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출근길 걸어서 3km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4편 Guangzhou-09)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Guangzhou



9. 광저우 출근길 걸어서 3km


베이징에서도 그랬고 또 이후 주재하게 된 타이베이에서도 그랬지만 광저우에서도 역시 걸어서 출근했다. 그렇게 걸어 출근하면 그다지 길지 않았던 주재 기간이었지만 근무하던 생소한 지역들의 좀 더 많은 것들을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느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공간을 이동해도 차 타고 갈 때는 놓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걸어가면서는 분명히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베이징 근무 시에는 집에서 법인까지 약 5km 정도 거리를 걸어 다녔지만, 광저우 호텔에서 법인까지는 그보다는 짧은 약 3Km 정도 거리였다. 그런데 거리의 길고 짧음을 떠나서 광저우에서의 출근길 걷는 느낌은 베이징에서보다는 훨씬 더 좋았다.


무엇보다 습도 높은 아열대성 기후라 베이징과 달리 먼지가 거의 없었고, 거리 주변이나 인근 주택에는 더위와 습기 속에서 왕성하게 자라는 짙은 녹색의 꽤 무성한 잎을 가진 나무들이 즐비해 마치 숲이 우거진 공원 길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먼지와 스모그로 뒤덮인 사막의 위를 횡단하는 것만 같았던 베이징에서의 느낌과는 확연하게 달랐는데 베이징에서는 아침에 1시간 정도 걸어서 사무실에 도착하면 까만 구두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먼지가 많이 끼어있어 사무실 들어가기 전 우선 화장실에 가서 구두를 물로 닦아내야 했다. 하지만 광저우에서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물론 베이징에서와 마찬가지로 광저우에서도 퇴근 후에는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술자리가 많아 술 취한 채 걸어 귀가하기도 좀 어려웠지만 치안이 역시 걱정되기도 했었기 때문이었다. 광저우의 치안은 베이징보다 훨씬 안 좋았다.




베이징에 내 차가 있었지만 항공기로 이동해도 3시간 정도 걸리는 광저우까지 그 차를 운전해서 가져올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광저우 법인에 근무하던 주재원의 운전기사를 통해 그 기사의 친척 차를 6개월간 임대했다. 운전 역시 그 기사가 해주는 조건이었던 바 결국 차와 운전기사를 동시에 임대한 셈이었다. 그 운전기사는 진(陳) 씨 성을 가진 중국 객가인이었는데 성격이 너무좋아서 나중에는 친구처럼 가깝게 지냈다.

그렇게 임시변통한 차는 다른 주재원들의 차처럼 정식으로 구입한 것이 아니어서 비싼 고급차도 아니었고 그저 낡고 허름한 중고차였다. 하지만, 차가 없이는 광저우법인에서의 출장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웠던 실정에서 어정쩡한 6개월이라는 기간 그나마 그렇게라도 차와 기사를 동시에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 꽤 다행이었다.


한편 당시 발생했던 차량 임대 비용, 기사 비용 등은 당연히 모두 회사 비용으로 정산해서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사에서도 아니고, 해외 부임지에서 또 다른 해외 지역으로 6개월이라는 장기간 출장을 가는 것에 관한 비용 규정도 다소 애매한 상황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규정 확인을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시간 뺏기는 것도 귀찮아서 그저 내 비용으로 모두 처리했다. 가족이 없는 독신남이었기에만 가능했던 용감함, 무모함, 미련함 등이었던 같다.




매일 아침 걸어가는 출근길은 언제나 동일했는데, 호텔에서 나와서 좀 걷다 보면 제일 먼저 주장(珠江)의 지류(支流) 작은 하천을 만나게 된다. 그 하천 주변 가로수나 하천 위의 다리는 나름 운치 있고 보기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천 근처에 다가가면 우선 코로 강한 뭔가를 느끼게 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시궁창 썩는 것 같은 그 하천물의 냄새였다.


그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천물을 내려다보면 물이 아니라 무슨 화공약품 덩어리 같은 것들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온갖 생활 쓰레기는 말할 것도 없고, 알 수 없는 거품으로 하천 주변 여기저기가 하얗게 뒤덮여 있었던 것이다.


매일 아침 목격했던 그토록 심하게 오염된 물이 1년 내내 그 상태 그대로 끊임없이 바다로 흘러갔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광저우를 비롯해서, 공장 단지들이 몰려 있는 주하이, 선전, 둥관 등 중국 남부 지역 바닷물의 오염이 얼마나 심각할지 너무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나중에 인접 지역인 홍콩에 주재 근무할 때 들은 얘기인데, 그런 심각한 오염 때문에 홍콩 사람들은 인근 중국의 남부 바다에서 잡히는 해산물들은 먹지 않고, 원양이나 해외에서 수입한 해산물을 주로 먹는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거리뷰를 통해 최근 그 강의 모습을 다시 보니 일단 외관으로만 볼 때는 2005~6년 당시보다는 수질이 꽤 많이 좋아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너무도 오염된 물이 흐르던 주강 지류 최근 거리뷰)

https://j.map.baidu.com/1c/j6m




다리를 건너 좀 더 직진하면, 이번에는 좌측에 '광저우 군구 체육관'이라는 군인 전용의 체육시설이 나타났다. 광저우에 주둔하는 군인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시설이었는데, 군인 대상 시설이니 당연히 그곳을 출입하는 중국 군인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광저우의 군인 체육관 거리뷰 모습)

https://j.map.baidu.com/c7/QK3


광저우는 과거 중국이 중국 전체를 7대 군구(軍區) 체제로 나누어 운영하던 시절 7대 군구 중의 하나인 광저우 군구가 있었던 곳이다. 2016년 5대 전구(戰區) 체제로 개편한 이후도 남부 전구 사령부는 역시 광저우에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군 편제가 바뀌어도 그만큼 광저우에는 오래전부터 많은 군인들이 상주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개혁개방 정책 도입 이후의 중국은 이제 서구 자본주의 국가와 차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단, 그럼에도 또한 변함없는 사실은 정치적으로 중국은 여전히 공산당 1당 독재 체제가 유지되는 공산국가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1당 독재 체제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써 군대 위상도 상당히 높다. 중국군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공산당 군사위원회 주석'직 확보가 역대 중국 지도자의 권력 장악 정도를 파악하는 척도로 사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군대 위상과 특권이 그렇게 크다 보니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 군 장성이 무장한 군인들을 시내 중심가로 이끌고 와 자신을 괴롭힌 깡패들을 사적으로 처벌했다든지, 교통경찰이 감히 군인 차량을 세웠다고 군인이 차에서 내려 경찰 따귀를 때리는 경우도 그 시절에는 있었을 정도였다.


아침 출근길 이 체육관 앞 거리에서 마주치던 골프채 같은 다양한 운동 기구를 중국군 간부들 모습 역시도 당시의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어울리게 여유 있고 풍요로워 보였다.


(중국 군대의 특권 관련 기사)

1. 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rticle/2015112915261

2.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003603


한편, 매일 아침 그 군인용 시설을 지나치면서 군복을 입고 그곳을 출입하는 중국 군인들을 마주칠 때마다 바로 이들이 6.25 전쟁 당시에 수십만이나 한반도에 출병하여 한국군을 사살하고 민간인을 약탈했으며, 당시 군인이셨던 외삼촌을 죽였던 바로 그 중공군(中共軍)이라는 생각도 어쩔 수 없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런 그들과 이제는 너무 태연하게 나란히 함께 거리를 걷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잠시 혼란스럽기도 했던 기억도 있다.



군인 체육관을 지나면, 빠오안치엔지에(保安前街) 그리고 이어서 얜둔루(烟墩路)라는 이름의 인도가 좁은 주택가의 2차선 도로길로 접어든다. 그런데 곳에는 특이하지만 그렇게 큰 주택은 아니어도 2층에 발코니까지 있는 오래된 서구식 스타일 주택이 곳곳에 들어서 있는 거리가 있었다.


아마 과거 한때 유럽인들이 거주했거나 아니면 중국인들이 유럽인들 주택을 모방해서 건축한 주택들 같았는데, 울창한 가로수 사이로 보이는 그 주택들이 꽤 아름답고 운치 있어 그 집들을 구경하면서 그 길을 걸을 때는 마치 작고 오래된 유럽의 소도시 거리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빠오안치엔지에 거리의 서구풍 주택)

https://j.map.baidu.com/29/qlm


사실, 청(淸) 나라 말기 서구 열강의 무력에 밀려서 중국이 거의 모든 대도시에 서구 국가들의 특별한 권한을 인정하는 조계(租界)라는 준치외법권 지역의 설치가 허용될 수밖에 없었던 시기에, 광저우에도 샤미엔따오(沙面島)라는 곳에 영국과 프랑스의 조계가 1860년대부터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조계가 2차 대전 종전까지 80여 년 간이라는 긴 기간 유지되었던 바, 그런 역사적 사실을 감안하면 광저우 시내에 유럽인들이 거주했던 주택이 있거나, 또는 그 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은 주택들이 존재하는 것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는 것 같다.


(샤미엔따오의 유럽풍 건물들)

http://www.guangzhoutravelguide.com/guangzhou_travel/shamian-island.html


이 거리는 또 주택가 밀집 지역이라서 그런지 걷다 보면 길 좌우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중학교 등이 여러 개가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는데, 불과 500여 미터도 안 되는 그런 짧은 거리에, 유치원이 2개, 초등학교가 1개, 중학교가 2개 등 모두 5개의 학교가 몰려 있었다.


한편 당시 2005년경에는 중국 인당 GDP가 한국과 비교해 크게 낮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 거리에 있었던 학교들의 외관과 시설은 한국의 학교들보다도 훨씬 더 좋아 보여 의아하게 느꼈던 기억도 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서구식 아름다운 주택들이 많았던 그 동네가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그랬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얜둔루의 제7 중학, 广州市第七中学)

https://j.map.baidu.com/62/3um

중국 전체 평균 인당 GDP는 2005년 당시는 물론 최근에도 여전히 한국 대비 크게 낮다. 하지만 중국 대도시의 GDP만 따로 분리해서 보면 2017년 기준으로도 선전 GDP가 이미 미화 3만 불을 넘는 등 광저우, 상하이, 베이징 등 중국 주요 대도시의 인당 GDP는 이미 2만 불이 훌쩍 넘거나 2만 불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한국 평균 GDP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런 실정에서 그 동네가 광저우에서도 특히 부자들이 몰려 사는 동네였다면, 당연히 그곳의 인당 GDP는 당시 한국의 평균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고, 그래서 그곳의 학교들도 그 수준에 맞게 고급 시설들로 갖추어져 운영되었던 것 같다.



그 주택가 골목길을 걸을 때에는, 거의 매일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걸어가던 10살쯤 돼 보이는 초등학교 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그 학생은 어린아이답지 않게 항상 웃지도 않는 근엄하고도 무표정한 모습으로, 정면만을 바라보고 또박또박 혼자서 그 길을 걷곤 했는데 단 한 번도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매일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걷다 보니 마치 친구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 어쩌다 출근길에 혹 그 학생이 안 보이는 날이면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했다.

사실 그 학생뿐 아니다. 매일 반복적으로 만나게 되다 보니 친근감이 생겨서 그런지, 그 길에 있는 학교의 유치원생들, 초등학생들, 중학생들을 볼 때마다 비록 말이 크게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또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공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꽤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그들 역시 내가 한국에서 어린 시절 살았던 삶과 결국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 또한 많이 들었다.


늦잠 자고 일어나 서둘러 등교하고, 때로는 친구와 싸우고, 성적을 걱정하고, 이성 친구를 찾고, 미래를 꿈꾸는 등 그들 역시 내가 고민하고, 걱정하고, 꿈꾸던 것들과 별 다를 바가 없는 것들을 겪어가며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런 과정들과 성장통을 거쳐가면서 나와 같은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명의 성인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인간의 삶은 어디에 있든지, 인종 국적과 관계없이 결국은 모두 다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베이징에서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교복 입은 학생들도 광저우에서의 출근길에는 볼 수 있었다. 베이징에 체류하는 기간 출근길에 마주친 초중고 학생들은 모두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유치원생들도 그랬다. 빈부차가 느껴지거나 비싼 옷의 과시를 통해 조장될 수 있는 위화감 예방을 위한 중국의 교육 정책이라 했다.


광저우에서도 역시 출근길에 마주치는 거의 모든 학생들은 그런 정책에 의해서 체육복을 입고 다녔다. 그런데 많지는 않지만 간혹 홍콩이나 타이완의 학생들처럼 세련된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을 광저우에서는 간혹 마주칠 수 있었다.


학생이 교복 입고 다니는 것이 뭐 그리 특이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에 온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하던 장면이었던 만큼, 교복 입은 학생을 광저우에서 처음 보니 중국이 아닌 것 같고 또 꽤 멋져 보였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중국에도 요즘에는 점차 체육복 대신에 교복을 맞추어 입는 학교가 늘어가는 추세라 한다.


(중국 교복 역사)

https://m.blog.naver.com/chinasisa/220789756082




그 조용한 주택가 골목길을 벗어나면, 이제 잎이 무성한 꽤 큰 나무들로 둘러 쌓인 광장 같은 공터가 눈앞에 나타나고, 이곳을 지나면 상점들이 많이 몰려 있는 큰 거리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 거리에서 5분 정도만 더 걸어가면 6차선의 번화하고 복잡한 중산 2로(中山2路)라는 대로가 나온다.


바로 대로 앞 전신광장(電信廣場)이라는 68층짜리 고층 건물이 있었고, 정확한 층수는 기억이 안 나지만 상층부에 당시 내가 근무하던 광저우 법인 사무실이 있었다.


(큰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던 공터)

https://j.map.baidu.com/5f/mAm

(광저우 법인이 있던 '전신광장' 건물)

https://j.map.baidu.com/f4/26m




매일 아침, 호텔에서 사무실까지 이런 출근길을 반년 여간 똑 같이 걸어서 다녔다. 너무나 무더운 한여름에도,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글을 쓰기 위해 15년 만에 기억을 더듬어 중국 Baidu 지도 거리뷰를 열어 놓고서 그 출근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또다시 훑어보니 오랜 세월이 흘러 일부 건물들이 바뀌고, 풍광도 바뀐 부분도 좀 있었지만, 그럼에도 과거의 모습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길이나 주택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과거 걸어 다녔던 그 길을 거리뷰로나마 또 보게 니 마치 2005~6년 그립고도 아련한 시절의 공간과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은 행복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제는 기억에만 남아 있는 그 무더운 광저우의 출근길에서 마주쳤던 사람들이 그립다. 전형적인 광동인 모습의 동네 어르신들, 등교하던 아이들, 유치원 문 열리기를 기다리며 교문 앞에서 아이 데리고 서성이던 출근길의 주부들, 거리 상점의 상인들, 편의점 여직원, 출근하는 직장인들 그리고 거리의 아름다운 여인들....


그들과 말 한마디 나누어 본 적 없고, 그들 중에 누구도 결코 날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들 모두가 그립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내가 그곳을 떠난 것처럼 어쩌면 그들 중 많은 사람들도 이미 그곳을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시절과 그 공간이 그립다.


그 당시 나와 함께 나란히 같은 방향으로 걷던 초등학생은 이제는 20대 중반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거리에서 마주친 중년의 아저씨들은 노년을 앞두고 있는 나이로 또 노년의 동네 어르신들은 어쩌면 이제 이 세상이 아니라 다른 세상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만큼 늙었을 것이다.


너무도 짧고 유한한 삶을 사는 나와 그들은 그렇게 빠르게 변해가거나 사라져 갈 수밖에 없는 반면, 거리뷰에 보이는 그 거리와, 그 거리에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그리고 너무도 짙은 숲과 서늘한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들은 모두가 여전히 변함없이 그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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