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와서 보니, 여자 남자 구분 없이 오히려 때론 남자가 더 흔하게 새끼손톱 또는 몇 개 손톱만 유난히 길게 기르고 다니는 모습을 간혹 볼 수 있었다.
손톱 길이가 심지어 3~4cm 이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비위생적인 것을 떠나 이상하고 꽤 징그러워 보였다. 중국 생활이 길어지면서 그런 손톱을 점점 더 자주 보게 됐지만 그럼에도 그 모습에는 영 익숙해지지 않아 볼 때마다 꽤나 불편했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그런 손톱에 그다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중국 북쪽 지방에 있는 베이징 법인에 근무할 때는 그렇게 손톱을 기른 사람들을 그다지 자주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중국 남쪽에 있는 광저우 법인에 오니 그런 사람들을 훨씬 더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아마 북부 지역보다는 남부 지역의 사람들에게 보다 흔한 풍습이었던 것 같다.
도대체 왜 그렇게 손톱을 기르고 다니는지는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그 답이 일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체로 긴 손톱이 복과 운을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내 경우는 어쩌다 그렇게 손톱을 길게 기른 중국인을 만나는 날은 오히려 그날의 복과 운이 정말 모두 다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특히 식당에서 종업원이 그것도 남자가 그런 손톱을 하고 음식을 가져다주는 경우를 보게 되는 날은 복과 운뿐만 아니라 식욕까지도 반 이하로 줄어드는 것 같았다.
중국에는 숫자에 대한 미신이나 풍수지리, 기(氣)나 운(運) 등을 바탕으로 하는 풍습이나 행동이 한국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의외로 너무 많은데, 중국이 유물론을 기본 이념으로 하는 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가 된 것이 70년도 넘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한 것 같다.
2) 우연히 체험했던 중국인의진정한감사
소규모 중소 거래선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감사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업체이고 또 중국어도 거의 구사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받은 전화라 다소 당황스럽기도 했었는데어쨌든 그 업체가 영업을 접겠다는 결정을 한 후 받았던 마지막으로 전화였다.
북미의 Distributor와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중국에는 다이리샹(代理商, 대리상)이라 불리는 중간 유통 업체들이 있었다. 이후에는 중국의 유통 단계가 짧아지면서 점차 그 역할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한때는 이 대리상들이우리 법인 매출의 90% 이상 점유할 만큼 중요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이 대리상들 중에는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사업하는 자금력이 풍부한 대규모 대리상도 있었지만, 특정 지역 단위로 소매상에 제품을 공급하는 중소 규모의 비교적 영세한 대리상도 꽤 많았다.
이 중소 규모 대리상들이 중국 전역에 수백 개 매장을 가진 초대형 양판점(量販店, Chain Store)에 우리와 같은 제조 업체에서 제품을 공급받아서 대신 납품하기도 했는데, 이때 막강한 조직과 구매력을 가진 양판점이 약자인 대리상에게 요즘 말로 '갑질'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그들의 그런 갑질 중 대표적인 사례가 납품한 제품에 대한 대금 지급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지연시키는 것이었는데, 당시 우리 같은 대기업도 그 대금 받아내는 것이 때론 정말 힘들고 쉽지 않았을 정도였으니, 자금력도 취약하고 별다른 대응 능력도 없던 중소규모의 대리상들은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하루는 푸젠성에 출장 갔는데 양판점 매장을 방문해서 보니 회사 로고가 찍혀 있는 우리 제품 전시대는 있는데, 정작 그 위에 있어야 할 우리 제품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직원을 통해 이유를 확인했더니 우리 제품들을 그 매장에 공급하던 대리상이 양판점으로부터 오랜 기간 대금을 받지 못해 제품 납품하는 것을 포기하다시피 해서 그렇게 됐다고 했다.
결국 대형 양판점 갑질의 결과였던 것이다. 하지만 열 받고 화나긴 했지만 나 역시 그 양판점과 직접 붙어서 그 문제를 해결할 만한 능력이나 권한은 없었고 고민을 하다 베이징에 있는 우리 회사의 중국 본사를 통해서 역시 베이징에 있던 거래선의 본사에 공식적으로 항의를 전달했다. 그렇게 해서 베이징의 두 회사 본사 간 창구를 통해서 문제가 거론된 지 며칠 후 다행히 광저우에 있는 거래선 지사에서 그 대금을 마침내 모두 지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 푸젠성 대리상 사장으로부터 감사의 전화가 왔던 것이다. 전화 내용을 요약하면 자신에게는 그 대금이 정말 큰돈이었는데, 너무도 오랫동안 못 받아 포기하다시피 했던 그 대금을 받게 해 줘서 감사하다는 그런 얘기였다. 그 외에도 그는 내게 더 많은 얘기를 하려고 했지만, 그 당시 내 중국어 실력이 워낙에 형편없던 시절이라서 대화가 더 길게 진행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사실 엄밀히 말하면 솔직히 나는 그 대리상을 위해 그 문제를 풀려고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우리 제품이 이상 없이 매장에 잘 전시되어서 좀 더 많이 팔릴 수 있게끔 하기위해 문제를 풀려고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대리상 사장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그런 내 노력 덕분에 포기하다시피 했던 대금을 받게 되었으니 내가 그토록 고마웠던 것 같다.
자금력이 풍부하고 전국에 수백 개 매장을 갖고 있는 대형 양판점으로서는 그 돈이 그렇게 큰돈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소규모 대리상을 운영하는 그 작은 대리상에게는 그 금액이 자신과 자신 가족 모두의 현재와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는 그런 큰 금액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대리상은 그 대금을 받은 며칠 후 대리상 사업을 접었는데아마도 대금을 못 받던 그 긴 기간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고생이 너무 심했을 것이고, 그래서 두 번 다시 그런 고생은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중국에서 근무하면서 고맙다는 말을 꽤 자주 들었지만, 이 대리상이 내게 표현한 '고맙다'는 말만큼 정말 깊은 진심이 와닿았던 경우도 없었던 것 같다.
3) 술 권하는 사회
해외의 많은 나라들을 방문해 보고 거주해 보기도 했지만, 비즈니스 술자리에서 상대방에게 술 더 먹으라고 강요하는 문화는 한국 외에는 중국에서 밖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다. 일본에도 그런 문화가 있다고도 하는데, 일본인과 술 마셔 볼 기회는 없어서 일본 경우는 잘 모르겠다.
중국의 술자리에서 술 강권하는 분위기는 한마디로 한국과 너무도 똑같았다. 그 분위기로만 보면 마치 한국으로 다시 되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직장 내 부서 회식을 하는 경우에도 그랬고, 행사를 마치고 난 뒤 뒤풀이할 때나, 거래선들과 술자리를 할 때에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상대방에게 술 더 먹여서 먼저 취하게 만들기에만 바빴다. 그리고 술 많이 마셔 먼저 취하게 되는 사람이 마치 그날의 패자가 된 것 같이 느껴지는 분위기도 똑같았다.
다행히 중국 남부에 있는 도시 광저우에서는 날씨가 너무도 더워서 그런지 술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아 대낮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중국 북방 지역의술자리에 참석하는 것보다는 좀 더 편하긴 했다. 하지만 광저우 사람 중에서도 술이 센 사람이 드물지만 있었고, 또한 광저우에 광저우 토박이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외지에서 온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광저우에서의 술자리도 결코 만만하지만은 않았다.
사실 난 술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한다고 말할 때의 그 의미는 적당하게 취할 때까지 마시는 것만을 의미하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그렇게 많이, 오랜 시간 마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체질적으로 많이 마시면 우선 졸리고 때로는 두통까지도 심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리 시절 최하위 인사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이유를 묻지도 않았는데 부장님이 불러서 갔더니 술자리에서 끝까지 먹지 못하고 중간에 가기 때문에 최하위 평가를 줬다고 먼저 얘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만큼 술 안 마시는 것이 그렇게 미웠던 것이었다. 이후 다른 부서에 근무할 때는 술자리가 너무 길고 힘들어서 도망갔다가 이후 무려 1년여간 그 건으로 상사로부터 시달려야만 했던 일도 있었다.
술을 강권하는 문화로 그렇게 고생했는데, 한국을 벗어나서 프랑스나 캐나다에 가서 근무하니 그런 경우는 전혀 없었다 그저 내가 마시고 싶은 만큼만 마시면 됐다. 그런데 중국에 주재 부임하니 한국에서와 똑같은 그 문화를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술 강요하는 문화로 중국 주재 내내 꽤 많은 고생을 해야 했었다.
4) 담배까지도 권하는 사회
술을 강권하는 문화는 중국과 한국이 비슷했지만, 중국에는 한국과 다르게 몸에 안 좋은 것을 권하는 또 하나의 관습이 있었는데, 바로 담배를 권하는 것이었다. 직원을 만나거나 거래선을 만나면 자신의 담배를 꺼내 상대방에게 피우라고 권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한국에서 뿐 아니라 내가 방문했던 수많은 다른 국가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관습인데, 유독 중국에는 그런 관습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상대방에게 일종의 호감을 표현하는 의미라 했다. 술보다 더 건강에 유해한 담배를 권하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호감의 표현이라니 꽤나 의외였는데, 중국이 경제적으로 많이 어렵고, 담배도 훨씬 비싸던 시절에 귀한 손님에게 귀한 담배를 권한다는 의미에서 생긴 풍습이라고 한다.
이제 담배를 끊은 지 10년도 넘지만 당시에는 나도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십 명, 수백 명이 모이는 회의와 장소 같은 곳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담배를 권해올 때는 꽤 곤혹스러웠다. 그들의 호의와 성의를 생각해 거절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건네주는 담배를 받아 피우긴 했는데 그러다 보니 거의 한두 갑 정도를 한 자리에서 순식간에 피워야만 했던 경우도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잘알겠지만 아무리 담배를 좋아한다 해도 무려 한두 갑을 짧은 시간에 모두 피우면 머리도 핑핑 돌고, 입맛도 정말 쓰다.
한편 요즘은 중국에서도 원칙적으로는 실내 흡연이 금지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2005년 당시만 해도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한 규제는 도무지 없었고, 수백 명이 그렇게 밀폐된 회의장에서 몰아서 담배를 피우면 정말로 군대에서 경험했던 화생방 실습실에 다시 들어가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한겨울에 창문 모두 닫고 수백 명이 밀폐된 회의장에서 동시에 담배를 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