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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천에 피었다

악양뚝방길과 생태공원에서

by lee나무

아마도 나는 자연바라기입니다.

비가 연일 내렸어요. 장대비는 아니었기에 덤으로 주어진 휴일을 집안에만 있기에는 아까워 자연으로 나갈 궁리를 했습니다.

"내일 함양 상림에 가볼까?"

나는 함양 상림숲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천년의 숲 상림에서, 비에 젖은 흙길을 맨발로 걸어볼 요량이었습니다. 집에서 차로 두 시간 남짓 달려야 하니 남편이 살짝 성가시게 생각할 수 있겠다 싶었지요. 그래도 가랑비가 날려도 좋은 날, 푸릇푸릇 숲을 상상하면 자꾸 가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만 합니다.


"비가 계속 오네."

남편이 나의 눈치를 보며 운을 띄웁니다.

"함안 악양생태공원에 가볼래?"

"그럴까......"


종일 비 예보가 있는데 가까운 곳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작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생태공원에 대한 기대는 크게 없었지만, 지난해 해 질 녘 찾았던 악양뚝방길, 붉은 양귀비가 지천으로 피었고, 해 떨어지는 낙동강 지류인 남강이 휘돌아 흐르는, 그림 같은 풍경이 떠올랐어요. 아름다웠지요. 정말로 아름다웠어요.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해 질 녘을 담은 한 폭의 수채화였으니까요.


비가 멎기를 기다릴까 했는데 남편이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고 하기에 얼른 따라나섰습니다. 차창 밖으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생태공원에 도착했어요. 도착하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어요. 비가 막 그친 생태공원은 멀리 비구름이 내려앉은 하늘과 초록이 우거진 남강을 배경으로 노란 꽃을 지천으로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자연의 향기가 코끝에 확 들어오면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멀리 뚝방길과 굽이 흐르는 남강
호수에 비친 금계국



생태길을 따라 양옆으로 피어난 꽃들을 바라보면서 걷습니다. 눈을 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쁜 꽃들이, 제각각 보라, 노란, 분홍, 하양 가득가득 싱그럽게 피었습니다. 허락된 시간을 완전히 살며 피워내는 모습입니다. 세상 모든 생명들은 허락된 시간에 자신을 오롯이 드러내며 피워낼 때 절정으로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주변과 조화를 이룰 때 그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까지 행복하게 합니다.


자연을 바라보면, 이렇게 조화로운 자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겸손'을 더욱 생각하게 됩니다.




부처꽃, 부겐베리아, 망초, 금계국이 조화롭게 지천으로 어우러졌습니다.
이 꽃 이름이 '스위트피' 라고 합니다. 작은 꽃망울이 조롱조롱 달렸어요.
보라꽃이 '붉은 토끼풀'입니다.



신발을 벗어 들고 맨발로 걸으며 생태공원을 온몸으로 느껴보았습니다. 사실 어제 아주 사소한 일로 남편과 살짝 서로 기분이 상하는 일이 있었어요. 출발하기 전에는 마음속에 앙금이 남아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 앙금이 사르르 녹아 사려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바라기인 내가 이곳에 오면 무장해제 된다는 것을 남편은 알았을까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보면 행복해하는지 남편은 딱 알고 꽃과 풀이 지천으로 깔린 이곳으로 소풍 가자고 했던 것이지요. 고맙습니다. '너의 수호천사가 누구인지 기억하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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