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기억에 남는 단편들 (3-2)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4편 Guangzhou-12)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Guangzhou



12. 광저우, 기억에 남는 단편 (3-2)



5) 아! 칸막이 없는 화장실....


남녀가 같이 목욕하는 일본의 남녀혼탕(男女混湯) 문화가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지듯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듯한 중국의 칸막이 없는 개방형 화장실도 우리에게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론 한국의 화장실 또한 요즘과 달리 과거에는 지저분했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중국의 화장실처럼 서로 마주 보고 같이 볼 일을 보는 그런 개방형 화장실은 한국에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중국에는 뻐젓이 그러한 화장실이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중국도 많이 변해 요즘에는 대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지방에도 그런 개방형 화장실은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광저우에서 근무했었던 2005년경에는 여전히 그런 화장실이 도처에 있었고, 나 역시 그런 화장실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중국의 개방형 화장실)

https://m.blog.naver.com/4bcompany/221900563327

(중국의 화장실 혁명)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0292618


사실 베이징에서는 주로 사무실에서 근무를 했고 외부로는 돌아다닐 기회가 많지 않아서 이런 칸막이가 없는 화장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광저우에 온 이후는 영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매장에도 다녀야 했고 거래선을 만나기도 하는 등 외부로 다니게 되는 경우가 많아 말로만 들었던 그런 화장실을 실제 종종 마주칠 수 있었다.


물론 광저우 시내에서는 그 당시에도 이러한 화장실을 보지 못했다. 다만 광저우에서 좀 떨어진 변두리나, 다른 도시로 가는 도로 상의 공공 화장실에는 그렇게 칸막이 없이 서로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큰 일을 보는 화장실이 있었다.

어쩌다 그런 화장실에 모르고 들어가게 되면 급하게 소변만 해결하고 나오곤 했다. 하지만 큰 일 보는 곳도 소변을 보는 곳과 같은 장소에 있어 칸막이도 없는 변기 위에서 나란히 앉아 볼 일 보는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보기도 는데, 차마 큰 일을 보고 있는 사람과 시선을 마주칠 수가 없어서 눈을 아래로 깔거나 천장을 바라보며 내 소변만 처리하고 서둘러 나오곤 했었다. 굳이 한참 열심히 볼 일 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봐야 할 이유까지는 정말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중국에 그런 개방형 화장실이 있는 이유를 찾아보면 화장실 은밀한 곳에서 모반을 도모하는 사람이나 간첩이 접선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랬다는 특이한 설명도 있는데, 화장실이 아니라도 그런 은밀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해석인 것 같다.


어쨌든 다행히 그런 화장실에서 급하게 대변을 해결해야만 했던 경우는 중국 근무기간 단 한 번도 없었던 덕분에, 바로 내 앞에서 다른 사람이 힘주고 볼 일 보는 모습을 마주하는 불상사는 없이 무사히 중국 주재를 마칠 수 있었다.



6) 안마소 '푸위엔탕(扶元堂)'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안마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베이징에 부임해서 남들처럼 나도 처음으로 안마라는 것을 받아 봤는데, 한번 안마를 받아보니 정말 신천지를 경험한 것처럼 너무도 시원했고 누적되었던 피로가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안마의 매력에 한번 빠지다 보니 베이징 근무 시에는 이윤당이라는 왕징(望京)의 안마소에서 거의 매 주말 빠지지 않고 안마를 받았다.

광저우로 근무지가 변경된 후에는 한동안 안마받을 기회가 없었는데, 안마도 중독된다는 말이 사실인지 매주말 안마를 받아오다가 몇 주째 안마를 받지 못했더니 아닌 게 아니라 몸이 너무도 피곤한 것 같았다. 그래서 먼저 부임한 다른 주재원들에게 물어 그들이 자주 간다는 광저우에서는 나름 꽤 유명했던 '푸위엔탕(扶元堂)'이라는 안마소에 처음으로 가보게 되었다.


푸위엔탕의 공식적인 명칭은 안마소가 아니라, 전문가들이 안마를 통해 질병을 치료한다는 뜻의 '푸위엔탕 중의의원 (扶元堂中医医院)'이라고 '의원(醫院), 즉 우리말로 하면 '병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소문대로 이곳의 안마도 베이징의 이윤당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 너무도 잘해서 이후에는 베이징에서와 마찬가지로 매 주말에는 이곳에 가서 안마를 받곤 했었다. 그리고 자주 가다 보니 여기에도 내 단골 안마사가 생겼는데, 베이징의 경우와 달리 그녀는 20대의 젊은 여자였고, 안마 학교에서 안마를 정식으로 공부했다는 사람이었다.


푸윈엔탕에서 근무하는 안마사들은 모두 그렇게 안마 전문 학교에서 정식으로 안마를 배운 사람이라 했는데, 베이징의 단골 안마사는 체격이 좀 왜소했던 반면, 이곳의 안마사는 체격도 매우 커서 안마할 때 가하는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건장한 체격의 그녀로부터 안마를 받으면 역시 지난 일주의 피로가 싹 가시고 새로운 일주를 대응할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이후 대만에서 근무할 때도 단골 안마소가 있었고 그곳에서 매주 안마를 받았다. 하지만 그다음의 근무지인 홍콩에서는 한번 받아 본 안마가 너무나도 형편이 없어서 이후 홍콩에 체류하는 기간 내내 한 번도 안마는 받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역시 한두 번 안마를 받아 보긴 했는데, 정기적으로 안마를 받으러 다닐 정도로 끌리는 곳은 없어서 이후에는 가지 않았다. 광저우 푸윈엔탕과 같이 안마를 꽤 잘하는 곳이 서울에도 있다면 과거 안마받을 때의 너무나도 시원했던 느낌을 꼭 다시 누려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베이징, 광저우, 타이베이 같은 도시가 그리운 이유 중에는 아마 안마에 대한 향수도 다분히 포함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티엔허베이루'라는 거리에 있던 '푸위엔탕' 거리뷰)

https://j.map.baidu.com/ab/Lj4

(푸위엔탕 소개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iw2nt&logNo=220817848773



7) 공원의 대변


광저우를 떠난 이후 홍콩 법인근무하던 시절에 광저우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광저우 동역(東驛) 근처에 있었던 호텔에 숙박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찍 잠에서 깨서 맑은 공기도 마실 겸 그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길 한복판에 뭔가 시커먼 물체가 보여 자세히 보니 다름 아닌 똥이었다. 그것도 개와 같은 동물의 똥도 아니고 사람의 똥이었는데 그 양도 정말 적지 않았다. 그 똥을 보는 순간 이슬에 촉촉이 젖어 있는 나무숲 사이로 유난히 맑게 느껴졌던 주변의 공기가 순간 완전히 바뀌어서 사방에는 똥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한밤중에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이 그 시간에 화장실을 찾지 못하니 급한 상황에 그곳에서 용변을 본 것 같았는데, 역시 후진국 중국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한밤중 다급한 상황에서 마땅한 화장실을 찾지 못했다면 어느 선진국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나 또한 그 상황에서는 급한 용변을 그렇게 해결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만 아무리 급해도 길가의 구석에 대변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굳이 길 한복판에 대변을 본 것만은 영 이해가 안 됐다.

한편 기억을 더듬어 보니 한국에서도 역시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예전에는 요즘과 다르게 서울의 아파트 옥상 출입구가 개방된 곳이 많았었는데, 그 당시 어머님은 매일 새벽 컴컴한 4~5시경 옥상에 올라가 방석을 놓고, 그 위에 앉아서 1시간 정도 기도를 하고 내려오시곤 하셨다. 그런데 하루는 한 겨울에 그렇게 한참 기도하고 집으로 내려오시는 어머님을 뵈니, 방석의 한 구석에 뭔가 잔뜩 묻어 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똥이었는데, 역시 그것도 매우 많은 양의 사람 똥이었다. 아마도 이른 새벽 신문 배달하던 사람이 급하게 변의가 오니 화장실은 찾을 수가 없고 그냥 아무도 없는 옥상에서 대변을 본 것 같았다. 어머님이야 캄캄한 새벽에 그곳에서 기도를 하셨으니 그 대변을 당연히 보지 못하셨을 것이고, 하필이면 그 똥이 있던 장소 위에 방석을 올려놓고 기도를 하셨던 것이다. 결국 똥덩이 위에 앉아 기도를 하신 셈이었다.


아파트 옥상에서 대변을 본 것이 좀 그렇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 경우도 역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 밤중에 변의가 급하게 오는 상황에서 아파트 옥상 어디서 화장실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괴변인지 모르겠지만 좀 더 생각을 해 보면 대변도 결국 우리가 먹은 음식이 변해서 만들어진 것일 뿐이고, 또 인간 모두는 그렇게 더럽다고만 생각하는 대변을 자신의 몸 안에 항상 갖고 있는 셈이니,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대변이 그렇게 부정하고 불결하다고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불쑥 든다. 내 배 안에 잔뜩 들어 있는 대변이나, 그것이 외부로 나와 있는 것이나 같은 대변 아닐지.... 물론 그것이 타인의 것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쨌든 대변 자체로만 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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