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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nzan Jan 27. 2020

고지서 같은 청첩장, 전달하기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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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서로 보인다는 청첩장



그 청첩장에 대한 많은 글들로 네이버, 네이트 등 각종 포털사이트에 메인을 장악했다. 내용은 이러했다. 청첩장 줄 때의 예의,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의 모바일 청첩장 등등 여러 사연들이 많았고, 익히 보고 들으며 알고 있던 내용들이라 더 움츠려 들어있었다.


왜냐. 그 고지서를 내가 줘야 하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건 청첩장을 전하는 시간이었다. 내 결혼 소식이 상대를 불편하게 할까 봐 마음대로 연락할 수도 없었다. 또한, 마치 나의 청첩장이 정말 고지서라도 된 마냥 "그거 줄 거면 이만큼 지불해야 해"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내게 맛있는 밥을 강요해왔다. 그러한 말들과 태도에 예민해지기 시작했고, 이어 스트레스가 쌓이며 분노가 치밀었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나에겐 나를 위한다는 충고도, 흘러가는 장난도 좋게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입장 바꿔 나중에 얼마나 나에게 대접하려고 이렇게 요구하는 걸까.


그렇게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부담스러운 청첩장을 건네기 위해 약속을 잡으려던 자리는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혹은 바빠서 시간이 안될 것 같다는 말들로 나를 무안하게 했다. 당황스러웠다. 그 당혹함에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결혼식에 와달라고 구걸하는 듯한 그런 상황들이 나를 미치게 했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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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에 마음 담기



업체 5곳에서 샘플을 받아서 청첩장 월드컵을 진행했고, 결혼하기 전부터 하고 싶었던 트로닷으로 청첩장 봉투에 하나하나 자리 배치하며 찍었고, 전달하는 사람의 이름 쓰는 것 까지가 청첩장의 마무리였다. 가끔 오빠 친구들에게는 재밌는 문구까지 덤으로 말이다.


이렇다 저렇다 거창한 말로 결혼 소식을 전할 말재주가 없어 청첩장에 그 마음을 정성으로 담자며 진행했던 일이다. "청첩장은 3초 이상 보지 않는다"라는 공식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이만큼 정성을 담아 그대에게 드려요, 그 3초라도 기분이 좋았으면 해요.'라는 작은 마음이었다.


다행히도 받는 이들이 기뻐해 주었고, 특히 "여태껏 받은 청첩장 중에 제일 예뻐요"라는 말을 생각지도 못 한 회사 식구들에게 듣는 순간 아침부터 눈물이 찔끔 흘러나올 만큼 감동했다. 그 마음을 알아줬다는 생각에 고마워서.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상황으로 감동을 받는 순간이 여럿 있었다.


"너 요즘 돈 제일 많이 나갈 때 아니냐, 뭐 필요해 말해봐"
"밥 그냥 내 생일밥으로 해, 괜찮아"
"집에서 먹자"
"됐어 밥은 무슨, 결혼식 끝나면 밥 안 먹을 거야? 다 끝나고 먹자"


이렇게 말했던 사람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감동을 받으며, 살면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생겼다. 그렇다고 나와 함께 밥을 먹었던 사람들이 별로다 이게 아니라 먼저 배려해서 내게 말을 건네준 게 고마웠던 순간이었다.


결혼 준비하면서 사람 관계 정리된다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막상 내 일로 닥쳐보니 사람을 끊어내고 정리해야 하는 상황들이 나만 아쉬운 것 같아 서운했다. 나도 인간관계에 있어서 매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만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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