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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나무 Mar 15. 2024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는 사람

소박한데 가득찬 기쁨을 주신 청소여사님을 생각하며

"교장선생님, 청소해도 될까요?"

"네. 커피 한잔 하셨어요?"

"저는 벌써 마셨어요."

"그럼 같이 할까요?"


지난주 청소여사님이 교장실 청소는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에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화분에 물도 1주일에 한번 주면 좋겠다고 하여 금요일은 청소도 하고 화분에 물도 주기로 했다. 9시가 되니 여사님이 오셨다. 나는 꽃에 물을 주고 청소여사님은 테이블을 닦으며 청소를 시작했다. '시들지 말고 잘 자라라' , '오래오래 피어 있으렴', '이쁘다', '사랑해' 중얼중얼 말을 걸며 물을 주고 있었다.


"꽃이 이쁠 때 사진 찍어 줄게요."


불쑥 청소여사님이 말했다. '꽃이 예쁠 때 사진 찍어야지' 하고 생각지도 못했다.


"아! 그럴까요?"

"이쁠 때 찍어두면 좋지. 저기 앉아 봐요."


나는 쑥스러운 듯 여사님이 정해준 장소에 앉았다. 나의 폰을 들고 요리조리 정성껏 찍으면서 말씀하셨다.


"많이 찍어두면 안 이쁜 것은 지우면 되고, 여기도 앉아 봐요."


나는 시키는 대로 자리를 바꾸어 앉았다. 한두 장 찍으시겠지 했는데 스무 컷도 넘게 찍으셨다.

"옷을 바꿔 입고 오면 또 찍어줄게요" 하신다.


청소여사님이 찍어준 사진들을 보며 내 마음에 기쁨이 잔잔하게 파도치고 있음을 느꼈다.  맑고 깨끗한 기쁨 같은 것 말이다. 사진 속 내 모습에 여사님의 진심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람을 기쁘게 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분이구나 생각했다. 이런 소박한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소박한데 가득 찬 이 기쁨은.






청소여사님은 3급 장애를 가진 분이시다. 용역에서 전환하셔서 우리 학교에 근무하신 지 7년이 되셨다. 어제 교감선생님이 약간 인지적 문제가 있다고 귀띔을 해주셨다. 말씀이 조금 어눌하긴 하지만 나는 조금의 불편함이나 문제점을 느끼지 못한다. 연세가 우리나라 나이로 62세시다. 아들과 둘이 사신다. 내가 "사랑합니다" 하고 아침 맞이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교장선생님이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나는 '아, 여사님은 남다르시구나. 본질을 보시는 분이시구나' 생각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내가 더 많은 에너지를 얻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랑을 전하는 것, 먼저 손 내미는 것, 줌으로써 더 충만해지는 것 말이다.


여사님은 나에게 학교 나무에 대해, 아이들에 대해, 특히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에 대해서도 알려 주신다. 교문 앞 향나무 가지가 삐죽삐죽 자라서 정리하면 좋겠다고 하셔서 함께 나무들을 둘러보았다. 오늘 아침에는 1학년 '유야'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어제 유야가 4층 옥상으로 올라가길래 위험하다고 주의를 주고 담임 선생님께 알려주었다고 했다. 유야는 부모님이 미얀마 분이시다. 지난주 유야 아버지가 학교종이 앱 알림을 엄마로 바꿔달라고 아침맞이 하는 나에게 말을 걸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다음에 또 방과 후에 혼자 있는 유야를 만나면 교장실로 데려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아이들을 우리가 미리 챙기면 좋지요", "우리는 자식을 키웠으니까. 알지." 하셨다.


전에 근무했던 학교의 청소 여사님은 친정 엄마 같은 따뜻한 분이셨다. 얼마나 겸손하시고 부지런하시고 낮은 자세로 학교와 아이들을 배려하시는지 그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고 배움도 많았다. 그분의 온기로 직장 생활의 고단함도 잊을 수 있었다. 학교를 떠나면서 누구보다 청소 여사님과 헤어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진심이 느껴졌던 분이셨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하게도 이곳에서 또 한 분의 따뜻하고 성실하신 청소 여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사람을 소소하게 행복하게 만드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학벌이 좋은 사람도, 지위가 놓은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아니었다.  무엇이 사람을 진정으로 기쁘게 하는지 삶을 통해 체득한 꾸미지 않은 진솔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나눌 줄 알고 주어진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었다. 넉넉하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우리 안 깊숙한 곳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람들이었다.


여사님 덕분에 처음 교장 역할을 시작한 3월 2주 금요일의 추억 사진이 생겼다. 훗날 2024년으로 과거 여행에서 여사님을 만나고 나는 또 할릴없이 아련해질 것이다.


청소여사님과 그분이 찍어준 나의 모습


* 유야의 부모님은 매일 아침 유아를 교문 앞까지 데려다주신다. 어머니 아버지 모두 참 선하게 생기셨다. 오늘 마침  방과 후 현관에서 유야를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한국에 온 지 7년이 되었고 엄마는 8개월 되었다. 아버지는 한국말을 잘하시지만 엄마는 서툴다.  유야가 학교 생활 적응하고 있는지 물었다. 아버지는 유야가 학교 생활을 정말 재미있어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유아를 위해서라도 엄마가 한국말을 같이 배우면 좋겠다는 것과 혹시 어려움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 주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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