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처럼은 되지 말아야지..
힘든게 질병으로 나타나면 그만둬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전까지는 일이 많고 야근을 해도 피곤할 뿐 퇴근하면 낫는 수준이었는데 어느 날 답답해 가슴을 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었다. 대학원 시절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해 토할 것 같고 숨을 못쉬겠고 안절부절했던 경험이 있어 그냥 내가 긴장했나? 싶었다. 하지만 아무런 이슈도 없는데 이런 증상을 갖는 나를 보고 '아. 병원 가야겠다.' 라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은 '불안장애'였다.
회사에서 직장 동료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이 앉아서 서류작업만 한다고 생각하고 상사들은 당연히 따오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과를 위해서 고군분투를 해야했고 아무도 나와 이 일에 대해 논의할 사람이 없었다. 거기다가 내가 하는 일이 넘어가지 않으면 그 다음 스텝을 준비조차 하지 못하고 어그러질 것이었다. 아무도 나와 공유하지 않고 나눠갖지 않는데 나는 당연히 그 일을 해냈어야만 했다. 이런 압박감이 나를 짖눌러 결국 병까지 얻게 된 것이었다.
이 과정속에서 나는 내가 너무 의존적인 사람인가? 원래 다른 사람들은 이정도의 압박감을 견디면서 회사를 다니는건가? 라는 자기검열을 시작했고 내가 불안정한 사람이어서 더 크게 느끼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이런 자기검열의 시간도 나를 돌아볼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닳았다. 점점 나는 극한으로 몰려갔고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았으면.. 회사에 출근하면서는 사고 나서 출근 못했으면.. 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우리 팀에서의 역할 관련해서 팀장이 나에게 '너는 우리팀 전부의 서브야.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일할 때 요청하는 서류는 바로바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해' 라는 말을 하였다. 나는 내 업무의 전반적인 부분에 내가 메인이라고 생각해서 놓치지않고 처리하기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저런 맥이 빠지는 소리를 듣게된 것이다. 나름 대학원도 나와서 혼자 회사 인증 취득하고 연구과제 PM하면서 주 업무를 하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서브라는 말이 그렇게 기분이 나빳다. 그럼 내가 지금 하는 일의 서브는 누구고 밖에서 하는 일만 일이라고 생각하는건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모든 일에 주인의식이 사라졌다. 이거 뭐 망해도 내가 망하나 회사가 망하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성격 상 손에 닿은 일은 어떻게든 마무리 짓고싶어해 내면에서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하던일인데 잘 마무리해야지 라는 생각과 아무도 신경안쓰는데 왜 나만 여기 매달려서 해야되는거지? 라는 생각이 충돌했던 것이다. 이런 갈등은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나름 나는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고 느껴져 이 분야에서 일하려면 이런 점도 감수해야지 하면서 버텼었는데 '서브'라는 말에 맥이 풀린것이다.
내가 퇴사를 결심하면서 다짐했던 점이 있다. 내가 겪었던 일을 반면교사로 삼고 관리자가 되었을 때는 내가 겪었던 사람들과는 다른 관리자가 되어야 겠다고. 이전에는 모두가 다 열심히 하고 있고 그 중에서 잘 하는 사람이 되고싶어 기를 쓰는데 집중했다면(이건 지금도 가지고 있는 마음이기는 하다.) 이제는 개인별 역량을 파악해서 어떻게 성과를 얻는데 활용할 것인가에 집중하려 한다. 이전에는 결과에 집착했다면 이제 과정에 집착하고싶다. 물론 나의 커리어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결과를 쫓아 가는게 맞는 길일 수 있다. 하지만 앞의 상황과 같이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다 한번 넘어져보니 알게된 점이 있다. 결과에 따른 적절한 보상, 함께 일하고 있다는 팀원간 소속감이 얼마나 큰 힘이되고 시너지가 되는지.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한 줄로 요약하자면 '저사람처럼 되지 말아야지'가 점점 누적되어 사회적인 나를 만드는 것 같다. 진짜.. 그 사람처럼 되진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