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에서 왔던 한국인 출장자가 법인의 캐나다인 직원들과 한국 식당에서 저녁 식사하면서 만취한 상태로 온갖 반찬을 섞어 넣은 사발주를 마시자고 제안해 현지인들이 기겁해서 모두 가버린 일이 있었고, 이후 그 일화가 현지인들 사이에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는 내용을 Toronto 편에서 언급한 바 있다.
해외의 다른 법인에도 이처럼현지 직원들 사이에 전해오는 한국인에 대한 전설 같은 얘기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광저우 법인에도 역시 직원들이 바뀌어도 꾸준히 전해오는 한국인에 대한 전설이 있었다. 이런 전설들의 배경이 되는 사건은 내가 광저우 법인에 근무하기 전에 발생했던 일들로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 하지만나중에 내용을 들어도 정말 전설로 전해져 올 만큼 대단한 사건들이었다는생각이 많이 드는 그런 사건들이었던 것 같다.
그중 하나는 광저우 법인장을 하셨던 분에 관한 전설이다. 사실 광저우 법인장 자리를 거쳐가셨던 분은 여러 명이었다 하지만 다른 분들에 대해서는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내용이 없었던 반면, 딱 한 분에 대해서만은 전설로전해져 내려온 얘기들이 매우 많았다.
이분의 전설 중에는 '회의'에 대한 무한한 애착도 있었는데 그전설에 의하면 그는 광저우 법인 근무기간거의 전부를 하루 종일 직원들을 불러놓고 회의하는 것으로만 보냈다는것이다. 그 결과 법인 직원도 그 법인장 근무 기간에는 회의 관련 일에 자신들의 시간 대부분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해외 법인의 최고 책임자인 법인장이 해야 할 일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매장 등 판매 현장에도 나가봐야 하고, 거래선도 만나야 하며, 조직 전체의 나아갈 방향이나 목표 설정, 가장 중요한 간부급 현지인의 채용이나 해고 등 인사 업무, 또 그 외에도 혼자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분은 그런 것들에 시간을 투자하기보다는 오로지 회의를 통해 목표를 점검하고, 실적 챙기고, 본인의 지시사항 전달하는 것에 자신의 거의 모든 시간을 소비했던셈이다.
그런데 회의에는 장점도 있었지만 또 매우 치명적인 단점도 있었는데 바로 회의에 참석하는 시간보다때로는 훨씬 많은 시간을 회의 자료 작성하고 준비하는데 소모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회의가 많아질수록 그 조직 구성원은 보다 생산적인 일보다는 내부 회의용 Paperwork에 점점 많은 시간을 소모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또 회의 중에는 꽤 많은 지시사항들이 새로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그런 지시사항에 의거해서 또 다른 새로운 업무들이 생겨난다. 즉 회의에 한번 참석하면 회의가 끝난다고 일이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 회의에서 파생된 또 다른 일이 새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OO 회의 중의 법인장 지시사항 이행 점검표' 같은 것도 등장하는것이다. 책상에 앉아 이런 점검표 같은 것들을 챙겨야 하니 결국엔 현장에 나가서 생산적 일을 할 시간은 또 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조직의 책임자로서 법인장이 회의를 통해서 점검하고 챙겨야 하는 것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빈도가 지나쳐 직원들이 정작 자신 본연의 일을하지 못하고회의 관련 Paperwork 수렁에 빠지게 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분명히 문제가 될 것이고 이러한 문제는 결국에는 해당 조직의 부진한 실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을것이다.
법인의 직원들이 자율적, 능동적으로 자신의 계획에 따라서일을 할 수 없고 수많은 회의를 통해서 전달되는 법인장의 지침에만 수동적으로따라 일을 하는 상황이 된다면, 여러 명의 지식과 경험이 아니라 결국 법인장 한 사람의 지식과 경험에 의해서만 모든 조직이 움직이는 결과가 되는 셈이니 부진한 실적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30대 중반의 어느 지도자가 그 젊은 나이에 북한의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현장 지도'를 했다는 내용의 기사는 최소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접하게 되는 것 같다. 그가 지도를 했다는 대상이나 장소도 유치원부터 식당, 공장, 병원, 군대, 학교, 유원지 등 북한 하늘 아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다.
그리고 그런 기사에 실린 현장 사진을 보면 공통적으로 그 지도자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고개조차 제대로 못 들고 그가 말하는 내용을 열심히 받아 적고만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소위 '현장 지도'를 하고, 그 지도를 받은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받아 적고 지시사항을 이행했다 해도 북한의 상황이 좋아졌다는 소식은 전혀 들을 수 없다.
신도 아닌 한 인간이 다양한 분야의 모든 것을 전문가만큼 완벽하게 다 꿰뚫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니 당연히 그가 지도한다면서 내린 지시사항 중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들도 꽤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감히 그의 지시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큰봉변을 당하게 될 것이니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계획과 방향을 잃고서 엉뚱한 그의 지시사항에만 매달리느라 성과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사실 너무 많은 회의였다. 대다수가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경영진도 이미 여러 차례 회의 빈도 감축과 회의 문화를 개선해 보려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번번이 성공하지 못했었다. 본사뿐 아니라 해외의 현지 법인들에도 주간 회의, 월간 회의, 실적 점검 회의, 대책 회의, 주재원 회의, PM회의, 법인장 회의 등등 너무도 많은 회의가 반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회의들은 중국 전 지역에 흩어져 있는 법인들이 모두 한 장소에 모여 진행되기도 했지만, 이미 화상을 통한 원격 회의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었던 때라 굳이 한 곳에 모이지 않고도 수시로 원거리에서 화상을 통해 참여하는 방식으로 소집되기도 했었다.
정말 소설 같은 얘기지만, 이런 원격회의 시스템을 활용해 시차가 전혀 다른 전 세계의 50여 개 국가주재원들모두가 동시에 참여하는 화상회의를 고집하는 본사의 고위 임원도 있었다. 한국과 시차가 12시간 차이나는 지역의 주재원은 새벽 3~4시에 그 회의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그러한 회의가 주1회정기적으로 꾸준히 진행되었다. 당시 나는 홍콩에 주재할 때였는데, 홍콩 시간 기준으로는 저녁 7시에 그 회의가 시작됐으니 그래도 나는 심야에 참석해야 했던 지역의 주재원들 보다는 운이 꽤 좋았던 셈이었다.
법인장 1인만 참석하는 회의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회의조차도 실제 자료를 만들고 예상 질문들에 대한 답안을 준비해야 하는 일은 대부분 법인장 휘하의 직원들이 해야만 했기 때문에, 법인장만이 참석하는 회의라도 어쨌든 회의가 있으면 직원들의 Paperwork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본사에서 실시하는 법인장 회의에 참석할 때 보면 회의용의 자료를 각 분야별로 나누어 두꺼운 책처럼 제본해서 가져온 법인장들도 볼 수 있었다. 주재원은 한 명도 참석하지않는 회의였지만 결국 그 두꺼운 책은 장시간에 걸쳐주재원들이 모두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회의와 Paperwok이 그렇게 이미 너무나도 많았던 실정에서 광저우 법인처럼 법인장이 주관하는 내부 회의를 여러 건 더 추가로 운영했다면, 그 법인장 휘하의 직원들은 정말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도 못하고 하루 종일 회의에 참석하고 그 회의 준비하는 데에 거의 모든 시간을 소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직원들의 하소연했던 것은 회의 중에 법인장의 지시 사항이 있어도 전혀 이행할 수 없었던 이유가 또 다른 회의에참석을 하거나 회의 준비를 해야 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거의 모든 직원들이 하루 종일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회의에만 매달려 있었으니 그 외의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 법인장이 떠나면서 자체적으로 운영했던 회의들은 대폭 줄었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이후 꽤 오랫동안 광저우 법인은 여러 면에서 실적이 저조한 법인으로만 남아있어야 했는데, 그렇게 된 근본적 원인이 만들어진 애당초 단초가 그렇게 하루 종일 회의만 했던 법인장이 근무하던 그 시절 만들어지고 굳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이처럼 회의가 과다했던 문제는 이후 기업문화 변화와 회사차원의 집중적인 노력으로 상당 부분 개선되었고, 이제 이런 얘기는 말 그대로 오래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흘러간 전설 같은 얘기가 되어버렸다.
광저우 법인의 또 다른 전설은 중국인 직원들에게 너무도 편하게 화내고 고함치는 한국인 주재원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도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중국인 직원들에게 한국어로 말하며 화를 냈다는 것이다.
'땅콩 회항 사건'이라고 불리는 모항공사의 사례처럼 소위 '갑질'하는 직장 상사 이슈가 요즘도 언론에 종종 보도된다.2005년 당시에도 비록 '갑질'이라는 표현은 아직 사용되지 않았던 시절이지만 한국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직원들에게 성질부리고, 고함치고, 심지어 욕까지도 하는 그러한 '갑질' 풍조는 요즘보다 훨씬 더 심했다.
중국인 직원에게 수시로 꽤 편하게 화를 내던 그 주재원들 역시 당시 한국에 만연했던 그런 풍조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은데, 이 주재원들 경우는 그 정도가 좀 많이 심해서 화낼 때 보면 거의 무슨 병에 걸려서 갑자기발작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게다가 그렇게 심하게 화낼 때는, 어느 순간부터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말하거나 욕을 하기 시작했다는데, 중국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한국어만큼 편하게 구사하지는 못했을 것이니분을 참지 못해서 자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어느 순간부터는 욕하기 편하고 말하기도 편한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는 것 같았다.
물론 중국인 직원들이 그런 한국어를 전혀 못 알아듣는다는 것은 그들도 익히 알고 있었겠지만 그 상황에서는 그들에게 상대방이 말을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그것이 중요했던 것이 아니고, 오로지 넘치는 화를 풀고, 자신이 화가 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이 중요했던 것 같다. 결국 "너 때문에 이렇게 심하게 화났다"라는 의사를 전달하고 싶었을 뿐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한국어로 욕하는 전설 속의 주재원들이 당시 광저우 법인에 두 분이 있었다 한다. 그런데 배려심이 좀 더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중 한 분은 본인 부서의 조선족 직원에게 사전에 통역 역할을 부여하여, 본인이 어느 순간부터 한국어로 화내기 시작하면 자동적으로 옆에서 그가 하는 한국어를 중국어로 번역해서 전달하게끔 했다.
그런데 옆에서 통역하는 직원이 너무 완벽하게 통역하려는 욕심이 있어서 그랬는지, 그 주재원이 소리치고 삿대질하는 모든 동작을 자신도 똑같이 재현하면서 통역해서, 주변에서 보기에는 주재원과 통역자 두 사람이 마치 동시에 발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다.
또 다른 한 주재원은, 아예 통역도 없이 그저 화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말을 바꾸어 화내곤 했다 한다. 통역도 필요 없고 그저 "나 매우 화났다" 오직 이것만 충실히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려 했던 것 같다.
한편 그들의 이러한 사내 언어폭력 건에 대해서 당시 법인 차원에서 별다른 주의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그들이 그렇게 성질내고 화내는 상황이 더욱 빈번해져 나중에는 법인 직원들 대부분이 그렇게 한국어로 화를 내는 주재원의 모습을 보는 것을마치 자연스러운 하루 일과 중 하나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한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그렇게 보였을 수 있지만 실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결단코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입장을 바꾸어 내가 한국에 있는 중국 회사에 근무하는데, 중국인 상사가 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어로 매일 같이 고성을 지르며 욕하고 성질낸다면, 외국인으로서의 분노를 넘어서 결코 잊지 못할 심한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른 법인의 사례지만 실제 그러한 마음의 상처가 폭력으로 발전되는 경우도 있었다. 현지인 직원들을 안하무인식으로 대하며 직장 내 '갑질'하던 주재원들이 밤늦은 귀가 길에집 근처에서 현지인의 보복으로 폭행을 당하기도 했던 것이다.
만일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과 같은 선진국에 있는 한국인 주재원들이 중국에서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성질부리고 화를 냈다면, 현지인 직원들로부터 바로 고소당해 법정으로 가야 했을지 모른다. 실제 선진국에 있는 법인의 주재원이 그렇게 했다는 얘기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 결국 후진국 국민이라는 선입견이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주재원들은 그러한 갑질 행위를 할 수가 있었던 셈이다.
물론 중국이 급성장하여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미국에 버금가는 G2가 돼버린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는 2005년 그 당시처럼 중국에 주재하는 한국인과 같은 외국인들이 중국 직원들을 그렇게 막 대하는 일은 이제는 좀처럼 상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중국이 너무도 자주, 그리고 너무도 편하게 한국을 겁박하는 요즘과 같은 현실에서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가는 중국기업 근무 한국인들이 오히려 중국인 상사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2005년에 중국인들이 한국인 주재원들에 대한 전설을 얘기했었듯이 요즘은 한국인이 중국인 상사에 대한 전설을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같은 한국인으로 한국인들이 중국인 직장 상사로부터 그런 언어폭력을 당하는 불상사는 결코 없기를 기대해 본다.유감스럽게도 이미 우리는 그런 불상사를 과거에 저지르긴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