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둥성(廣東省)은 상주인구가 약 1억 1천여 명으로 중국의 성(省)급 행정구역에서는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 그런 광둥성의 성도 광저우에 있던 법인에는 당연히 광둥성 출신 직원들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인접 지역인 인구 7천여만의 후난성(湖南省)이나 인구 4천여만의 푸젠성(福建省) 출신 직원들도 일부 있었고, 기타 지역 심지어 중국 최북방 동북 3성(東北 3省)에서 온 직원들도 있었다.
결국 광둥인이 주된 구성원이었지만, 나름대로는꽤 다양한 지역 출신 인력이 광저우 법인에는 근무하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 동포 조선족도 7~8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었는데 당시 광저우 법인의 사무직 전체 인력이 약 300명 정도였으므로 조선족 직원 비중은 2% 이상이나 되었던 셈이니 중국 전체 인구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중 0.1%와 비교해 보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조선족의 고향인 동북 지역에서 남부의 광저우까지는 항공 시간만으로도 약 4시간 정도 소요되는 먼 지역이다. 그런데 그렇게 적지 않은 조선족들이 광저우 법인에 근무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좀 특이한 현상이었는데, 개혁개방 정책이 최초로 적용되어 외국인이 투자한 기업체와 공장들이 여타 지역보다 먼저 들어선 곳이 광둥성이었던 만큼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많아 그런 일자리를 찾아 광저우까지 오게 되었던 것 같다.
조선족 경우는 물론 업무 능력을 기준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역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도 채용되거나 중용되기도 했다.
당시 중국 주재원 수요가 급증하던 시절이라 주재원 중에는 나처럼 중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인력들도꽤 많이 있었는데 그런 주재원들 때문에도 중국어와한국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조선족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아울러 당시 본사에서 보내오는 문서나 또 그 문서에 의거 답신을 해야 하는 문서 역시 모두 한국어로 작성돼야 했던 점도 한국어 이해 및 문서 작성이 가능한 조선족 직원이 필요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재무, 인사 등 본사 스탭부서에서 오는 공문이 중문으로 작성되어 오는 것은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영어로 작성돼 오는 경우조차도 전혀 없었던 시절이었다.
다만 조선족도 광둥성 이외 타 지역 출신 중국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광둥 지역의 언어인 광둥어는 구사할 수가없는 단점이 있었는데, 2005년 당시 극소수 노년층을 제외하면 광저우에 거주하고 있는 대다수광둥인들은 이미 표준어인 보통화를 구사하는데 문제가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그 점은 그다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조선족 포함한 여타 지역 출신 사람들은 좀 오래 광둥성에 거주를하게 되면광둥어를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는 있게 된다는데, 그럼에도 광둥어로 제대로 말하는 경우는 좀처럼 보지 못했다. 즉, 거주 기간이 길어지면서 광둥어 '듣기'는 좀 가능해지지만 '말하기'는여전히 쉽게 안된다는 것인데 그만큼 광둥어가 표준어와는 많이 다르다는 얘기가되는 것 같다.
동북 지역에서도 러시아 인접한 헤이룽장 성(黑龍江省)이 광저우에서는 가장 먼 지역인데, 그 헤이룽장 성에서 와서 우리 법인에 근무하는 직원도 있었다.
중국에도 각 지역별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데, 동북 지역 사람에 대해서는 술도 꽤 잘 마시고 성격도 호쾌하며 시원시원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실제로 내가 경험한 바로도 동북 사람들은 체격이 크고 술도 잘 마시는 편이었다.
헤이룽장성에서 온 이 직원도 꽤 호탕한 인상에 신장 역시 190cm가 넘을 정도로 컸다. 그런데 그러한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실제로는 이 직원은 매우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게다가 술도 술 잘 못 마시기로 유명한 광둥성 토박이들보다도 더 못 마셨다. 그러다 보니 동료들로부터는 실제 고향이 동북이 아니라 광둥 아니냐는 농담까지 듣기도 했었다.
요즘은 좀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거래선과 술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시면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많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 직원처럼 술을 잘 마시지못하는 경우에는 실제로 비즈니스 하는데 어려움이꽤 있었다.
관(關)씨 성을 가진 광저우 토박이 직원도 있었다. 광둥 성 사람은 동북 사람과는 정반대로 중국에서도 유독 키가 작은 것으로 유명한데, 이 직원 역시 키가 160cm 정도로 작았고 체격도 왜소했다. 인상 또한 전형적인 광둥인 같이 보이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자신의 성이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關羽)와 같은 관씨라는 이유로, 농담 반 진담 반 자신은 아마 관우의 후손일 것이라고 자랑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관우는 중국 중북부에 있는 산시성(山西省)이 고향이고, 기골 또한 장대한 장수로 너무도 왜소했던 그 동료의 외모와 풍채로 볼 때 그가 관우의 후손일 가능성은 정말 낮아 보였다.
업무도 꽤 꼼꼼하게 잘 챙기는 데다가 성격도 좋아서 가끔 저녁에 술도 같이 한잔하면서 친구처럼 가깝게 지냈던그런동료였다.
자신의 부서장인 한국인 주재원으로부터 정말로 '테러'에 가까운 욕을 먹는 것이 하루의 정해진 일과처럼 되어 있는 직원도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부서장 지적에 허둥대며 아무 말이나 둘러대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어 부서장의 심기를 번번이 건드리곤 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같은 직장인 그것도 외국인에게 그렇게 수시로 심하게 고성으로 너무도 빈번하게 화를 내고 성질부리는 한국인 주재원의 모습은 사실 더욱 보기가 좋지 않았다.
어쨌든 이 직원은 한국인 상사로부터 그토록 심한 모욕들을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받으면서도 다른 직장을 구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출퇴근할 때는 항상 밝은 표정이었다. 부서장 또한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불 같이 화를 내면서도 그 직원을 해고할 생각은 또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두 사람 모두 참 특이하고 또 대단한 성격의 사람이라는 생각도 꽤 많이 들었다.
하지만 더 특이했던 것은 그렇게 심한 고성과 욕이 뒤섞인 질책이 퍼부어졌음에도 그 순간만 지나고 나면 신경질 내던 주재원이나 참담하게 당하던 그 직원이나 심지어 바로 옆에 있던 동료 직원들까지도 모두 하나 같이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너무나도 태연한 모습으로 서로 웃어가면서 대화를 하곤 했었다.
욕설이 난무하다 갑자기 순간적으로 바뀌어 버리는 그러한 분위기가 처음에는 정말 황당하고 이상하게만 느껴졌는데, 그런 모습을 몇 달간 반복해서 보다 보니 그러한 분위기에 적응이 되었는지 나중에는 나 역시도 그러한 급작스런 상황 변화를 그들과 똑같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한 내 모습을 보고 스스로 좀 놀라기도 했었다.
나중에는 현지인들이 임원으로 채용되거나 진급하게 되는 경우도 많아졌지만, 당시에는 현지인 직책 중에서는 임원 바로 아래 '총감(總監)'이라고 불리는 직책이 최고 직급의 직책이었다. 그 총감직을 담당하던 40세 중후반의 광저우 토박이 출신 직원도 있었다.
그는 광저우에서 태어나 광저우에서만 살았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광저우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 친구가 있다고 했고, 또 그것을 항상 자랑처럼 말하곤 했었다. 비즈니스상 종종 접촉해야 했던 관공서뿐 아니라, 경찰, 술집, 심지어 광저우 시내 조폭들과도 친분이 있다고 했다.
"중국에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절대 없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 통상적으로는 처리가 안될 것 같은 일들이 이 총감을 통해 해결된 경우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인맥, 편법을 통해서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정상적 방식을 통해업무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에는 그는 솔직히 다소 거리가 있는 직원이었던 것 같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언어와 문화를 잊지 않고 대대로 유지해 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객가인(客家人) 직원도 있었다. 주재원 차량을 운전하는 진(陳)씨 성을 가진 운전기사였다.
매우 성실하고 총명한 것으로 알려진 객가인 중에는 중국의 국부 쑨원(孫文),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 싱가포르 초대 수상 리콴유(李光耀), 태국의 전 총리 탁신(Thaksin Shinawatra), 홍콩 부호 리자청(李嘉誠)처럼 정치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그들은 주로 광둥, 푸젠 등 중국 남부 지역에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대만에도 전체 인구의 15%~20%가 객가인이라고 할 만큼 객가인이 많았다. 대만의 전 총통인 리덩휘이(李登輝)가 객가인이었고, 현재 총통 차이잉원(蔡英文)도 대만 원주민과 객가인의 혼혈이라고 한다. 객가인이 그렇게 많다 보니 나중에 대만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객가인을 너무도 자주 봤지만 중국 본토에서 근무할 당시는광저우에서 만난 이 운전기사가 내가 만나본 최초의 객가인이었다.
그런데 이 운전기사도 객가인의 혈통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매우 성실했고 여타 중국인 직원들과는 좀 다른 것 같았다. 내가 광저우 근무하는 6개월간 그가 내 차의 운전기사로도 일했는데, 그러다 보니 나와는 함께했던 시간도 많아 같이 식사도 하러 다니고 술도 마시며 매우 가깝게 지냈다. 내가 광저우를 떠난 뒤에도 꽤 오랜 기간 SNS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곤 했었는데 안타깝지만 이제는 연락이 끊어졌다.
사진) 객가인 직원(모자이크 한 사람)과 광저우 시내 한국 식당에서 함께 식사할 때 찍은 사진(2010. 1월)
광둥성 바로 위에 인접해 있는 후난성 출신으로 중국어로는 치엔타이(前台)라 부르는 법인 안내데스크에서 근무하는 여직원도 있었다. 법인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그 앞에 위치해 있는 안내 데스크에서 근무했는데, 우편물들을 접수하거나 손님이 오면 안내하는 역할을 하곤 했었다.
후난성과 광둥성은 해발 1000여 미터의 산들로 이루어진 난링(南嶺)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그런지, 두 지역 간에는 언어가 크게 다른 것처럼 사람들의 외모나 풍습 역시 눈에 띄게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여인들의 미모에서 광둥성 여인보다는 후난성 여인이 빼어난 경우가 많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중국 남부의 최대 도시인 광저우의 술집에는 후난성의 농촌에서 광저우로 돈을 벌러 온 여인들이 많다고 했다.
법인 안내 데스크에 근무하던 후난성 출신의여직원도 매우 빼어난 외모를 갖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주의 풍조가 만연하던 중국에서 유흥가 유혹을 뿌리치고, 수입은 훨씬 적었겠지만 다행히 그래도 우리 법인 안내데스크에서 근무하는 길을 택했던 것 같다.
마오쩌둥(毛澤東)과 같은 마오(毛)씨 성을 가진 여직원도 있었다. 키가 꽤 작아서 전형적인 광둥 여인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고향을 알고 보니 광둥 성과는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중국 중북부의 산시 성(陝西省) 출신이었다. 당시에 그녀는 30대 중반이었는데, 결혼한 지 이미 10여 년이 되었음에도 아직 애가 없어 그 때문에 맘고생이 많다는 하소연을 종종 하기도 했었다.
내 사촌 조카 부부도 그랬지만, 요즘에는 아이를 낳지 않는 조건으로 결혼하는 부부도 꽤 된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부부는 아기를 갖고 싶어 하고 또 그것을 위해서 노력들을 하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아이 소식이 없으면 초조해하고 좌절을 하게 되는 것은 한국에서나 중국에서나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공통적인 현상인 것 같다.
그녀에게 가끔 "너는 같은 성을 가진 마오쩌둥과는혹 친척 관계냐"라고 지금 생각하면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질문을 농담조로 하기도 했었는데, 황당한 그런 농담에도 웃긴다는 듯 쳐다보기만 하고 그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중국어를 잘 못하던 내가 그녀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나를 빤히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천천히 또박또박 몇 번씩이라도 박복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던 모습도 기억난다. 너무나도 선한 모습의 그녀가 이제는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한 아이 엄마가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로 중국에는한글로 표기하면 그녀의 고향 '산시성'과 똑 같이 표기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산시성'이 있다. 바로 '山西省(Shānxī)'이다. 그녀의 고향 '陝西省(Shǎnxī)'과 발음으로는 표기법이 동일해 구분이 안되지만 중국어로는성조가 달라 구분이 된다. 즉 그 발음은 같아도 '아(a)' 발음 성조가 1성(ā)과 3성(ǎ)으로 서로 다른 것이다.
우수 인력 채용 일환으로써 꽤 높은 급여를 주는 조건으로 채용했던 상하이(上海) 출신 총감(總監)급 직원도 있었다. 고액의 급여를 주고서까지 나름 큰 기대를 하고서 채용했던 인력이었는데, 채용하자마자 한 달도 안돼 너무 큰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 있었다.
중국 사업 전체를 관장하는 중국본사 사장님께서 광저우를 방문하셨을 때 자신이 담당하는 제품들에 대한 사업 전략을 사장님께 보고하는 자리였는데, 발표하러 나와 소신을 갖고 제대로 발표하기는커녕 말을 더듬고 얼굴도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까지 빨개져서 보는 사람들조차도 발표 내용보다는 불안하고 불편한 그의 모습에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그런 상황이 되어버렸던 것이었다.
결국 발표는 하는 둥 마는 둥 마쳤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거래선들을 만나 설득을 하고 영업을 할 수 있을지 실망이 컸다. 면접 당시와 이후에 알게 된 실제 모습이 다른 경우가 사실 적지는 않았지만 그의 경우는 그 편차가 너무도 컸던 것 같다.
어쨌든 그런 일에도 불구하고 당시 광저우 법인장은 당장에 해고하지는 말고 좀 더 지켜보자 했는데, 1년여 뒤 광저우 법인에 다시 출장 갔을 때 보니 그는 이미 떠난 뒤였다. 아마 그 사건 이후 오래 남아 있지는 못하고 Probation 기간을 통과하지 못한 채 퇴직했던 것 같다.
중국의 최고 명문 대학인 칭화대(清华大)를 졸업한 직원도 있었다. 법인의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던 직원이었는데, 역시 칭화대를 졸업한 수재라 그런지 참신한 아이디어도 많았고 뭔가 확실히 좀 달랐다.
하지만 명석한 두뇌를 가진 점은 분명 인정되지만, 업무에 있어 묵묵하고 성실하게 임하는 바에는 그 명석한 두뇌만큼 뛰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그가 내가 광저우에서 만났던 유일한 칭화대 출신이었다.
한국처럼 좁은 면적의 국가에도 지역별로 사람들의성향이 많이 다르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지역별로사람 성향이 구분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남한 면적의 100배정도나 되는 중국의 지역별 성향 차이는 더욱심한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경험하다 보면 이런 지역적 차이보다는 각 개인의 성격에 따른 차이가 실제로는 거의 대부분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중국 역시도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방 사람은 어떻고 남방 사람은 어떻다는 일반적인 인식보다는 각 개인의 성격이나 그가 자주 접하는 문화에 따라서결국 그들의 성향이 결정되었을것이다.
중국 남부 광저우 법인에서 만났던 중국인 직원들도 그런 면에서 내가 근무했던 프랑스, 캐나다, 홍콩, 타이완 심지어 한국 본사에서 만난 직원들과도 별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결국 모두 같은 인간일 뿐이고개인 간 성향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
같은 인간으로, 직장 동료로, 때로는 가까운 친구로 만났던 그들과의 시간과 공간이 세월이 흐를수록 더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