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택시를 탄다. 회사에서 집까지. 1.6킬로미터다. 부산 택시 기본요금이 4800원인데 2킬로미터가 안되니 매일 4800원만 낸다. 사실 걸어 다니기에도 짧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걸어 다닌다. 둘의 차이는 내 마음가짐이다. 아침엔 아기를 등원시킨 후 홀가분하다. 어쩌다 빨리 걸어가 커피까지 사는 날도 있다. 저녁엔 마치자마자 거의 튕겨나가듯 사무실을 나선다. 내가 1초라도 빨리 집에 가야 아기를 보는 친정엄마도 집에 갈 수 있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지만 내가 안 괜찮다. 기동성을 위해 투자하는 돈. 어떤 날은 택시를 4번 탄 적도 있다. 출근길에 한번, 애가 아프다는 전화에 점심시간 어린이집 뛰어가며 한번, 회사 복귀하며 한번, 그렇게 녹초가 돼 퇴근하며 한번. 그야말로 길에 뿌리는 돈이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택시를 타면 재밌는 일이 많다. 내가 택시를 타는 곳은 지하철역 근처인데, 보통 두어 대의 택시가 서있다. 시내를 뱅뱅 돌며 허탕을 치느니 기름도 아낄 겸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이다. 어떤 날은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의 뒤통수가 익숙했다. 그 전날도 신기해하던 흰 장발의 뒤통수였다. 저, 기사님. 어제도 저 태우지 않으셨나요? 허허 모르겠네요. 집에 거의 도착하자 다시 말을 이어가신다. 와보니 알겠네요. 어제도 왔었네요. 비슷한 시간대에. 내일 또 만날까요? 허허. 이틀 연속 같은 택시를 탈 확률은 얼마나 될까. 신기했다.
타보면 조용한 택시는 잘 없다. 음악이든, 라디오든 뭔가가 흘러나온다. 손님으로 제일 곤혹스러운 건 디스코 뽕짝노래. 그냥 트로트도 아니고 이~히! 기계음이 가미된 뽕짝은 정신이 상그럽다. 타는 시간이 길어봤자 5분 내외인데, 참기가 힘들다. 의외로 클래식 FM을 듣는 기사분이 많이 계신다. 이 쪽이 나랑 맞다. (ㅋㅋㅋ) 저녁시간대의 정치쇼도 많이 들으시는데 이 경우엔 라디오에 첨언을 하는 경우와 조용히 듣는 경우로 나뉜다. 첨언을 하는 기사님도, 참기가 힘들다.
사실 택시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건 냄새다. 지극히 사적이지만 여러 사람이 하루종일 거쳐간 이 공간의 냄새. 혹은 향기. 보통은 냄새다. 기사님이 담배를 피워도 거슬리지 않는 공간이 있고, 담배 쩐내에 나도 모르게 창문을 열어야 하는 공간이 있다. 방향제의 인공적인 냄새가 과한 공간이 있고, 은은한 향기에 나까지 기분 좋은 공간이 있다. 요즘 맡기 힘든 모과 향기는 제일 반가웠다. 어릴 적 아빠의 르망을 탄 느낌이었다. 뒷좌석 대나무 바구니에 모과 3개를 얹어놨던 아빠의 르망.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택시의 본 목적은 신속 정확 적확 운전 아니겠는가. 목적지로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거기다 친절까지. 예전엔 짧은 거리라고 승차거부를 당한 적도 있는데, 요즘은 짧은 거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단 손님이 탔다 하면 오천 원이니. 내가 안전히 내릴 때까지 세심히 살펴주시고 인사도 잊지 않으시는 분이 대부분이다. 여자 택시기사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나의 피곤함을 캐치하고 요즘 젊은 사람들 벌어먹고 사는 게 힘들다며 격려해 주셨다. 오. 생각보다 굉장히 힘이 났다. 나는 아줌마라, 아가씨라 불러주는 택시기사님도 좋다.(ㅋㅋ) 립서비스라 해도 좋다.(ㅋㅋ)
목적지를 말하는 나의 말에 대답도 않고, 도착해도 일언반구가 없고, 머리가 띵할 만큼 난폭운전을 하는 택시기사분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소심한 복수를 한다. 이미 타면서 한 인사는 주워 담을 수 없으니, 내리면서 할 인사를 씹어 삼킨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이 두 마디를 하지 않는다. 머리가 좀 컸다고 돌아오지 않는 호의에 호구처럼 굴지 않는 나의 모습이 웃기다. 하루에 오천 원, 한 달이면 10만 원. 아낄 수도 있는 돈이지만 퇴근길의 평화에 투자하겠다. 그렇게 또 적어보겠다. '나의 택시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