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부의 한국 음식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4편 Guangzhou-07)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Guangzhou



7. 중국 남부의 한국 음식


2005년 즈음에는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중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중국 대도시에는 물론이고 지방의 소도시에까지 한국 식당들이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기 시작했다. 중국 남부 지역도 예외가 아니어서 개 안되던 기존의 식당들 외에 새로 개업하는 한국 식당들이 이 즈음 광저우 및 주변 소도시에 역시 많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갑자기 늘어난 한국 식당의 음식 맛은 정말 천차만별이었다. 대도시는 상대적으로 좀 덜했지만, 대도시 변두리나 중소도시에 가면 이름만 한국 식당이지 먹어보면 정말 어느 나라 음식인지 도저히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런 국적불명의 음식이 나오는 식당들도 꽤 있었다.




광저우의 한국 식당들은 '지창루(机场路)'와 '웬징루(远景路)가 교차하는 근처에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국 식당들이 많았어도 그 당시는 코리아타운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다시 검색해 보니 이후 한인 상가들이 더욱 많아져서 이제는 코리아타운이라 불려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발전한 것 같았다.


한편 '지창루'라는 지명은 한국어로 번역하면 '공항 길'이란 뜻인데 실제로는 그 근처에 공항이 없었다. 공항도 없는 그 동네에 왜 '공항 길'이란 지명의 거리가 있는지 의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광저우 빠이윈(白云) 공항이 원래 이곳에 있었는데 이용객 급증으로 활주로 확장이 불가피해지면서 2004년 약 25km 정도 북쪽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광저우로 파견되기 약 1년 전에 공항은 다른 곳으로 이전됐지만 과거 공항이 있던 곳의 거리명만은 변치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포구(浦口)라는 의미를 가진 한자가 들어있는 서울 '마포(麻浦)'가 이제는 더 이상 포구가 아니지만 포구라는 의미의 그 지명만은 그대로 남아 있고, 역시 서울 서빙고(西氷庫)에 이제는 더 이상 빙고가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과거와 동일한 이름으로 그 지역이 불리고 있는 것과 같은 경우인 셈이다.


한국 식당들이 한 지역에 워낙 많이 몰려 있다 보니 손님을 더 끌기 위해서는 차별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지창루의 한국 식당들은 시내 중심가의 식당들과는 달리 곱창, 갈비, 삼겹살, 주꾸미 등 전문화된 특정 음식만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특정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먼 곳에서도 이곳의 전문식당을 찾아오곤 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광저우 법인의 법인장도 그런 고객 중 하나였는데, 그는 유부남이었지만 부인이 자녀 교육 문제로 한국에 자주 가 있었기 때문에 광저우에서는 거의 독신으로 살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저녁에 식사를 할 때는 같은 독신 처지인 내게 지창루의 한국 식당에 가서 식사하자고 제안해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육식을 하지 못하는 나는 그저 된장찌개, 생선구이, 오징어볶음 같은 어느 식당에서나 흔하게 취급하는 그러한 음식을 주로 먹었기 때문에 굳이 그 먼 지창루에까지 가서 식사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법인장의 제안이라 매번 냉정하게 거절하지는 못했었고 한두 번 정도는 지창루 쪽의 식당에 같이 갔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더 이상 그쪽에 가지 않았고 항상 법인 근처 가까운 한국 식당에서 식사를 하곤 했었다.


(지창루 근처 한국 식당들 모습)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zlife88&logNo=40203953423&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당시 나 포함 법인 주재원들이 단골로 자주 이용하던 법인 근처의 식당들은 '고향옥(故乡屋)'이나 '소미헌(笑味轩)' 같은 식당들이었다. 시내에 다른 식당들도 몇 군데 더 있긴 했지만, 한두 번 가보고는 더 이상 다녀 보지 않아서 그러한 식당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고향옥은 법인에서 약 7~8km 떨어진 동역(东站) 근처의 '징싱호텔(景星酒店)'이라는 다소 오래된 호텔 건물 2층에 있던 식당이다. 이 식당이 당시 우리 법인 주재원들이 가장 자주 애용하던 단골 식당으로 개인적 식사 외에도, 출장자 접대, 주재원 회식 등이 거의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이 식당은 법인에서 그다지 멀지도 않았고 또 식당 주인이 한국인이 아닌 조선족이었음에도 조선족이 운영하는 다른 한국 식당들과는 달리 음식 맛이 순수 한국 음식과 차이가 없었다. 또 조선족 사장님이 조용하면서도 동네 옆집 누님 같이 항상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해주었던 것도 우리들이 이 식당을 자주 애용했던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광저우 체류 6개월여간 거의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 식당에서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식사를 했던 것 같은데, 당시

광저우에 혼자 거주했던 나는 주말에는 점심, 저녁을 모두 이 식당에서 해결했던 적도 많았다. 당시 고향옥에서 즐겨 먹었던 오징어 볶음, 생선구이, 해물 된장찌개는 지금도 그 맛이 기억나는 것 같다.


사진) 고향옥 내부 모습, 주말에는 사진 속 사람들이 앉아 있는 바로 저 테이블에서 나 혼자 식사했던 경우도 많았다.


이 식당이 아직도 그 장소에 있는지 궁금해 지도를 검색해 봤는데, 반갑게도 여전히 존재하고는 있었다. 다만 위치가 바뀌어 그 근처 다른 건물로 이사 갔고, 원래 있던 징싱 호텔 그 자리에는 다른 이름의 식당이 들어서 있었다.


(2005년경 고향옥 본점이 있던 건물)

https://j.map.baidu.com/0f/TU0


한편 지도를 검색할 때 보니 이제는 광저우에 고향옥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공항 근처 등 4군데나 검색되는 것으로 봐서 고향옥 본점 장사가 잘되어 시내 여기저기에 분점을 몇 개 더 개점한 것 같았다. 사장님이 조선족이시니 필경 중국의 가장 북쪽인 동북지방에서 태어났을 것인데 그럼에도 중국 최남단 광저우 그 멀리까지 와서도 사업이 그렇게 번창하는 것으로 보이니 한때나마 단골손님이었던 나도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사진) 2010년 홍콩 근무할 당시 광저우 출장 갔을 때 찍은 고향옥 지창루(机场路) 분점 사진. 한복을 입고는 있었지만 직원들은 모두 한족이었다. (2010년 1월)




'소미헌(笑味轩)'이란 식당은 법인에서 서쪽으로 1.5km 정도 거리의 중화광장(中华广场)이라는 번화한 쇼핑몰의 7층에 있던 식당이었다. 이 식당은 고향옥과 달리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음식 맛의 현지화를 추진하셔서 그런지 음식 맛에서만 때는 조선족 사장이 운영하는 고향옥보다 오히려 좀 더 중국적이어서 내 입맛에는 별로 맞지 않았다.


(소미헌이 있는 중화광장 건물)

https://j.map.baidu.com/c1/QQ0


하지만 먹을 만한 한국식당 중에서는 이곳이 법인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이라, 점심에 빨리 식사를 해결하고자 할 때는 주로 이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곤 했었다. 이 식당에 가려면 법인이 위치한 전신광장(电信广场)에서 '중산이로(中山二路)'라는 길을 통해서 가야 했는데, 차량으로 이동시 도로만 막히지 않으면 5분 안에도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차가 막히는 경우가 많아 차량으로 이동하면 점심시간 다 끝나갈 무렵에야 겨우 식당에 도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걷기에는 좀 더운 날씨였지만 결국 식당에 갈 때는 차라리 걸어서 가기도 했는데 걸어가면 넉넉잡아도 15분 정도면 도착을 했고 또 울창한 아열대 가로수들이 길 양옆을 뒤덮고 있어 시각적으로도 좀 덜 더운 느낌이었다.


(법인에서 소미헌 사이 울창한 가로수 길)

https://j.map.baidu.com/17/dS0

중국에서는 한국에서와 달리 일정 규모 이상의 식당인 경우 출입구에 종업원 한 명이 항상 안내 인력으로 나와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고향옥이나 소미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런 안내 역할만 하는 종업원이 입구에는 항상 한 명 서 있었고, 손님이 오면 식당 내의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그런데 손님이 식당에 들어오면서 처음 접하게 되는 사람이 바로 이 안내 인력이라 그런지, 식당 종업원 중에서 미모가 가장 뛰어난 종업원에게 이 일을 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고향옥이나 소미헌 안내 인력도 역시 미모가 꽤 빼어난 편이었다.

당시 베이징, 광저우, 상하이와 같은 중국 대도시 식당의 종업원은 대부분 시골에서 돈 벌기 위해 대도시로 오게 된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그들에게 대도시의 숙박시설은 감당하기가 너무 비쌌고 결국 대부분 외부에서 숙박할 곳을 구하기보다는 그냥 식당에서 숙박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식당이 일터이면서 숙소이기도 했던 셈이다. 소미헌이나 고향옥 같은 식당에도 각각 최소 20여 명 정도의 종업원들이 있었는데, 그들 역시 식당에서 숙박을 하는 종업원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소미헌 사장 얘기를 들어보니, 소미헌 식당 앞 안내 인력처럼 미모가 유독 출중한 직원 경우에는 식당 내 다른 종업원들과는 다르게 여러 명의 공동생활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 식당에서 숙박하기보다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남자를 만나 외부에서 방을 얻어 같이 동거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했다.


소미헌에서 안내를 담당하던 종업원도 당시 나이가 이제 막 18살이 됐다고 했는데 이미 어떤 남자와 함께 동거하고 있다고 했다. 꽤 이른 나이에 동거를 시작한 셈인데, 중국의 경우 젊은 남녀 간 동거가 워낙에 흔한 것을 이미 익히 알고 있던 상황이라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


중국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소미헌도 14년이라는 매우 오랜 시간이 경과했음에도 역시 영업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식당은 장소가 이전된 고향옥과 달리 장소도 과거와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이름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없어졌거나 이전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찾아봤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그 이름 그대로 내가 방문했던 바로 그 장소에 남아 있는 것을 보니 광저우의 오래된 친구를 다시 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소미헌 내부 모습)

https://blog.naver.com/ski5150/40204140427




한국에도 개고기를 먹는 사람이 아직도 일부 남아 있다지만 중국에는 개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들이 꽤 있다.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한국인보다는 훨씬 더 높은 비중의 중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 것 같은데,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같은 서구 국가의 유명인들은 중국인의 개고기 먹는 습관에 대해서는 별다른 비난도 못하면서 유독 한국인의 습관만은 문제 삼는 것 같다. 중국이 워낙 강국으로 성장해 버리니 감히 말도 못 꺼내고 자신들이 판단하기에 그저 만만해 보이는 한국만을 대상으로 비난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중국 개고기 축제)

https://m.blog.naver.com/animalandhuman/221324730658


그런데 나는 태생적으로 육식에 대해서는 알레르기가 있어 개고기는 말할 것도 없고, 소, 돼지, 닭 등 일체의 고기를 먹지 못한다. 그런 내가 중국에서 그것도 중국 식당에서도 아니고 중국의 한국 식당에서 개고기탕을 먹게 됐던 황당한 일이 있었다.


북한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중국의 우리 동포 조선족들 역시 북한말처럼 개고기를 '단고기'라고 부른다. 한 번은 법인의 조선족 직원들과 광저우 인근 소도시에 출장 갔다가 식사를 하기 위해 한국 식당에 들른 적이 있었다. 돼지고기 등 육식 위주의 음식을 주로 제공하는 중국 식당에서는 식사하기가 어려워 지방 소도시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고 여기저기 물어서 한국 식당을 찾았는데 운 좋게도 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한편 그러한 소도시에서도 한국 식당이 영업하고 있는 것을 보니, '대장금'이란 드라마의 중국 내 인기를 다시 한번 더 실감할 수 있었고, 바로 그 드라마 덕분에 그처럼 외진 지방 소도시에서도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솔직히 대장금이라는 드라마를 제작한 제작진에게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육고기를 못 먹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고기가 주 재료인 중국 음식은 너무도 먹기가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어쩌면 한국산 제품을 전 세계에 수출을 해서 외화를 벌어들인다고 자부심을 가졌던 나 같은 직장인들보다, 한국 드라마, 노래 등 한국의 정서가 담겨 있는 Contents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사람들이 한국의 국가 이미지 제고에는 더 기여하고, 정말 더 애국하는 사람들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본인들이 그렇게 의도를 했던 아니던 결과적으로 말이다.

식당에 들어와서 메뉴판을 보니 반갑게도 북엇국이 있길래 나는 북엇국을 주문했고, 같이 간 조선족 직원들 중 한 명은 단고기탕, 즉 개고기탕을 주문했다. 그리고 잠시 후 식당의 종업원이 북엇국이 먼저 나왔다면서 가져다주었고 나부터 먼저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국인이 운영하는 외딴 지방 소도시 한국 식당 음식 맛이 제대로 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애당초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실제 나온 음식을 먹어 보니 예상보다도 너무나 맛이 이상했다.


맛이 없는 것을 떠나서 북어 맛은 전혀 없었고, 그저 맹맹한 국물에 희멀건 기름만 떠 있어서 이상한 기름 맛 같은 것만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배도 너무 고팠고 점심은 때워야 하는 상황이니 반찬으로 나온 김치와 깍두기를 듬뿍 넣어 그 양념 맛으로 꾸역꾸역 서너 숟가락 먹고 있었다.

그때 조선족 직원이 주문한 개고기탕이 나왔다, 하지만 그 친구 역시 두세 숟가락 먹어 보더니 맛이 너무 이상하다며 종업원을 불러 개고기탕 맞냐고 물었고, 주방에 가서 다시 확인하고 돌아온 종업원이 하는 말이 먼저 나온 탕, 즉 내가 이미 한참 먹고 있던 탕이 개고기탕이었고 그 이후에 나온 탕이 북엇국인데 자신이 헛갈려서 순서를 바꿔서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부지런히 입으로 가져가던 숟가락을 바로 조용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미 서너 숟가락 이상 먹었으니 알레르기 반응 등 뒤탈이 걱정됐다.


하지만 어쨌든 이미 내 몸 안으로 들어간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고 남은 음식이라도 그 조선족 직원과 바꿔 먹었는데, 바꿔서 먹는 북엇국이라는 것도 방금 전 먹은 개고기 탕과 그 국물 맛이 별 차이가 없었다. 한마디로 역시 아무런 맛이 없는 그저 맹탕에 이상한 기름만 떠 있는 것 같았다.


주방에서 음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두 종류의 탕을 먹어 본 맛으로만 판단해 보면, 한 가지 국물만을 미리 만들어 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건더기만 개고기, 돼지고기, 북어 등으로 바꾸어 넣어 손님들에게 가져다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만큼 두 가지 탕의 국물 맛이 전혀 차이가 없었다는 얘기다.


한편 이미 비위가 상할 때로 상한 나로서는 이후 몇 숟가락 더 먹지도 못하고 점심을 대충 마쳤는데, 다행히 많이 먹지 않아서였는지, 알레르기 반응으로 야기된 증세로 고생하는 일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겪은 일은 음식을 서빙하는 종업원은 말할 것도 없고 주방에 있던 주방장 역시 모두 중국인으로 한국 음식을 제대로 알 수도, 만들 수도 없는 그런 지방 소도시의 한국 식당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런 곳에서 한 끼 식사하면서 북엇국과 개고기탕을 제대로 만들어 끓이기를 기대했던 나의 기대 자체가 어쩌면 너무도 높았던 아닌지 모르겠다.


당시 그 일은 육고기 알레르기가 있는 내게는 매우 심각할 수도 있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손님에게 개고기탕을 가져다주고도 그 시골 식당 여종업원은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듯한 맑고 또 덤덤한 표정으로 미소까지 머금고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어 더 황당했었다.




광저우에서의 식사 관련 좀 후회되는 기억도 있다. 아열대 지역인 광저우의 여름은 당연히 꽤 덥다. 그러다 보니 너무 더워서 밖에 식사를 하러 나가기가 귀찮거나 아니면 업무가 몰려 식사하러 외출하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고향옥 아니면 소미헌에서 점심을 배달시켜 먹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식당에서 배달시켜 먹는 경우, 점심시간에 식사하는 직원들로 매우 붐비는 법인 Canteen에서 식사를 하기보다는 훨씬 더 조용하고 쾌적한 법인 회의실 공간에서 한국인 주재원들만 따로 모여 식사를 하곤 했었다. 당연히 그것이 훨씬 더 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회사에 식사하는 장소로 지정된 Canteen이 있었고, 현지인 직원들은 좁고 불편해도 회사 기준에 따라 모두 그곳에서 식사를 했는데, 유독 한국인만 정해진 장소가 아닌 업무 협의 장소 회의실에 따로 모여서 식사를 하곤 했던 것이 현지인 직원들에게는 꽤나 위화감을 조성하는 행동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현지인 직원들이 그렇게 회의실에 모여 식사를 했다면 법인에서는 분명히 제재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주재원들은 그렇게 하고 있었고 또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심지어 법인장도 주재원들과 함께 앉아 그렇게 식사를 했다.


중국인 직원들과 저녁에 함께 술 한잔 할 때 일본 회사 근무 경험이 있는 중국인들이 일본인을 비난하는 말을 들어보면, 일본인 주재원들은 항상 자기들끼리만 따로 몰려다니면서 치 자신들만이 특권을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 역시 일본인의 그런 행동을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비난하고 동조했었는데, 따지고 보면 결국 내가 비난했던 그 일본인들과 같은 행동을 나 역시도 매일 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70년대 한국에 중동 건설 붐이 한참 불던 그 시절, 중동의 건설현장에서 대규모 노사분규가 발생했는데 그때 한국인 근로자들이 가장 먼저 파괴한 곳이 오직 간부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별도 시설을 갖춘 간부 식당이었다고 한다. 간부만 더 좋은 환경에서 따로 모여 식사하는 것이 그렇게 미웠던 것이었다. 같은 한국인 사이에도 그토록 민감하게 인식되는 곳이 식사하는 장소의 차별인데, 언어와 문화가 크게 다른 외국인인 중국인에게는 우리들의 그런 행동이 분명히 더 큰 위화감을 조성했을 것이다.




요즘에는 중국의 대형 슈퍼 중 한국 라면이나 김치를 파는 곳도 꽤 많지만, 2005년 그 당시에는 아직은 그렇지 않던 시절이었고 대도시 중심으로 군데군데 작지만 다양한 한국 식품을 판매하는 한국 식품점들이 있어 한국 식품은 그런 곳에서 구하곤 했었다.


도시 인구가 천만이 넘는 대도시로 교민, 주재원, 유학생 등 한국인이 적지 않았던 광저우에도 역시 그런 한국 식품점이 몇 군데 있었는데, 김치, 라면, 고추장, 된장, 김 등은 물론 과자류나 심지어 냉동 운송이 필수인 한국산 빙과류까지도 거의 모든 한국 식품 및 재료를 그곳에서는 살 수 있었다.


내가 자주 가던 한국 식품점은 티엔허베이루(天河北路)에 있던 한인교회 근처에 있었는데, 식품점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일요일에 예배를 보고 나오면 교회에서 가까운 이 가게에 꼭 들러 일주일치 장을 보고는 했었다. 그 가게 주인 2명도 고향옥 사장님처럼 조선족이었는데, 남매로 보이는 30대 초반의 젊은 남녀가 항상 환하게 미소 띤 얼굴로 정말 열심히 일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한 번은 무더운 한여름 그날따라 한국 식품을 유난히 많이 구매해서 그런지 주인 여자가 고맙다며 뭐가 그리도 수줍은 지 약간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한국산 아이스크림 하나를 냉동고에서 꺼내 서비스라며 내게 건네주어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녀 역시 조선족이면 중국 최북단 동북삼성(東北三省)이 역시 고향으로 그 먼 곳에서 중국 최남단 광저우에까지 와 장사하고 있었던 것인데, 광저우 법인의 조선족 직원들이나 고향옥의 조선족 사장 등 모두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중국 남방 이역만리에서 각자의 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힘들고 아픈 과거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동포로서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좀 서글프기도 했다.


중국 남부의 아열대 도시 광저우에서 2005년에 체험하고 느꼈던 한국 음식과 관련된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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