에 흑백요리사에 나온 셰프들은 일식과 파인다이닝에 집중됐다. 심사위원은 유일한 미슐랭 쓰리스타인 모수의 안성재 셰프다. 지금 마지막 라운드에 올라온 셰프들도 거의 파인다이닝이다. 흑백요리사에서 부산 셰프가 없는 이유일것이다.
서울 첫 미슐랭 발간이 2017년이었다. 부산은 거기서 7년이 더 걸렸다. 투스타는 아예 없고 원스타만 3곳이다. 부산 빕구르망은 MZ스타일 신생식당이 많았다. 오마카세는, 파인다이닝은 왜 부산에서 살아남지 못하나.부산이 외식 불모지인가? 셰프들의 무덤인가? 인터넷에서는 유머로 소비된다. 붓싼에서는 돼지국밥 밀면 낙곱새 무면 다 뭇다 아인교. 흑백요리사에 나온 셰프가 100명인데, 그 100명 중에 1명이라도 '나 부산에서도 이렇게 잘해요' 할 만 한 셰프가 없었나. 작가들이 컨택했던 부산의 셰프들이 모두 거절한 것인가? 아님 컨택조차 되지 않은것인가? 그도 아니면 나왔는데 카메라 컷트에 단 한 장면도 담기지 않은것인가? 다음달 미식을 위해 오랜만에 서울을 찾으려 계획을 세우다 상상해본다. 시즌2에 나올 역량있고 패기있는 부산 셰프의 활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