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제 같이 살아봐"
마치 에어비앤비의 "살아보는 거야"라는 메인타이틀이 생각나는 문구였다. 부모님들의 결혼 승낙을 받은 우리는 기뻐 날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어쩔 줄 몰라했다. 다가 올 날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채 새벽 내도록 카톡을 주고받으며 "어떡해!!", "우리 진짜 결혼해?"를 연발했다.
6년 차에 접어든 남자친구와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그와의 모든 낮과 밤을 함께 했다. 첫 키스, 말다툼, 개이고 비 오고 눈 온 날들, 모든 웃음과 눈물, 좋아했던 음악 - 둘이서 함께한 모든 시간을 공유하면서 서로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갔던 수많은 시간들이 아른아른거렸다.
그날 밤,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행복했다.
스파크 튀기며 불 같았던 연애를 뒤로하고 안정적인 연애로 접어들며 서로에 대한 애틋함으로 자연스레 결혼을 생각했던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의 안식처이자 빛과 바람이었다. 함께 할 때 가장 나다워지는 시간들이었다. 괜한 기대로 실망하거나 섭섭하거나 혹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아쉬워하지 않으려 싸우는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됐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있는 나의 모습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이상적이고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긴 연애의 시작, 둘이서 떠나는 여행 등 포장하면 포장할 수 있는 말들이 무수히 많지만 사실 결혼은 냉혹한 현실이기에 마음 단단히 먹자며 예산을 세우기 시작했다. 습관처럼 우리는 메모 공유와 엑셀로 채워나가기 시작했고, TO DO LIST를 짜며 각자가 할 일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큰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준비기간이 길었으면 했고, 따뜻한 집에서 적어도 3개월은 함께 살다가 결혼을 하고 싶단 말에 흔쾌히 승낙했던 남자친구는 결혼 준비기간을 무려 1년을 줬다(물론 내가 길게 달라고 했지만 그렇게 길게 줄 필요는 없었어)
웨딩박람회 2회, 식장 홀 4회의 구경 끝으로 어느 정도 예산이 잡혔고, 가계약을 걸어둔 곳이 생기기 시작했다. 약소하게 생각했던 결혼식이었는데 간사하게도 생에 1번 있을 결혼식이라며 좀 더 예쁜 곳에서 하고 싶은 마음들이 자라나기 시작했고 결국 생각했던 예산보다 조금 더 올려 예식장을 예약했다.
인생은 불행과 행복이 동시에 온다고 했던가. 설렘으로 만끽해도 모자랄 결혼 준비기간에 큰 일이라면 큰일이 내게 일어났다. 남자친구에게 너무 미안했고 면목 없는 상황에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로 좌절하거나 눈물 콧물을 짜고 있을 때 남자친구는 말했다.
"괜찮아,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상황에 놓일 거야. 사랑만 변치 않으면 돼"
나는 내 남은 인생 더 재밌으려고 지금의 남자친구와 결혼을 결심했는데 그는 여전히 내가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내 멘탈을 부여잡으며 나를 지킨다. 생각해 보면 연애하는 내내 한결같이 끊임없는 사랑을 보여준 사람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직접 눈으로 보여주었다. 넘치는 사랑에 펑펑 울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여럿 있다.
이를테면 회사에서 안 좋은 일로 눈물을 쏟은 날엔 꽃다발을 들고 나를 기다렸다. 하루의 끝은 기분 좋게 끝내자며 맛집으로 데려가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한참 들어주었다. 끝까지 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그는 단 한 번도 내 편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아 이 사람이라면 이 더러운 세상 함께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겠다.
나를 시들지 않는 꽃으로 대하는 사랑과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도 나를 달래는 유머러스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지난날들이 우리의 시간을 더 끈끈하게 했다. 결혼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것이 사실 더 어려웠다.
그렇게 우리는 5개월 차에 접어든 신혼이다.
결혼식은 앞으로 4개월 뒤,
사실 여전히 여행하는 느낌이다.
그와 여행 다니는 내내 암묵적인 룰들이 생겼는데 그 룰을 매일매일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아직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